풀밭서 소 키우고 똥 얼리니 신선식품 먹는 소똥구리

한겨레 2024. 3. 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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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
춘분(春分), 겨울 버틴 생명들 불같이 일어나는 절기
소똥 굴리는 소똥구리.

겨우내 갈색 숲과 푸석푸석한 풀만 보던 눈이 호강한다. 비로소 생명체가 존재할 것 같은 녹색에 가속도가 붙어 주변은 점점 푸르러지고 있다. 경칩이 천둥소리에 놀라 월동하던 생물이 깨어나는 시기라면 춘분은 훈훈한 바람과 길어진 햇살이 나무를 깨우고, 땅속 깊은 어둠 안에 웅크리고 있던 생물들에게 빛을 선물하는 때다. 여전히 밤공기는 차지만 한낮의 바람은 시원하다. 숨을 고르며 겨울을 버티던 모든 생물들이 불같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20일)은 낮과 밤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春分). 가까이 다가가면 물속으로 ‘풍덩’ 쏜살같이 사라지던 큰산개구리들이 인기척에도 몸을 피하지도 않고, 낮·밤을 가리지도 않고 줄기차게 노래를 한다. 아직 짝을 찾지 못해 마음이 급해 보인다.

봄 향기에 취한 꿀벌이 윙윙거리고, 그동안 온도가 오를 때 잠깐잠깐 보이던 나비가 이제는 해만 뜨면 나타난다. 붉은색 계통의 네발나비와 뿔나비, 연한 노란색의 각시멧노랑나비 그리고 청색의 빛나는 날개 띠가 신비롭게 보이는 청띠신선나비까지 겨울과 봄 사이 어정쩡한 계절에 ‘나비 축제’를 보는 듯하다. 따스한 불 켜지듯 나비가 마음속 안온함을 주는 이 느낌 참 좋다.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

그리스어 프시케(Psyche)는 ‘영혼’ 또는 ‘나비’를 뜻한다. 아름답고 자유로운 나비의 날갯짓이 영적이며 ‘절대미’의 세계를 뜻한다는 것이 아닐까. 40여 년 전 회사 업무로 ‘자연생태계 학습 탐사’ 프로그램을 8년간 진행한 일이 있다. 그러다가 나비에 빠졌다.

나비, 그리스어로 프시케…영적인 날갯짓

나비가 좋아서, 나비에 미쳐서 곤충을 전공하고 강원도 산속에 연구소를 만들어 지난 27년 동안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 관련 일을 했다. 그런데 단 한 발자국도 못 나간 것 같다. 멋도 모르고 따라와 이제껏 고초를 겪는 아내를 보면 더욱 가슴 아프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가족에게 무심해졌을까’ ‘이 길이 맞나’하며 후회하다가도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다시 멸종위기종 걱정을 하고, 곤충이 그리워지니 생물을 항한 깊은 병을 아직도 앓고 있는 것 같다.

아내가 만든 돌나물 무침.

땅이 얼어붙은 겨울에도 푸른빛 잃지 않은 돌나물이 살이 올라 통통해졌다. 봄 향기 가득한 맛있는 나물이기도 하지만, 비타민 시(C)와 칼슘이 풍부하고 간에도 좋다 하여 빼놓지 않고 챙겨 먹고 있다. 인간 이전에 이미 돌나물이 좋은 줄 알았던 많은 종류의 벌레도 달려들어 먹는다.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 애벌레와 이들을 호위하며 단물을 얻어먹는 개미가 돌나물에 기대어 사는 대표적인 곤충이다.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 애벌레.

새벽 6시 즈음이면 주위가 훤해져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다. 공기는 싸늘하지만 차곡차곡 쌓여 온 따뜻한 온기가 이미 봄이다. 아직 겨울이라 느끼며 월동 중인 곤충들을 깨울 준비를 시작한다. 홀로세생태보전연구소의 인큐베이터 안에는 월동하는 멸종위기종 물장군, 소똥구리가 지내고 있다. 멸종위기종들이 안녕한지 살펴보고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충격을 받지 않도록 사흘에 1℃씩 온도를 올리고 있다.

멸종위기종이 월동 중인 인큐베이터 실험실.

지난해 12월부터 혹한을 즐기며 잘 자라온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두 번째 껍질을 벗고 꽤 두툼해졌다. 매일매일 쑥쑥 크면서 먹성 좋아진 3령 애벌레들이 밥 달라, 똥 치워달라, 너무 복잡하니 좀 여유롭게 살 수 있도록 집도 정리해달라 끊임없이 요구하는듯해 숨 막히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굶지 않도록 쉴 새 없이 먹이를 교체해 주고 덩치가 커져 공간이 좁아진 애벌레들은 좀 더 넓은 케이지로 옮겨 밀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먹성 좋아진 붉은점모시나비 3령 애벌레.

