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지연 해소’ 특명 받은 법원장 “다른 재판 결과 안 기다린다”

이현승 기자 2024. 3. 1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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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법원장에 장기미제 사건 맡겨
첫 주자 된 김국현 서울행정법원장
“형사재판 기다리느라 판결 안 미룬다”

“이 사건은 2019년에 진행됐고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도 3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재판 지연으로 인한) 불이익을 원고 측에서 계속 감수하라고 해선 안 됩니다. "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B206호 법정. 재판을 진행하던 김국현(사법연수원 24기) 법원장이 원고와 피고 대리인을 향해 이런 당부를 했다. 이날 변론기일이 진행된 13건 중 상당수는 관련된 형사재판 결과를 봐야 한다는 소송 당사자 주장에 따라 법원이 기일을 지정하지 않은 채 재판이 멈춰 있었다. 김 법원장은 여러 번에 걸쳐 “행정소송은 행정청 판단의 적법성, 위법성, 재량권 행사 적절성을 심사하는 것”이라며 “형사재판은 형사재판대로 진행하는 것이고 우리 사건은 우리대로 진행한다”고 강조했다.

김국현 서울행정법원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장기미제사건 전담 재판부 첫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작년 12월 취임한 후 재판 지연 문제를 완화할 방안 중 하나로 도입한 ‘법원장 장기 미제 재판부’의 재판이 이날 처음 이뤄졌다. 첫 주자가 된 김 법원장은 행정법원이 1998년 개원한 이후 처음으로 네 번째 근무하는 법원장이다. 2002~2003년 배석판사, 2015~2018년 부장판사, 2020~2022년 수석부장판사에 이어 지난달 법원장으로 취임했다. 행정법원은 합의재판부에 접수된 지 3년이 지난 장기미제사건 중 사안이 복잡한 고(高)분쟁성 사건 40여건을 김 법원장이 속한 9부에 배당했다.

김 법원장은 재판을 시작하기 전 “사법행정을 하는 법원장으로서 역할도 크지만 다른 판사님과 호흡하면서 같이 재판할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큰 기쁨”이라며 “국민들의 재판 지연에 대한 불신이나 기대를 저해한 것에 대해서 우리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법원장으로서 모범적으로 보여드릴 기회가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법부가 처한 현실 속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좋은 재판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도 했다.

이날 김 법원장이 진행한 사건들의 사건번호는 2014, 2018, 2019, 2020으로 시작했다. 이는 사건이 접수된 연도를 말한다. 무려 10년 전에 접수된 사건도 있다는 뜻이다. 전국 법원에서 2년 이내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사건이 최근 5년간 민사소송은 약 3배, 형사소송은 약 2배 증가했다. 판사 부족, 업무 과중, 사건의 난이도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재판 지연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꼽고 법원 자체적으로 추진이 가능한 법원장 재판, 판사 인사이동 최소화 등을 시행했다.

김 법원장은 새로 재판을 맡게 된 만큼 1시간 반에 걸쳐 13건에 대한 공판 갱신 절차를 했다. 공판 갱신 절차란 재판 진행 도중 법관의 전보·사직·휴직 등으로 재판부 구성에 변경이 발생하면 재판을 다시 심리하는 것을 말한다. 소송 당사자 입장에선 담당 판사가 그만두거나 인사이동을 앞두면 재판이 사실상 멈춰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가중된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이를 염두에 둔 듯 김 법원장은 공판 갱신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했다. 양측의 주장을 확인한 뒤 필요한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하고 다음 기일을 짧게는 한 달 뒤, 길게는 석 달 뒤로 잡았다.

재판에 참석한 한 변호사는 “법원장은 판사 중에서도 재판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확실히 나무보다 숲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법원 내에서도 법원장 재판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법원 관계자는 “복잡하고 어려운 장기 미제사건을 법원장이 전담해서 처리함으로써 효율적인 사건 관리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법원 전체적으로 더욱 신속하고 충실한 재판을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11시에는 박형순 서울북부지법원장이 민사합의10부 재판장으로서 장기 미제 사건 변론기일을 열었다. 윤준 서울고등법원장은 민사60부 재판장을 맡아 다음달 18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된 민사사건 등의 변론기일을 진행한다. 김정중 서울중앙지법원장도 이달 28일 민사62단독 재판장으로서 기일을 열어 7년간 재판이 지연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심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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