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멸’ 막으려… 동남아 입학생 뽑은 경북 김천高

윤상진 기자 2024. 3. 19. 04: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도 ‘해외 유학생’ 모시기
해외 유학생들 ‘태권도 수업’ - 15일 경북 김천시 김천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베트남·캄보디아에서 온 유학생들이 태권도 수업 시작 전 서로의 보호 장구를 점검해 주는 모습. 김천고등학교는 올해부터 해외에서 유치해 온 학생들을 위해 국제반도 만들었다. /김동환 기자

15일 오전 경북 김천시 김천고등학교 1학년 9반 교실. 베트남·캄보디아 유학생 8명이 ‘한국어 어휘와 문법’ 수업을 듣고 있었다. 강사가 “이름이 뭐예요?”라고 묻자 한 명씩 교탁 앞으로 나와 자기소개를 했다. “베트남에서 온 응우옌하이당입니다. 한국 이름 흥민입니다. 저는 축구를 좋아합니다. 저는 고…학생….” 응우옌하이당군이 순간 머뭇거리자 다른 학생들이 “고등학생!”이라고 외치며 발표를 도와줬다.

김천고는 작년까지 학년당 8반(240명)이 있었는데, 올해 1학년은 9반이 됐다. 베트남인 7명, 캄보디아인 1명이 공부하는 ‘국제반’이 생겼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자율형 사립고인 김천고는 올해 처음 유학생을 뽑았다.

학교는 재작년부터 유학생 유치를 준비했다. 김천고는 신입생의 40%는 전국, 40%는 경북, 20%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뽑는다. 면학 분위기가 좋고 대입 실적도 좋아 전국에서 오겠다는 학생은 여전히 많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북 지역 저출생 현상으로 경북 학생을 뽑는 전형이 미달될 때가 많았다. 경북의 초·중·고교 학생 수는 2003년 41만2315명에서 2023년 24만9095명으로 20년 만에 약 40%나 줄었다. 이대로 가다간 학교 유지뿐 아니라 지역 소멸도 걱정됐다. 학교 재단은 “인구 소멸로 전국에서 폐교가 생겨나는데, 학교 명맥을 지키려면 변화할 수밖에 없다”며 유학생 유치를 결정했다.

유학생들은 3년 동안 김천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공부한다. 학비, 기숙사비 등 1인당 필요한 연간 비용 1500만원은 모두 학교가 지원한다. 졸업할 때까지 한국어능력시험 6급 자격을 따고, 외국인 전형으로 국내 대학에 진학하는 게 목표다. 한국어 6급은 한국어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1학년 때는 국제반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2학년부턴 한국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 1학년 때도 동아리나 방과 후 수업은 한국 학생들과 같이 듣는다. 학교 측은 유학생들의 한국어 수업과 한국 생활을 도와주는 베트남어 통역사도 고용했다.

한국 학생들과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면서 소통한다. 이날 6교시 태권도 수업 시간엔 한국 태권도부 학생들이 유학생들마다 한 명씩 붙어 호구 착용법과 발차기 동작을 알려줬다. 쉬는 시간이면 유학생들 옆으로 한국 학생들이 몰려와 질문을 쏟아내기도 한다. 유학생들은 한국 학생들과 친해지려고 한국 이름도 만들었다. 캄보디아 출신 호브언헝군은 ‘은호’, 베트남 출신 응우옌뜩란군은 ‘지호’다. 이들은 여름방학 땐 한국인 친구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한국 문화를 체험할 예정이다.

유학생들 대부분 한국에 정착하는 꿈을 갖고 있다. 응우옌뜩란(16)군은 “한국은 안전하고 베트남 학교와 달리 미술·체육 등 다양한 과목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며 “한서대 항공운항학과에 진학한 뒤 한국에서 파일럿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응오반둥(16)군은 “한국외대에서 통·번역을 공부한 뒤 한국에서 베트남어 통역사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출신 호브언헝(17)군은 “김천고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공학계열 학과에 가서 엔지니어가 되는 게 내 목표”라고 말했다.

김천고는 내년부턴 베트남·캄보디아뿐 아니라 우즈베키스탄·라오스로 국가를 넓혀 외국인 학생을 16명 받을 예정이다. 같은 재단의 김천중학교에서부터 유학생을 데려와 가르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김천고 재단(송설당교육재단) 김상근 이사장은 “어릴수록 한국어도 금방 늘고 문화도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한국에 정착할 확률도 높아진다”면서 “외국인을 유치해 지역 소멸을 막으려면 단순히 데려오는 것뿐 아니라 지역에 정주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가 심각한 지역 중엔 김천고처럼 고교 유학생 유치에 뛰어든 곳이 많다. 경북교육청은 올해 직업계고 8곳에 베트남·태국·몽골·인도네시아 학생 48명을 유치했다. 고교 졸업 후 국내 기업에 취업시킬 계획이다. 전남교육청은 2026년 강진군에 ‘전남국제직업고’를 설립한다. 외국인 유학생과 국내 다문화 가정 자녀를 선발해 직업교육을 하는 학교다. 기계, 전기전자, 보건간호과 등에서 270명을 뽑는다. 부산교육청은 2028년 ‘K팝 특성화고’를 세우고 일부 정원을 유학생으로 채우기로 했다.

/김천=윤상진 기자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