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진의 웨이투고] 나를 나답게…정교한 취향의 이유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종종 먹는 샌드위치가 있다.
매장에서 주문할 때마다 똑 부러지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하나하나 주문할 때면 은연중에 '샐리'가 떠오른다.
"피클 빼고 올리브 많이요"를 말하면서 흡사 샐리처럼 정교한 취향을 드러낼 수 있어 내심 흡족했던 나는 업체가 구성한 베스트 조합이 궁금해서 주관을 포기하고 새 메뉴를 주문해봤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주문할 때면 은연중에 '샐리'가 떠오른다. 노라 에프런이 각본을 쓴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맥 라이언이 연기한 샐리 말이다.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해리와 샐리의 우정과 사랑 여정을 다룬 영화다. 해리는 이제 막 만난 샐리가 음식을 주문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낀다. 좀 길지만 과감히 옮겨보는 샐리의 대사. "샐러드 주세요. 드레싱은 따로 주시고요. 애플파이도 파이는 데워 주시고 아이스크림은 따로 주세요. 아이스크림은 바닐라 말고 딸기로요. 만약 아이스크림이 없으면 생크림으로 주시는데, 깡통에 든 거면 안돼요. (그럼 파이만 줘요?) 파이만 주시되 그땐 데우지 마세요." 샐러드와 애플파이 정도에 대한 취향과 기호가 이토록 구체적이고 분명하다니! 취향이나 기호는 반복적이다. 그래서 영화를 끝까지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소스를 따로' 주문하는 사람. 탕수육을 먹는다면 '부먹'(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음) 말고 '찍먹'(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음)파일 것이다. 취향과 기호는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든다.
샐리가 떠난 연인의 결혼 소식에 엉엉 울며 "나는 까다로워"(I am difficult)라고 자책하자 해리는 "도전적인 거야"(You're challenging)라고 달래준다. 까다로움에 대한 다정한 재정의. 정교하고 견고한 취향은 까다로움에서 비롯되고 명확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도전적인 만큼 매력적이라고 여기며 나는 봤던 영화를 보고 또 봐왔다. 까다롭다는 건 구체적으로 원한다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원하는 게 있어야 도전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주문하면 구체적으로 얻는다. 샌드위치조차 그렇다. 나는 구체적으로 단호한 샐리가 좋다. 자신을 알고 어필할 줄 아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종종 먹는 샌드위치 매장에 최근 새 메뉴가 나왔다. 먹는 재료를 일일이 고를 필요 없이 아예 빵
부터 소스까지 '베스트 조합'으로 정해둔 것이다. '쉽고 빠른' 주문을 돕는다는 취지다. "피클 빼고 올리브 많이요"를 말하면서 흡사 샐리처럼 정교한 취향을 드러낼 수 있어 내심 흡족했던 나는 업체가 구성한 베스트 조합이 궁금해서 주관을 포기하고 새 메뉴를 주문해봤다. 역시 쉽고 빨랐고......뭐, 맛도 괜찮았다. 하지만 샌드위치의 매력이 반감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겉과 속을 일일이 직접 결정하면서 느꼈던 잔잔한 쾌감이 사라졌고 나의 선택보다 남의 선택을 더 신뢰한 것만 같아 일종의 무력감이 스쳤다고 할까. '쉽고 빠르게'는 때로 개인보다 단체를, 여유보다 쫓김을, 까다로움보다는 순함을 겨냥한 구호다. 일률적이어야 쉽고 빨라진다. 언제나 좋은 걸까? 매력을 잃는 일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도 너도 매력을 잃으면 사회 전체가 지루해질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더 쉽고 더 빠르기 위해 나를 나로 발견하게 해주는 취향과 기호를 포기한 적은 없었던가. 어쩌면 그 탓에 삶이 지루했을수도, 매력을 잃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조민진 작가
조민진 작가
Copyright © 머니S & money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직무교육 2개월 만에 2명 퇴사"… CJ대한통운 '술렁' - 머니S
- [3월18일!] "사형 집행하라"… 서울대생 최 일병은 왜 그랬을까? - 머니S
- [S리포트] 신생브랜드 급성장 이끈 화장품 ODM "저력은 R&D" - 머니S
- 日,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끝낼까 - 머니S
- [비즈S+] "선택 아닌 필수"… K-반도체, 친환경 전략 가속페달 - 머니S
- 홀덤펍 불법도박에 칼 빼들었다… 警, 집중 단속 나서 - 머니S
- 김가영, '대역전극' 펼치며 통산 두번째 월드챔피언 등극 - 머니S
- 조재호, 2년 연속 '월드 챔피언' 등극… 누적 상금 8억원 돌파 - 머니S
- 데이터 통신 시대 연 SK텔레콤, 종합 ICT 기업 등극 - 머니S
- 지난해 '3관왕' 이예원, 시즌 첫 승… "올해는 다승왕" - 머니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