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하고 일방적인 박민 사장의 KBS[꼬다리]

2024. 3. 20.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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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KBS 사장이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KBS가 <전국노래자랑> 진행자(MC)인 코미디언 김신영을 교체한다는 사실이 지난 3월 4일 알려졌다. 김신영의 소속사는 그날 통화하며 “협의가 없었다. 하차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KBS는 2022년 김신영을 발탁하면서 ‘사상 최초 여성 MC’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한순간에 돌아섰다. ‘갑’인 거대 방송사에 ‘을’인 연예인 측이 이렇게 반발할 정도라면 그 서운함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갔다.

시청자 청원 게시판이 ‘김신영을 놔두라’라는 항의로 뒤덮이자 KBS는 ‘시청률 때문’이라는 입장을 냈다. 시청률 감소 추이부터 시청자 불만 건수까지 자세히 공개했다. 사측의 입장을 방어하는 근거였겠지만 프로그램에 헌신한 사람에 대한 예의를 잃은 행동이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부관참시’라는 말이 나왔다. 일각에선 MC 교체에 정치적 압박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심지어 김신영이 ‘문재인 시계’를 자랑해 쫓겨났다는 음모론이 돌았다.

이런 난리법석의 배경에 박민 KBS 사장이 있다. 법조언론인클럽 회장을 지낸 기자 출신이다. 박 사장은 과거 KBS가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 불공정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취임식 다음 날인 지난해 11월 14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KBS의 ‘오세훈 서울시장 내곡동 땅 의혹’ 보도 등이 ‘불공정 보도’라며 사과했다.

박민 사장의 행보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 영상에서 언급해 유행어가 된 ‘좋빠가(좋아, 빠르게 가)’가 떠오른다. 박 사장의 ‘좋빠가’는 신속하고 일방적이다. 취임하자마자 KBS 시청률 1위 교양 프로그램 <한밤의 시사토크 더 라이브>를 폐지했다. <뉴스9>를 4년 동안 진행한 이소정 앵커는 일요일 저녁 전화로 하차 통보를 받았다.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진행자 주진우씨는 하차에 더해 ‘출연 금지’ 결정도 통보받았다. 방송법 위반 논란이 있지만 박민 사장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KBS <시사기획 창>은 지난해 12월 ‘원팀 대한민국, 세계를 품다’편에서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성과를 홍보해 ‘윤비어천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다큐 인사이트> 제작진이 다음 달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맞춰 제작하던 다큐멘터리는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중지했다. 예능 <홍김동전>, <옥탑방의 문제아들>은 시청률이 낮다며 폐지했다. 이달에는 아나운서와 기자 등 87명이 KBS를 떠났다.

심지어 국민의힘도 박민 사장에게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우려를 표했다. 허은아 의원은 “하루아침에 마음에 안 드는 진행자를 다 잘라버리고 프로그램을 끝내버리면 뭐가 다르겠나”라고 말했다. 장제원 의원은 “내년에 인건비를 1000억원 줄이겠다고 말씀하셔서 당황스럽다. 직장 잃는 가장의 문제 이런 것도 충분히 생각하시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을 보면 일방적인 진행자 교체와 프로그램 폐지에 대한 항의가 수두룩하다. 김신영의 하차 소식이 보도된 날 박민 사장은 ‘공사 창립 51주년 기념식’을 열어 “국민을 섬기는 마음”을 강조했다. 보궐로 임명된 박민 사장의 임기는 전임 김의철 사장의 잔여 임기인 올해 12월 9일까지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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