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뜻해지는 밥상 [양희은의 어떤 날]

한겨레 2024. 3. 1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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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우아하고 고급진 식당보다 소박하지만 정갈하고 정성이 담긴 밥집이 편안하다.

편한 옷차림으로 찾아가도 되는, 가까운 이들과 한끼 나누는 밥상이 좋다.

지난번 대만 남쪽지방 여행 때도 나흘 동안 한끼 빼고는 재래시장통 밥집을 일부러 찾아가서 먹었는데 식기가 막그릇이란 것 빼고 맛에 있어선 뒤떨어질 게 하나도 없었다.

요즘 '여성시대'엔 '마음이 따뜻해지는 밥상'(마·따·밥) 코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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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양희은 | 가수

날이 갈수록 우아하고 고급진 식당보다 소박하지만 정갈하고 정성이 담긴 밥집이 편안하다. 편한 옷차림으로 찾아가도 되는, 가까운 이들과 한끼 나누는 밥상이 좋다. 집에서도 요샌 1식3찬이다. 덮밥에 김치, 된장찌개에 생선구이 한토막, 비빔국수에 물김치… 대충 이렇다. 지난번 대만 남쪽지방 여행 때도 나흘 동안 한끼 빼고는 재래시장통 밥집을 일부러 찾아가서 먹었는데 식기가 막그릇이란 것 빼고 맛에 있어선 뒤떨어질 게 하나도 없었다. 북새통이라서 외려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고, 노년의 우울감도 떨쳐버리고 호기심으로 기웃거리는… 사는 맛도 있었다. 요즘 ‘여성시대’엔 ‘마음이 따뜻해지는 밥상’(마·따·밥) 코너가 있다. 엄마의 손맛, 집밥이 그리운 사람에게 한그릇 밥이 기운을 일으켜세우길 바라면서 마음으로부터의 응원과 위로를 보내는 시간이다. 음식을 직접 내어드릴 순 없지만… 메뉴는 걸맞게 골라서 권한다.

#첫번째 마·따·밥의 주인공. 2년 전 겨울 위경련으로 시작된 복통이 담낭염이어서 담낭 제거 후 석달 지나 또 같은 경련으로 응급실에 가서 담도 폐쇄로 응급 시술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자궁근종으로 수술 날짜를 받아놓고 남편과 자식의 위로도 힘이 되질 않고 눈물만 흐르던 중, 스스로 당장 죽는 병도 아닌데 청승 떨 것 없다고 마음을 다그쳤단다. 온세상을 향해 원망과 신세한탄으로 엉엉 울고 나니 기분이 나아진 듯해서 수술 후 회복해서 힘들었던 날들이 꿈처럼 느껴질 날을 기다리며 마음 굳건히 잡고 싶다는 사연이었다. 이 분께 권한 것은 연포탕이다. 쓰러진 소도 일으킨다는 낙지연포탕의 재료는 무, 알배기배추, 미나리, 버섯, 천일염, 낙지 2마리. 굵은 소금으로 낙지를 바락바락 주물러 빨판에 박힌 뻘흙을 빼고 머리와 몸통 사이의 먹물주머니와 내장도 다 뺀 후 전골냄비에 무, 버섯, 알배춧잎, 버섯을 팔팔 끓인 뒤 중불에 좀 더 우리고 낙지 넣어 가볍게 데치듯 익혀 소금간하고 마늘과 미나리도 올려 뜨끈하게 한그릇 자신 후 수술 잘 받고 돌아오시란 내용이다.

#두번째 주인공. 국경없는의사회의 라오스 자원봉사 기간 동안 35도의 더위와 맑은 눈동자의 아이들, 그 순박한 모습에 울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료실과 약제실 세팅 후 조제하기, 기계로 약봉지 밀봉하기, 의약품 재고량 확인 등 착착 일을 하면서 서로의 손발이 맞았단다. 더위에, 정신 없는 일과에 지쳤을 때 우리나라 가이드께서 민물매생이국, 선지국, 물고기 맑은국 등으로 한식을 차려주셨다. 20명의 봉사단 대식구의 숙소, 식사 등을 소리없이 준비하고 마지막날 땀범벅인 사람들 샤워하고 비행기 탈 수 있게 거처를 내어준 가이드님의 건강과 축복을 기원하며 사연을 끝내면서 잘 지내시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단다. 가이드님을 위해 고향 생각날 때 가장 그리움을 달래줄 것 같은 겉절이 김치를 추천했다. 갓 버무린 겉절이의 맛은 얼마나 싱그럽고, 나갔던 입맛도 돌아오게 할까? 갓 지은 뜨끈한 밥, 칼국수나 떡국, 삼겹살구이에도 구하기 쉬운 그 나라 채소와 파, 고춧가루, 다진마늘, 멸치액젓, 생강, 레몬즙을 잘 섞어 골고루 버무리면 끝이다. 베트남액젓 느억맘이나 타이(태국) 남쁠라 피시소스를 구하면 된다.

#세번째 주인공. 어느날 부고 문자가 떴길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려니 하고 무표정하게 보다가 우리가 존경했던 선배의 본인상 소식에 책상에 마냥 엎드려 울다가 장례식장 가는 길에도 눈물로 얼룩진 운전으로 겨우 도착했다. 선배에게서 우울한 기미는 눈치도 못챘는데… 얼마나 다정했는지 차비 없을까봐 회식 뒤엔 꼭 2만원씩 손에 쥐어주던 선배! 한달이 지난 지금도 그를 떠올리면 어김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다른 사람의 얘길 잘 들어주던 그에게 귀 기울여 함께 술 한잔 할 사람이 없었던 건지…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 삶에 대해 생각한다. 슬픔은 남은 자의 몫. 선배 가신 그 곳은 편안하신가요? 그리움과 애도의 감정이 오갈 때 무얼 열심히 냠냠 씹어 삼키기도 버겁다. 그렇지만 잘 드셔야 기운도 난다. 세상 쉬운 굴순두부탕을 추천했다. 물 1컵 넣고 끓으면 순두부 2봉 짜개서 털어넣고 순두부마저 풀떡이며 끓으면, 소금물에 깨끗이 흔들어 씻어 건진 굴을 넣고 불을 끈다. 파, 생강 조금, 새우젓이나 천일염으로 간하면 깔끔하다. 아니면 김치와 돼지고기를 쫑쫑 썰어넣고 볶다가 물 1컵 붓고 순두부 넣어 끓이면 개운하면서 슬픔도 잠시 잦아든다.

이상 세 분의 사연과 라디오의 상차림을 소개해드렸는데 매주 한 분씩의 사연 소개와 더불어 어울리는 반찬도 추천하는 시간이다. 많은 분들이 위로 받고 또 저녁 메뉴로 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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