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 ‘네 탓’만 있고 ‘내 탓’은 없는 [김용석의 언어탐방]

한겨레 2024. 3. 1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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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효과 있는 캠페인을 할 수 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역효과를 방지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면 된다. 후보자의 막말 파동은 우리 선거판에서도 차고 넘치는데, 우선 항문으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말을 배설하지 말아야 한다. 배설한 말은 반드시 역효과를 낸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김용석 | 철학자

2024년은 전세계적인 ‘선거의 해’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투표한다. 우리나라 총선도 3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캠페인도 치열하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는 수많은 캠페인이 있지만, 그 어느 것보다도 캠페인의 어원적 의미가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분야는 바로 정치이다. 정치인들은 선거 캠페인을 전쟁 치르듯 하기 때문이다.

캠페인(campaign)은 들판에서 치르는 전투, 곧 야전(野戰)을 뜻했다. 이 말은 평원이라는 뜻의 라틴어 캄파니아(campania)에 그 뿌리를 두는데,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거치면서 현대 영어 철자로 정착하게 되었다. 지금도 군사 용어로서 캠페인은 대규모 군사 작전을 가리키거나 전쟁의 유의어로도 사용된다. 야영하다(camp)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하는데, 야전을 치르려면 야영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어원적 의미에서 캠페인은 유세(遊說)에 머물지 않고 유세를 비롯해 모든 전략과 전술을 동원하는 선거전(選擧戰)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정치에서 선거 캠페인이 군사 작전과 유사하다는 사실은 다른 정치 술어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캠페인과 뗄 수 없는 말이 슬로건(slogan)이다. 슬로건 없는 캠페인은 없다. 슬로건은 고대 켈트어에서 유래하는데, 원래 전투에서 ‘병사들의 고함’을 뜻했다. 치열한 전장에서 적군과 아군을 식별하기 위해 병사들이 외치는 소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나아가 전쟁이 지속되는 혼란 속에서 피아를 식별하는 암호로 사용되는 말 역시 가리켰다.

현대 정치사에서 캠페인을 철저히 기획하고 조직화해서 활용하는 데에 미국 정치인들은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가가호호 방문을 하는 등 발품 팔며 바닥 민심에 호소하는 자원봉사 활동가들을 ‘보병’(foot soldiers)이라고 부른다. 이들도 정치 일선에서 전투하고 있는 것이다. 전투와 전쟁의 은유는 대선 주자들의 언어에도 담겨 있다. 2020년 대선 당시 현직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매우 거친 말로 조 바이든 후보를 몰아붙였는데, 이에 대해 바이든은 선거 홍보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나라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전투에 임했습니다.” 거룩한 사명을 지닌 성전(聖戰)을 선포하는 수준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치 캠페인은 미국의 영향을 받고 있다. 18세기 말에 연방제와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건국한 미국은 19세기 초부터 조직된 캠페인을 벌였다. 대선에서 전국 순회 캠페인은 19세기 후반에 본격화했지만, 20세기에 라디오와 텔레비전 같은 대중매체의 등장으로 캠페인은 신무기를 장착함으로써 전술 활용 능력을 다양하게 발전시켰다.

라디오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는 ‘말의 세계’다. 캠페인이 전쟁이지만 총칼 같은 무기를 사용할 수 없으니 말을 무기로 사용한다. 말의 중요도가 올라가는 만큼 말을 많이 하게 되고, 많이 하는 만큼 타락하기도 쉽다. 양이 많아지면 질은 떨어지게 된다. 제이 로치 감독은 영화 ‘캠페인’에서 거칠고 천박한 말로 전쟁을 치르는 두 후보자를 보여주는데, 그들의 말싸움은 입의 대척점에 있는 신체 기관, 곧 ‘항문으로 말한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할 정도다.

그렇다면 전쟁 치르듯 하는 캠페인의 효과는 어떨까? 있을까, 없을까? 그런데 이 질문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효과 있을까, 역효과 날까?’라고 물어야 한다. 모든 전쟁과 전투에서 전략과 전술이 효과 없어서 패하면 곧바로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선거 캠페인이 잘못되면 효과 없이 끝나는 게 아니라, 역효과가 자신에게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캠페인 실패로 잃은 표는 다수 상대에게 가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효과 있는 캠페인을 할 수 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역효과를 방지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면 된다. 후보자의 막말 파동은 우리 선거판에서도 차고 넘치는데, 우선 항문으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말을 배설하지 말아야 한다. 배설한 말은 반드시 역효과를 낸다.

둘째, 효과가 있으려면 기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캠페인 전문가들은 온갖 전략과 전술을 설파한다. 포지셔닝 전략, 중도층 유권자 확보 전술, 거울 효과 메시지, 마이너스 캠페인 등으로 선거 작전 상황판을 빼곡히 메운다. 하지만 정치 캠페인이 어원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전쟁의 특성을 품고 있다면 가장 기본적인 것을 실천해야 한다.

손무가 병법에서 말한 ‘지피지기’(知彼知己)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손자병법과 유사한 가르침은 다른 사상가들도 강조한 바 있다. 전쟁이 많았던 중세 말기에 외교·군사 전문가였던 마키아벨리는 ‘지피’ 이상으로 ‘지기’를 강조했다.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필요에 따라 자기 스스로에게 변화를 줄 줄 아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고대 철학의 가르침은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이 말에는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부터 더 나아지도록 애쓰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은 상대방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상대의 잘못을 들추어내거나 나라의 모든 문제를 상대의 잘못으로 돌리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남의 집 살림에 해박한 걸 보면, 자기 집 살림 잘할까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부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 총선의 경우 유권자는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싶어 한다. 표심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는 자신을 성실히 알리는 후보에게 일단 눈길을 준다. 민심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심이 후보자를 읽고 싶어지게 해야 한다. 유권자에게 남 이야기를 먼저 할 게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성실히 해야 한다.

총선에서 후보를 지원하는 정당의 대표는 자기 당이 어떻게 개선되고 있으며 미래 비전이 무엇인지 분명히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후보든 대표든 자기 자신을 잘 알려고 노력하고, 스스로 ‘문제도 해결책도 나 자신이야!’라는 말을 매일같이 되새겨야 한다. 그래야만 응축된 내공으로 표심을 끌어당길 수 있다. 캠페인의 묘수는 없지만, 기본을 실천하려는 노력에는 항상 어느 정도 합당한 보상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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