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 “국가유공자 예우 강화… 보훈 가치 드높여 국민 통합 이룰 것” [세계초대석]

박수찬 2024. 3. 1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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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평해전의 주역
북한군, 해전 전날 NLL 침범 기동연습
첩보 전달 안돼 선제공격금지 명령 답답
나라 위한 희생 기억을…
전사자 묘비에 ‘전사’ 아닌 ‘사망’ 기록
우발적 교전 왜곡… 안보엔 여야 없어야
보훈부 차관 취임 석달째
‘30년 이상 복무’ 경찰도 국립묘지 안장
서울현충원 추모·힐링공간으로 재탄생

“제2연평해전 당시는 한·일 월드컵으로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그때가 기회였죠. 그런 식으로 허를 찔러 한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게 북한의 수법입니다.”

이희완(48) 국가보훈부 차관은 2002년 6월29일 오전에 벌어졌던 제2연평해전을 뚜렷이 기억한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 해군 참수리 357호정을 기습했다. 정장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승조원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다쳤다. 당시 부정장이었던 이 차관은 승조원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워 북한 경비정을 물리쳤다. 전투 도중 오른쪽 다리를 적탄에 맞아 종아리 아랫부분을 잃고, 왼쪽 다리도 총알이 뚫고 지나갔다. 수술 끝에 왼쪽 다리는 살려냈지만, 오른쪽 다리는 의족을 하게 됐다. 부상으로 인한 고통이 컸지만, 제2연평해전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왜곡된 시각이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정 부정장으로 참전해 부상했던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이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소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배의 지휘관이 전사했기에 제가 명령을 내려야 했고,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며 해전 당시 상황과 보훈부 차관으로서 추진하려는 보훈정책 등을 설명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아픔 속에서도 묵묵히 해군에서 복무하던 그는 지난해 12월 보훈부 차관에 발탁되어 보훈정책 추진에 몰두하고 있다.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전 등 서해를 지키기 위한 희생을 기리는 서해수호의 날(22일)을 앞둔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이 차관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12월11일 보훈부 차관에 취임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어떻게 지냈나.

“보훈부 차관으로서 더 나은 보훈정책을 만들고자 현장을 발로 뛰고 고민하며 지내고 있다.

지난해 12월28일 중앙보훈병원을 방문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남방한계선 순찰 중 지뢰 사고로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어 저와 같은 아픔을 겪는 장원종 유공자님께 국내기술로 개발한 로봇의족을 전달했다.

고 윤영하 소령의 아버님인 윤두호씨도 뵈었다. 저의 영원한 지휘관인 참수리 357호 정장 윤영하 소령님의 부친이자 해군사관학교 대선배로서 제가 존경하는 참군인이시다. 해군으로 복무하며 1970년 6월29일 서해 영흥도 북방에서 무장간첩선을 나포해 인헌무공훈장을 받은 국가유공자이자 대한민국의 영웅이다. 2021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중이신데 기력이 많이 쇠해지셔서 마음이 아팠다. 얼른 쾌차하셔서 건강한 모습을 뵙고 싶다.”
─22일은 서해수호의 날이다. 제2연평해전 당시 모습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해전 하루 전 북한군은 NLL을 침범하며 기동 연습까지 했다. 도발 징후가 뚜렷했지만, 첩보는 제때 전달되지 않았다. 북한 경비정의 포가 열렸는데도 (상부에선) 선제공격은 안 된다는 지시뿐이었다. 안타깝고 답답했다. 해전이 벌어진 날 북한 경비정이 NLL을 넘어 내려오는데, 그렇게 빨리 항해하는 것을 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우리도 달려가니 금세 거리가 가까워졌다. 함정이 선회하자 바로 쏘더라. 조타실과 기관실이 큰 피해를 봤고, 정장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이 전사하는 등 승조원들이 잇따라 피격됐다. 포격으로 쓰러졌다가 눈을 떠보니 오른쪽 다리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왼쪽 다리뼈는 총알이 뚫고 지나갔다.

아플 겨를도 없었다. 배의 지휘관이 전사했기에 제가 명령을 내려야 했고,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 30분간 치열하게 싸워 적들에게 큰 피해(사살 13명, 부상 25명)를 주고 북한 경비정을 퇴각시켰다. 이후 제가 정신을 차린 것은 국군수도병원에서 약 7시간의 대수술을 마친 후였다.”

겨우 의식을 회복한 이 차관은 동료 여러 명이 전사했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북한 도발에 대한 무관심과 왜곡이었다.

─제2연평해전 직후에도 북한 도발에 대한 무관심이 적지 않았다.

“제2연평해전 발발 이틀 만인 2002년 7월1일 서해교전 전사자 합동 영결식이 해군장(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거행됐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오지 않았다. 전사자 묘비에는 ‘전사’가 아닌 ‘연평도 근해에서 사망’이라고 새겨졌고, 추모식도 5주기까지만 개최하는 것으로 한정됐다. 군인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해서 많이 참았다.

