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B를 꿈꾸던 소년은 어떻게 21세기판 차르가 됐나

정원식 기자 2024. 3. 1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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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5~17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에서 압도적 격차로 5선을 확정지으면서 현대판 ‘차르’의 지위에 올랐다.

푸틴은 1952년 10월 구소련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제대 군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체구가 작은 편이었던 푸틴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유도와 레슬링을 혼합한 러시아 전통 호신술 삼보를 배웠다.

푸틴은 15세에 나치에 잠입한 소련 스파이의 활약을 다룬 영화 <방패와 칼>을 보고 첩보요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KGB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10대 때 국가보안위원회(KGB) 본부를 직접 찾아간 그는 한 장교로부터 ‘법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1970년 레닌그라드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마침내 KGB에 채용됐다.

1985년 동독 드레스덴 KGB 지부로 파견된 푸틴은 베를린 장벽 붕괴(1989년) 과정을 지켜봤고, 소련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소련의 해체를 경험했다. 푸틴은 2021년 방영된 러시아 현대사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는 “경제난에 달빛을 보며 택시를 몰아야 했고 우리는 완전히 다른 나라로 바뀌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푸틴은 소련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강한 러시아’를 열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2005년 국정연설에서 “소련의 몰락은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었다”면서 “러시아인들에게는 진정한 비극이었다”고 말했다.

푸틴은 레닌그라드대 법학과 교수 출신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이 된 아나톨리 솝차크와 만나면서 정계에 입문해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을 지냈다.

솝차크가 정치적으로 몰락한 이후 모스크바로 근거지를 옮긴 푸틴은 KGB 후신인 연방보안국(FSB) 국장을 거쳐 1999년 46세에 총리로 발탁됐다. 총리 재임 중이던 1999년 9월 푸틴은 2차 체첸 전쟁에서 강경 대응으로 입지를 다졌다. 1999년 12월31일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전격 사임하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에 지명된 그는 이듬해 3월 대선에서 승리해 첫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다.

1990년대 모라토리엄(1998년)을 겪는 등 극도의 경제 침체와 정치적 혼란을 겪었던 러시아는 푸틴 집권 이후인 2000년대 고유가를 바탕으로 2008년까지 연간 7%대의 높은 성장을 기록했다. 다수 러시아인들은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가 1990년대 옐친 시기의 극심한 혼란을 극복하고 러시아의 위상을 높였다고 평가한다.

집권 1기에만 해도 러시아의 개혁적인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2010년대 이후 본격적인 장기 집권을 시작하면서 독재자로 변모했다. 푸틴은 연임 제한 규정에 막힌 2008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허수아비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총리로 물러났다가 2012년 대선으로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2018년에는 개헌으로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리고, 2020년에는 대통령 연임 제한 조항을 무력화하는 개헌을 통해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길을 닦았다. 이 과정에서 반정부 시위를 강력하게 단속하면서 러시아 시민사회와 야권, 독립언론은 거의 고사할 지경에 처했다.

러시아의 푸틴 체제 공고화는 지정학적 위기를 부르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름반도를 강제합병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내전에 개입했고, 2022년에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유럽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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