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쉬 말고 대놓고 즐기자”… 서브 컬처, 주류에 오르다

유민우 기자 2024. 3. 1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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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요계에 부는 ‘오타쿠’ 열풍
일본 만화 주제곡 연상케하는
(여자)아이들 역주행곡 ‘아딱질’
애니 편집영상 조회수 200만회
애니메이션 아이돌 ‘플레이브’
지상파 음악방송서 1위 하기도
J-팝 비주류가수도 내한 ‘인기’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를 역주행시킨 걸그룹 (여자)아이들. 큐브엔터테인먼트 제공

비주류 마니아 문화, 서브컬처(하위장르)가 한국 가요계의 중심 콘텐츠로 등장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이 마니아적 감성으로 만든 영상에 힘입어 K-팝 걸그룹 노래가 역주행하고,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내세운 버추얼 아이돌의 앨범이 발매 첫 주에 56만 장이 팔려나가는 등 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 벌어졌다. 이와 함께 일본 내에서도 비주류로 꼽히는 일본 아마추어 가수들이 국내 팬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내한 공연을 여는 등 소위 하위장르인 ‘서브컬처’들이 음악 시장의 메인으로 치고 들어오고 있다.

걸그룹 (여자)아이들이 지난 1월 발매한 정규 2집의 수록곡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아딱질)는 뒤늦게 인기를 끌며 타이틀 곡을 제치고 음원 플랫폼 멜론 1위(18일 오전 8시 톱100 기준)에 올랐다. 이 노래의 인기를 견인한 것은 다름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 “곡의 분위기가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가 같다”고 생각한 이들이 ‘아딱질’을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배경음악으로 삽입한 영상이 2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차트 역주행을 끌어낸 것. 곡을 프로듀싱한 소연 역시 지난 1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애니메이션 감성의 노래”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흔적 없는 기억 밖/혹 과거에 미래에 딴 차원에 세계에”라는 가사가 대표적 서브컬처 콘텐츠인 ‘이세계물’(현실 세계와 다른 세계로 넘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 ‘회귀물(과거로 돌아가 벌어지는 이야기)’ 등을 연상시킨다고 입을 모은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이 노래에는 J-팝에 등장하는 F-E-Am-C 머니코드(히트곡에 자주 나오는 코드진행)가 등장하기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곡처럼 느끼는 것”이라며 “또한 ‘이세계물’의 서사를 가지고 있어 애니메이션 플롯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이어 (여자)아이들이 KBS 2TV 예능 ‘더 시즌즈-이효리의 레드카펫’에 출연해 부른 ‘아딱질’ 영상은 조회 수 152만 회를 돌파했다.

지난해 12월 내한한 그룹 요아소비. 리벳·카토 슘페이 제공

애니메이션 캐릭터 5인으로 구성된 가상 아이돌 플레이브가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것도 기존 음악 시장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다.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캐릭터 5인에 열광하는 건 서브컬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9일 방송된 MBC ‘쇼! 음악중심’에서 1위를 차지했다. 가상 아이돌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이처럼 현실 세계에서는 만날 수 없는 버추얼 아이돌 콘텐츠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좇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마니아 문화로 여겨졌다. 하지만 플레이브는 소통이 불가능한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달리 각 캐릭터를 담당하는 실제 인간의 춤과 노래를 모션 캡처하는 방식으로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차별화했다. 실제 인간과 달리 버추얼 아이돌은 열애설, 학교 폭력 등의 논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도 강점이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우타이테’(일본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 노래 커버 영상을 게시하는 아마추어 가수)와 같이 일본 시장 내에서도 비주류로 분류됐던 가수를 주류로 끌어내려는 팬들의 움직임도 거세졌다.

5인조 가상 보이그룹 플레이브. 블래스트 제공

지난달 24일에는 얼굴 없는 가수로 유명한 ‘아도’가 실루엣만으로 90분 동안 무대를 꾸미는 실험적인 공연이 진행됐다. 일본 인터넷 방송 플랫폼 ‘니코니코 동화’에서 활동을 시작한 ‘우타이테’ 출신 아도는 애니메이션 ‘원피스’ ‘스파이 패밀리’ OST를 불러 마니아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 외에도 인기 일본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 주제가를 부른 그룹 요아소비 역시 서브컬처를 좇는 팬덤의 지지 속에 지난해 12월 첫 내한 공연을 가졌다.

누구나 다 아는 스타가 아니라 ‘나만의 스타’를 발굴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10∼30대는 이 같은 서브컬처 열풍을 견인하는 주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전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수용하는 팬층은 계속 있었지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도입되면서 콘텐츠 소비 속도가 빨라지고 소비량도 많아지며 더 대중화됐다”면서 “이 흐름에 맞춰 예전처럼 쉬쉬하지 않고 드러내서 서브컬처를 즐기는 문화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유민우 기자 yoom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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