이명박정부 시절(2008년)엔 서해교전이 제2연평해전으로 바뀌었고 10주년 기념식도 크게 치렀다. 정장님(고 윤영하 소령) 아버님이 ‘군인은 나라 지키다 죽는 게 당연하다’고 하시는 분인데, 그때 그분이 “군인으로서 처음으로 대접받네” 하셨다. 눈물이 나더라. 안보에 여야가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전사자와 유족들이 피해를 본다. 제2연평해전을 우발적 교전으로 왜곡하고, NLL에 대한 북한 입장에 동조하는 시각도 있는데 이곳을 지키다가 다치고 전우들을 잃은 저로서는 매우 안타깝고도 절망적인 심정이 든다. 천안함 피격 당시 제기됐던 좌초설에 저는 다시 한 번 분노했고, 명백한 승전인 연평도 포격전을 10년간 도발로 불렀다는 점 또한 납득할 수 없었다. NLL은 실질적인 남북 해상경계선이며, 전우가 피로서 지킨 선이다. 꼭 지켜야 할 대한민국의 영역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제2연평해전 당시 함께 싸웠던 전우들과는 정기적으로 만나나.

“서해수호의 날, 현충일, 제2연평해전 기념일에 만난다.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도 만난다. 전우애가 더욱 짙어지는 느낌이다. 사실 만나면 하는 얘기들이 다 그때(제2연평해전) 얘기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 울고 그런다.

모일 때는 가족들도 다 온다. 2차를 가면 가족들이 따라온다. 그런 가족들에게 참 고맙다. 마음을 함께 나눈다는 것 아닌가. 만나면 늘 가족들에겐 정중하게 인사한다. 고마워서.”

이 같은 일들은 장병들의 희생이 잊히지 않고 국민에게 존중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보훈부 차관으로서 보훈 정책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보훈부 차관으로서 정책 비전을 말해 달라.

“보훈부는 임무가 간단하고 분명하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을 챙기는 것이다. 그분들을 잘 예우하고 기념해서 보훈의 가치를 높이고, 이를 통해 국민을 단합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보훈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 문화가 형성되면 국민 통합도 가능하다.

─재해 재난 구호나 근무 도중 순직한 군경과 공무원의 예우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군인·경찰·소방관과 위험직무 수행 공무원에 대한 예우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보훈부는 전사·순직Ⅰ형 군인과 위험직무 순직 경찰·소방관에 대해서는 2022년부터 수개월이 걸리는 보훈심사를 거치지 않고 패스트트랙(보훈심사 신속 처리제)을 통해 국가유공자로 신속하게 결정하고 있다. 현재는 인사혁신처와 협업해 위험직무로 순직한 공무원도 별도의 보훈심사 없이 국가유공자로 결정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연내 개정하는 것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30년 이상 복무하고 명예퇴직하는 경찰과 소방관도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도록 지난달 27일 국립묘지법을 개정했고, 시행령 제정 등 1년간의 준비를 거쳐 내년 2월28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국가를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 목숨을 잃은 순직의무군경의 희생을 추모하는 순직의무군경의 날을 제정하여 오는 4월26일 제1회 기념식을 거행할 것이다.”

─제대군인이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해소할 보훈부 차원의 정책은.

“제대군인의 안정적 구직활동을 돕고자 지급하는 전직지원금을 10% 인상해 올해부터 장기복무 제대군인은 월 70만원에서 77만원으로, 중기복무 제대군인은 월 50만원에서 55만원으로 인상해 지급한다. 2027년까지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전직지원금을 고용노동부 구직급여의 50% 수준인 99만원으로 올리고, 현재 최장 6개월인 지급기간 또한 고용노동부 수준에 상응하도록 중기복무자는 7개월, 장기복무자는 8개월로 조정할 방침이다.

올해부터는 의무복무 제대군인도 국가보훈의 지원 대상에 포함해 진로·직업상담, 취업알선 및 사이버교육 등을 지원한다. 청년 제대군인의 자기 계발을 지원하기 위한 맞춤형 카드 출시와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에서 의무복무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하도록 의무화하는 법률안 개정도 진행 중이다.”

─7월부터 국립서울현충원이 국방부에서 보훈부로 이관된다. 이관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지난해 12월28일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서울현충원의 보훈부 이관이 확정됐다. 이관 준비 태스크포스(TF)의 준비를 거쳐 7월24일 공식 이관될 예정이다. 차질없이 준비하고, 전국 12개 국립묘지의 관리체계를 일원화해 국가유공자와 유족에게 최고의 안장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서울현충원을 세계 최고의 추모공간이자 국민이 즐겨 찾는 문화·힐링공간으로 조성하고, 주변 인프라를 개선해 접근성을 개선하는 ‘서울현충원 재창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그 첫걸음으로 국내외 선진사례를 반영한 기본구상안을 마련하고, 대형 디지털 전광판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은… ●1976년 경북 김천 출생 ●해군사관학교 54기 ●서울대학교 대학원 심리학 ●제2연평해전 참전, 전투유공(충무무공훈장) 수훈 ●해군사관학교 심리학 교수 ●해군대학 작전전술학 교관 ●해군본부 인재개발교육담당 ●해군본부 교육정책담당 ●국가보훈부 차관

대담=이우승 외교안보부장, 정리=박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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