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82] 부산 기장 학리 말미잘수육
말미잘을 손질하던 식당 주인이 입에서 낚시를 빼냈다. 붕장어나 가자미를 잡기 위한 주낙에 걸린 말미잘이다. 애초에 말미잘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이제는 말미잘 덕분에 부산에서 오지인 갯마을까지 사람들이 찾아온다. 아무리 칠암붕장어가 유명하다 해도 그것만으로 학리를 찾지 않는다.
장어보다 가자미보다 유명해진 말미잘은 풍선말미잘이다. 기장 지역 심해에 서식한다. 장어나 가자미는 올라오지 않고 말미잘만 잡혀 버리기도 했다. 우연하게 매운탕에 넣어 내놓은 결과 식감이 좋다는 반응에 수육으로 조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리마을 말미잘 음식이 만들어졌다. 수십 년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학리는 물론 기장을 상징하는 지역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젠 말미잘이 많이 잡히지 않아서 걱정이다. 잡은 말미잘은 사흘 정도 수족관에 넣어 둔다. 말미잘 촉수를 제거하고 먹는다. 말미잘탕이 밥과 먹기 좋다면, 수육은 술안주로 최고다.
말미잘이 나오기 전에 찐 계란, 미역귀, 살짝 데친 서실이 나온다. 계란은 소금에, 나머지는 초장을 찍어 먹는다. 그런데 말미잘의 식감과 뒷맛을 잡아주는 데는 초장보다 소금이 더 나은 것 같다. 모양은 비호감이지만 꼬들꼬들하며 부드러운 식감에 맛도 좋다. 양파와 파를 곁들여 소금에 찍어 먹어 보길 권한다. 말미잘탕은 사계절 먹을 수 있지만 말미잘 수육은 지금이 좋다. 여름철에는 말미잘이 밖으로 나오면 쉬 물러져 수육을 만들기 어렵다. 탕은 급냉 말미잘을 사용할 수 있지만 수육은 살아 있는 말미잘이어야 가능한 탓이다.
식당에서 나오다가 장어를 굽는 안주인을 만났다. 혹시 말미잘도 굽냐고 물었더니 수육보다 굽는 것이 더 맛이 있단다. 다음에 말미잘 구이를 먹으러 오겠다니까 구이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말이면 손님들이 많이 기다리는데 구울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말미잘을 잡는 미끼로 청어, 정어리, 오징어 등을 이용한다. 학리 말미잘 식당은 모두 직접 어장을 하는 집에서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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