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편석(偏析)

김진천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 교수 2024. 3.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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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천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 교수

자, 여러분! 주위에 있는 스텐제품, 정확히는 스테인리스(stainless) 제품을 보길 바랍니다. 뒷면이나 밑면에 암호 같은 영어와 숫자가 적혀 있을 겁니다. SS 18-10이나 아니면 그냥 18-10이 있을 것입니다. 이게 뭘까요? 바로 스테인리스의 가장 중요한 성분인 크롬과 니켈이 각각 18%와 10% 들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필자가 어렸을 때 TV에서 가장 유행했던 만화는 마징가 제트(Z)입니다. 마징가 제트는 무엇으로 만들었을까요? 주제가에 있습니다. ‘기운센! 천하장사…, 무쇠 팔 무쇠 다리 로케트 주먹…’.

하지만 정말 무쇠 팔, 무쇠 다리면 큰일 납니다. 비 오는 무더운 여름날 헬 박사, 아수라 백작의 괴수 로봇들과 한 번 싸우고 나면 온몸이 시뻘겋게 녹이 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층 높이(약 20m) 마징가 제트의 녹을 닦는 데 시간을 다 보낼 겁니다.

주방에서 숟가락 티스푼 가위 칼을 보셨나요? 앞에 얘기한 숫자가 적혀 있죠. 이들 제품이 스테인리스이고 크롬과 니켈이 18%, 10% 들어가 있는 스테인리스강철(stainless steel)입니다. 스테인리스는 무슨 뜻일까요? 스테인(Stain)은 때 즉 녹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스테인리스는 녹이 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주방에서 냄비 수저 가위 칼로 요리하고 설거지 했는데 다음날 시뻘겋게 녹이 슬어 버린다면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없을 겁니다. 병원의 수술용 메스(칼)와 핀셋, 가위가 녹이 슨다면 수술 환자는 파상풍이 걸려 더 위험합니다.

마징가 제트 주제가에는 무쇠 팔과 무쇠 다리라고 했지만 실제 핵심 재료는 만화 중간 중간에 나오는데 초합금제트로 만듭니다. 초합금은 재료공학에서 아주 중요한 소재입니다. 슈퍼알로이(superalloy)라고 하고 실제 항공기 엔진, 화력발전소 터빈의 핵심 소재입니다. 극초음속 미사일에도 필수 소재입니다. 다양한 초합금이 있지만 핵심 성분은 니켈(Ni) 크롬(Cr)과 코발트(Co)입니다. 약 1000℃의 고온에서 수만 시간 견뎌야 하기에 일반적인 금속을 사용할 수 없고 고온 내열성이 우수한 초합금 계열 금속을 사용해야 합니다.

18-10 스테인리스 제품은 어떻게 만들까요? 순철(Fe)에 크롬과 니켈을 18%, 10% 넣고 고온 용광로에서 녹여 쇳물을 만든 후 중간재인 판재나 봉재를 만들고 이를 제품모양을 하고 있는 금형에 넣어 고압으로 단조(가공)합니다. 초합금 터빈은 약간 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니켈과 크롬 코발트 그리고 첨가 원소들을 넣고 녹인 후 터빈 모양의 주조 틀에 부어 응고시켜 제품을 만듭니다.

스테인리스는 철에 상당량의 크롬과 니켈을 넣고, 초합금은 니켈에 크롬, 코발트를 약 30% 이상 넣어 소재를 만들고 제품을 만듭니다. 당연히 이들 첨가 원소들이 모재 즉 철과 니켈에 아주 균일(Homeogenous)하게 혼합돼야 합니다. 만약 첨가 원소들이 균일하지 않고 어디 한쪽으로 몰리면 이를 편석(Segregation·偏析)이라고 하고, 이 소재는 쓸 수가 없습니다. 편석이 생기면 그 부분에서 강도가 떨어지고, 특성이 균일하지 않아, 당연히 모든 금속 제품에서 편석은 가장 피해야 할, 가장 나쁜 현상입니다.

편석을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편식(偏食)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편식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실제 균형 잡힌(균일) 식단이 건강 유지에 필수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편석, 편식이 너무 심합니다.


서울 집중으로 지방은 무너지고 있고, 정치적으로 편향적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 사회적 갈등이 최고로 높습니다. 대학에서도 인기 학과나 의대 공대에 학생들이 몰리고, 인문사회 계열은 소멸하고 있습니다. 편석 소재가 쉽게 부서지듯 그런 사회는 바로 무너집니다. 편식은 서서히 건강을 해칩니다. 부모님처럼 편식하지 말라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얘기해줘야 합니다.

저는 편석 없는 좋은 소재를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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