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펀드’ 투자금 전액 반환 불인정 법원 판결 들여다보니…

이슬아 기자 2024. 3. 1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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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위험 인식과 과거 투자 경험 고려… 홍콩 ELS 배상도 분쟁 가능성

"결국 소송하라는 얘기네요." "집회 후 집단소송으로 가나요?"

3월 11일 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한 직후 피해자모임에서 나온 반응들이다. 금감원은 이날 0~100%까지 손실배상비율을 차등화한 분쟁조정기준안을 내놓았다. 이에 100% 일괄 배상을 주장해온 피해자들이 판매사를 상대로 소송전에 나설 조짐을 보인 것이다. 일각에선 1조6000억 원의 피해를 낳은 '라임사태'에 대한 최근 대법원 판결을 감안할 때, 피해자들이 소송을 불사하더라도 원하는 수준의 배상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홍콩H지수 ELS 피해자와 판매사가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손실배상액을 정할 최후 수단은 소송이다. 현재 각 은행과 증권사는 분쟁조정기준안을 근거로 배상액을 산출하고 피해자와 자율 협상에 돌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금감원은 협상에 실패한 사례를 중심으로 내달부터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분쟁 조정 절차를 개시할 예정이다. 만약 이 두 단계에서 접점을 찾지 못한다면 피해자에게 남는 선택지는 소송뿐인 것이다.

대신증권, 투자금 80%만 반환

금융감독원이 3월 11일 발표한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분쟁조정기준안’에 대해 피해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1월 19일 피해자모임 집회. [뉴스1]
그렇지만 소송이 피해자 손실 배상에 득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지난달 나온 라임사태 관련 대법원 판결에 홍콩H지수 ELS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만한 법률해석이 여럿 포함됐기 때문이다. 라임사태는 2019년 사모펀드인 라임자산운용이 펀드상품을 부정 운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1조6000억 원 규모의 환매중단(피해)이 발생한 사건이다. 은행, 증권사 등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라임펀드의 위험성을 적절히 알리지 않고 부실 판매했다는 점에서 홍콩H지수 ELS 사례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월 29일 투자자 4명이 라임펀드 판매사 중 하나인 대신증권을 상대로 낸 부당이익금 반환 소송에서 대신증권에 대해 "투자금의 80%(약 20억 원)를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초 1심 판결에선 전액(25억 원) 반환이 인정됐지만 항소심에서 인정액이 80%로 줄었고,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다.

항소심인 서울고법이 반환 인정액을 하향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표 참조). 투자자가 대신증권의 기망행위(사기)로 착오에 빠졌다고 볼 수 없다는 점,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이 인정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재판부는 투자설명서 등 위험 고지 내용에 대한 인식, 과거 투자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투자자가 착오를 일으킨 것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펀드 수익률은 장래의 미필적 사실에 대한 기대이기에 투자자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설령 착오가 발생했더라도 '동기의 착오'일 뿐이라고 봤다.

피해자 "라임펀드와 차이 있어"

법조계는 이 같은 법원 판결이 향후 불완전판매와 관련된 여러 분쟁 사건에서 중요한 판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증권 측 법률대리를 맡았던 법무법인 태평양 측은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통해 펀드 판매계약 취소 여부를 판단하는 데 주요한 '사기' '착오' 기준이 명확하게 정리됐다"면서 "대법원이 투자자의 자기책임이라는 금융투자의 대원칙을 강조하며 착오에 의한 판매계약 취소(투자금 전액 반환)를 불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홍콩H지수 ELS 피해자모임은 "100% 일괄 배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입장이다. 길성주 피해자모임 위원장은 3월 13일 전화 통화에서 "라임펀드는 말 그대로 투자자가 위험 부담을 안고 가는 펀드상품이지만 홍콩H지수 ELS는 은행 창구에서 연령, 투자 성향 등과 관계없이 마치 예금인 것처럼 눈속임해 판매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라임펀드도 기본배상비율이 50%에서 시작했는데, 홍콩H지수 ELS는 판매사 과실이 모두 인정돼도 (기본)배상비율이 최대 40%라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길 위원장은 "웬만하면 소송까지 가지 않으려 하겠지만 금감원 손실배상비율대로 배상이 이뤄지면 집단소송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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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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