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소 눈의 깊이만큼

문형 소설가 2024. 3.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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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 소설가

방죽 길을 걷는데 어미 소 두 마리와 송아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 동네의 촌로가 햇볕 따뜻한 날이라 고삐를 길게 해서 매어놓은 모양이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그중 누워있는 소의 눈망울에 초점을 맞췄다. 어릴 적엔 우리 집에서도 소를 키워, 자주 하는 버릇이었다. 그 순하고 깊디깊은 눈망울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란!

특히 3월 이즈음의 소 눈은 더 그랬다. 여름에는 쇠파리나 모기 쫓는다고 연신 머리를 돌려대야 했으므로 자연히 눈도 많이 깜빡여야 하고, 가을 농번기엔 힘쓰느라고, 겨울엔 추위를 이겨내느라 소도 눈에 힘을 줘야 했으므로 초봄의 눈과는 달랐다. 하지만 이맘때는 무념무상에 든 눈망울 그 자체다. 저런 소 눈을 날것으로 먹은 적이 있다.

1982년이었나. 그 시절 땅이 없던 우리 집도 궁색을 면하고 돈푼 정도는 돌았다. 남의 토지를 빌어 참외나 수박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 농법이 요즘처럼 널리 퍼지지 않았을 때라 소득이 꽤 괜찮았다. 수입이 좋아지자 너나없이 농가 사람들도 종종 고기를 사 먹을 수 있게 됐다. 경제적 형편이 나아진 이유도 있었지만, 비닐하우스 안의 그 무더운 환경에서 몇 달을 일하고 나면 그야말로 몸이 녹초가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적절한 몸보신을 하지 않으면 또다시 이어지는 농번기를 버텨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농산물 판매로 돈이 좀 돌면, 동네에선 서너 집이 합쳐 돼지 한 마리를 잡아 한 다리씩 나누곤 했다. 어떤 땐 소머리나 잡뼈를 사다가 곰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돼지 잡는 것쯤은 그때까지만 해도 쉬이 할 수 있는 일이어서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소머리나 뼈를 사서 먹기엔 그래도 버거웠을 뿐만 아니라 쉽게 구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소머리를 싼값에 사려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날을 잡아, 구포시장에 가서 한꺼번에 구매해 왔다.

그즈음, 대학 1학년이던 내가 장티푸스에 걸려 심하게 앓았다. 병원 치료받기가 요즘 같지 않았을 때라, 두 달간 혀뿌리와 목구멍이 검게 타버려 물 한 방울조차 넘기기 힘들었다. 그 결과 병마를 물리치고 일어났을 땐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어느 날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큰 형수가 구포시장을 다녀왔다. 가족 모두 몸보신한답시고 소머리와 잡뼈를 함지박에 이고 와선 나를 불렀다. 그리곤 흰 비닐봉지에 싼 걸 주섬주섬 풀어 대접에 부으며 말했다. 도축장에서 막 잡은 소머리와 부속물이 시장에 나왔길래 사 왔다며, 몸에 좋으니까 쭉 들이켜라고. 그냥 딱 보기엔 계란 흰자를 대여섯 개 합쳐놓은 것 같기도 하고, 미끌미끌한 느낌의 조청 같기도 했다. 몸에 좋다고 하는 데야….

당시의 내 형편상 이것저것 물어볼 계제가 못돼 시키는 대로 단번에 쭉 들이켰다. 맛도 밍밍하여 흰자위 비슷했고 별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때 곁에 앉아 쭉 지켜보고 있던 여섯 살 조카가 “엄마, 나도”하며 먹고 싶어 했다. 빈 대접을 챙긴 형수가 아서, 하고 손을 내저었다. “그거, 애들은 못 먹는 소 눈이다. 삼촌은 눈이 안 좋아 눈에 좋다길래 먹으라고 한 거야.” 조카가 놀라 되물었다. “소 눈!?”

왜 아니 놀랐겠는가. 소 눈망울은 커다랗고 동그란데, 방금 본 것은 무슨 흰자위 같으니 우선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나 역시 적잖이 놀랐다. 서른 중반쯤인가. 눈을 수술해서 교정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사람 눈도 막으로 둘러싸여 있을 때는 둥글게 보이지만 막이 없으면, 젤리보다는 좀 더 말랑하고 흰자위보다는 좀 더 진득하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으므로. 이미 먹어버린 상태라 사람이 먹을 수 있나 없나, 그런 정서적 시비에 대해선 생각해볼 이유가 없었고.


좌우지간 예수 눈이나 석가 눈은 직접 보질 못했으니 모르겠고, 내가 살아오면서 본 눈 중에서는 소 눈이 제일 깊고 그윽하지 않나 싶다.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했으므로, 질료로서의 소 눈이 아닌, 순하고 그윽한 심안(心眼)에 내 눈이 일체화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먹은 소 눈의 깊이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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