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156편 서평… ‘책은 죽지 않았다’ 증명”

박동미 기자 2024. 3. 1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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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첫 서평지 ‘서울 리뷰 오브 북스’ 홍성욱 전 편집장
창간호 ‘팬데믹’을 시작으로
‘벽돌책’ ‘인공지능’ 특집다뤄
‘깊게 읽을수 있다’ 인식 확산
편집위원 12명 대화하다 논쟁
그렇게 싸우고도 자리 지켜줘
첫 단행본 ‘읽기의 최전선’ 내
‘인류세’ 등 키워드 21편 담아
서평이라는 우주에 빠지기를
국내 첫 서평전문지 ‘서울 리뷰 오브 북스’의 창간을 이끌고 3년간 편집장으로 활동한 홍성욱 서울대 교수. 사진은 창간준비 중이던 2020년 11월 진행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 모습이다. 자료사진

“100만 독자를 확보하진 못했지만 ‘찐팬’이 늘고 있다는 걸 확신합니다. 계속 나아가야죠. 창간 때부터 10년은 꾸준히 내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10년이 성년이면, 3년은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한 나이인걸요.”

‘서울 리뷰 오브 북스’(이하 서리북)의 초대 편집장으로 국내 첫 서평 전문지의 문을 열었던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는 18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리북 창간 3주년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서리북은 2021년 3월, “한국에도 제대로 된 서평지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은 이들이, 영국의 저명한 서평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LRB)를 표방하며 창간했다. 홍 교수를 비롯해 김홍중, 김영민 등 서울대 교수들이 주축이 돼 더욱 관심을 모았다. 지난 3년간 총 77명의 필자가 참여해 198권의 책을 리뷰했고, 156편의 서평을 써냈다. 출판은 불황이고 독자는 귀하고, 잡지들도 종적을 감춘 시대. 창간준비호(0호)부터 3주년 특집호(13호)까지, 3년 동안 결호 하나 없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취다. 또한, 수치화할 수 없는 기여도 분명할 터, 홍 교수는 “‘책을 이렇게 깊게 읽을 수 있구나’ 하는 인식을 확산시켰다고 자부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평지 하나가 책 판매에 얼마나 직접적 영향을 끼쳤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책과 관련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독서모임 등 저변을 넓히는 데에 서리북이 역할을 했다고 믿습니다.”

팬데믹의 한가운데서 탄생한 서리북은 창간호에서 다룬 ‘팬데믹’을 시작으로, ‘벽돌책’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매 호 흥미로운 특집 주제를 선정, 다양한 필자의 서평을 받았다. 이를 편집 위원들의 엄격한 검토를 거쳐 실어왔다. 한마디로 ‘집단 지성’의 결과물. 책 한 권에도 의견이 갈리고, 외부 필자의 리뷰 원고에 대한 평가도 저마다 달랐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대화하다 논쟁하고, 의견이 틀어졌다가 다시 끌어안는 일을 반복했다”면서 “그렇게 싸우고도 창간 편집위원 12명이 아직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게 고무적이다”며 서리북을 이끌어온 동료 학자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최근 발간한 3주년 특집호는 선거를 앞두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고찰한다. 따라서 이번 호 주제는 ‘민주주의와 선거’. 제이슨 브레넌의 문제작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를 비롯해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윤현식의 ‘지역정당’ 등의 책을 리뷰하며 한국사회를 진단하고 전망한다. 또, 최근 서점가의 향방도 살핀다. 쇼펜하우어 전문가인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장기 베스트셀러 1위인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열풍의 명암을 짚는다.

3주년을 기념해 첫 단행본 ‘읽기의 최전선’(알렙)도 나왔다. 그동안 실린 서평들 중 21편을 골라 엮었는데, 보다 긴박한 사유와 성찰을 요구하는 주제들을 엄선했다. ‘인류세’ ‘과학기술’ ‘자본주의’ ‘전쟁’ ‘차별’ 등을 키워드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SF 소설 ‘클라라와 태양’을 비롯해 ‘전쟁과 가족’ ‘웃음이 닮았다’ ‘21세기 자본’ 등의 책을 소개한다. 그야말로 ‘읽기의 최전선’에서 최량의 지혜를 모색하기 위해 치열하게 써내려간 흔적이다. 홍 교수는 “지난 3년의 결실을 담았다. 이 책을 계기로 독자들이 서평이라는 또 다른 우주에 풍덩 빠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바람을 밝혔다.

12호를 끝으로, 홍 교수는 3년간 복무한 편집장의 자리를 김두얼 명지대 교수에게 내어주었다. ‘책은 죽지 않았다’고, 이를 증명하겠다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 한 차례 숨을 고를 때라는 판단이다. 그는 “새로운 미래를 기획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편집장부터 젊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그 미래엔 더 많은 이들이, 더 많이 읽었으면 한다. “적어도 책 동네 불황은 이제 바닥을 찍지 않았나 싶습니다. 문화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그 안에 책 읽는 문화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올라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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