땅속 생태계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딱딱했던 흙이 녹아 한결 부드러워진 걸 보니 애기뿔소똥구리가 곧 깨어날 시간이다. 똥에서 번식하는 기생충인 파리 애벌레의 구더기를 죽이고, 먹이를 정량화하기 위해 영하 40℃로 냉동 보관하던 소똥을 실험실에 풀어 놓으며 ‘식사 제공’ 준비를 한다.

애기뿔소똥구리 실험실.
영하 40도로 냉동 보관 중인 소똥.

소가 행복하니 소똥구리도 행복해

소똥구리는 이름만으로도 많은 걸 알 수 있는 곤충이다. 소똥을 먹기 때문에 ‘소똥’이란 단어와 똥을 굴린다는 뜻의 ‘구리’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식성이 특이한 곤충들이 많지만, 다 먹고 버린 찌꺼기인 똥을 먹는 소똥구리 식성이야말로 가장 이상하다. 게다가 정해진 한곳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똥 주변에서 일생을 보내야 하니 그야말로 정처 없이 고달픈 인생인데, 그 먹이마저 ‘불량식품’이라 멸종할 수밖에 없는 신세다. (축산업의 변화로 옥수수가 주원료인 사료를 먹는 소들이 늘어났고, 이 배설물은 소들이 풀을 먹고 누는 배설물보다 소똥구리에게 영양가가 없다.) 그런 소똥구리에 연민을 느껴 사육을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되어간다.

소똥구리에게 먹일 소똥을 생산하기 위해 소 사육을 시작했다. 멸종위기종 소똥구리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고달프더라도 세월을 거꾸로 돌려 옛 방식으로 소를 키워 그 똥으로 공급하는 수밖에 없어 결국 방목지를 조성했다. 단 한 번도 풀밭을 밟아보지 못한 채 몸만 겨우 세울 수 있는 비좁고 갑갑한 축사에 갇혀 도축될 때까지 사료를 먹으며 사는 다른 소에 비하면, 그저 자유롭게 산책을 하며 신선하고 맛난 풀을 실컷 뜯어 먹고, 소똥구리·애기뿔소똥구리 사육에 필요한 똥만 싸면 되는 연구소의 소들은 행복하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방목장.

해마다 11월부터 3월 말까지 5개월간은 방목지에 풀이 없어 소들도 축사에서 겨울을 난다. 하루에 2차례 아침·저녁으로 건초더미를 풀어 먹이를 주고, 너무 추워 얼어버린 식수대의 얼음을 녹여 물을 주고 소똥을 치우며 몇 시간을 보내면 축사에서 하는 ‘내 일’이 비현실적인 일들처럼 느껴진다.

봄부터 소를 방목하기 위해서는 풀씨도 뿌리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만든 울타리도 고쳐야 한다. 고라니,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끊어놓은 전선도 다시 잇고, 폭우와 강풍으로 넘어간 나무도 정리해야 하는 등 그야말로 노동의 연속이다.

소똥 지키려 불길 뛰어든 아들

그깟 벌레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한다고 핀잔도 많이 받았다. 소 밥 주느라 단 하루도 마음 놓고 외출을 할 수 없으니 족쇄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선한 소똥을 구하려 이곳저곳의 방목지를 헤매며 애태우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큰 후회는 없다.

소똥구리 명줄과 내 아들의 목숨과 바꿀 뻔한 사고도 있었다. ‘똥’이라는 힘들고 특별한 소재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라 세계적으로 전문학자가 희소하여 연구자끼리는 국적을 떠나 서로 잘 도와주는 편이다. 몇 년에 걸쳐 자료를 주고받으며 전 세계 모든 소똥구리 표본을 전시하고 연구하던 박물관이 연구소 내에 있었는데, 2009년 6월2일 낙뢰가 떨어져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전소된 소똥구리 박물관.

불길에 휩싸였을 때 그 안에 있던 곤충 표본을 건지겠다고 화염 속으로 뛰어드는 아들 뒷모습이 보였다. 불속으로 뛰어들던 아들에게 물러나라고 소리쳤다. 화염에 이어 ‘쾅’ 굉음이 뒤엉켰고 철근은 엿가락처럼 휘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자식을 소똥구리 때문에 잃을 뻔했다. 멘탈(정신력)이 무너져내린 순간이었다. 불이 난 뒤에 주변에서는 ‘불같이 일어날 것’이라며 위로를 많이 해주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껏 불같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곁에서 보니 아버지 사는 모습이 너무 힘겨워 보였던지 아들은 10여 년 전 산속 연구소를 떠나 서울에서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집 걱정, 과다한 교육비까지 극심한 스트레스로 저출산이 대세가 되었는데 아들은 그래도 국가의 미래를 고려해야 한다며 아들 둘에 딸 하나 모두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나마 어려운 일을 물려받질 않아서 다행이다.

필자(아래 줄 맨 왼쪽)와 아내, 아들 가족. 필자 제공

날이 풀리자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온 손주들이 밖에서 뛰어놀며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아빠를 도와 마음고생, 몸 고생한 아들의 아이들이 이만큼이라도 놀 수 있는 터전을 만들 수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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