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극장에서만” 단독 개봉 늘어나는 이유는
15일 오전, 씨지브이(CGV) 예매 현황을 보니 전체 30위 가운데 11개 영화에 ‘씨지브이 온리(only·단독 개봉)’라는 빨간 표시가 떠 있었다. 21일 개봉하는 ‘탐정 말로’가 4위였다. 20위권인 ‘귀멸의 칼날―인연의 기적, 그리고 합동 강화 훈련으로’는 지난달 14일 개봉 직전 예매율 1위를 찍기도 했다. 롯데시네마 예매 순위에서도 롯데시네마 단독 개봉을 뜻하는 ‘롯시픽’인 ‘브레드 이발소: 셀럽 인 베이커리 타운’과 ‘용감한 돌고래 벨루와 바닷속 친구들’, ‘원 앤 온리’ 등이 10위 안에 들어갔다.
대규모 흥행작 중심으로 운영돼온 멀티플렉스가 갈수록 ‘단독 개봉’에 힘을 주고 있다. 코로나 이후 발길이 준 관객을 끌기 위해 극장마다 특수관 중심의 시설 차별화와 함께 콘텐츠 차별화 정책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500만 전후, 200만~300만 흥행작들이 사라지다시피 하면서 ‘파묘’ 같은 극소수 흥행작을 제외하곤 영화마다 할당하는 스크린 수가 줄어들게 된 탓도 있다.
단독 개봉을 가장 많이 하는 씨지브이의 개봉 편수 추이를 보면 2019년 27편, 2020년 38편에서 2021년 83편으로 점점 뛰었다. 2022년 이후 40편대로 개봉 편수는 줄었지만 관객수는 2022년에서 81만명에서 2023년 241만명으로 급증했다. 지난 1~2월 두달간 여섯 작품에 55만명이 들어 올해 300만명까지 단독 개봉 관객수가 늘 것으로 회사는 전망한다.
단독 개봉 확대는 영화를 브랜드화해 충성도 높은 관객들을 늘려간다는 전략이 바닥에 깔려 있다. 씨지브이는 고정 팬층이 탄탄한 일본 애니메이션과 공포영화에, 롯데시네마는 아동 애니메이션에 주력한다. 지난해 25만명 관객이 들며 손익분기점을 넘긴 한국영화 7편 안에 들어간 ‘옥수역 귀신’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씨지브이는 지난해 ‘마루이비디오’ ‘신체모음.집(zip)’ 같은 국내 저예산 공포영화를 단독 개봉했다. 지난해와 올해 각각 50만명의 관객을 모은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시리즈도 씨지브이 단독 개봉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롯데시네마가 지난 1일 개봉한 ‘브레드 이발소’는 보름 동안 1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후발주자인 메가박스는 아직 뚜렷한 흥행작은 없지만 중국 로맨스 ‘우견니’, 일본 애니메이션 ‘츠루네: 시작의 한발’, 실사영화 ‘대결! 애니메이션’ 등 단독 개봉작들을 늘려가고 있다.
극장의 콘텐츠 차별화 전략에 더해 변화한 배급사의 마케팅 홍보 전략도 단독 개봉 확대의 배경이다. 갈수록 마케팅 홍보 비용이 늘어나는데다 흥행 리스크가 점점 커지자, 배급사로서는 극장 한곳과 손잡고 개봉하면 홍보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강점이 생긴 것이다. 황재현 씨지브이 전략지원 담당은 “와이드 릴리스는 수익만큼 기회비용도 크다. 고정 팬을 가진 특화 장르의 경우 단독 개봉을 선택하면 배급사 입장에서는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서 극장에 홍보 지원 등을 좀 더 기대할 수 있어 극장과 배급사 양쪽에 윈윈 전략”이라고 말했다. 100만~200만명 관객 동원이 대수롭지 않던 코로나 이전과 견줘 흥행 양극화가 심화하는 요즘 극장가에서 단독 개봉은 배급사 입장에서 리스크 헤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상영관 확보에 애를 먹는 영세 배급사들에는 또 다른 기회가 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먼저 극장 문을 두드리는 배급사가 늘고 있는 이유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극장에서 배급사에 제안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배급사 요청으로 단독 개봉작을 결정한다”며 “단독 개봉작의 경우 대체로 장기 상영을 하기 때문에 배급사 입장에서는 상영관과 관객을 안정적으로 확보한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흥행성 높은 단독 개봉작 확보를 위한 과열경쟁을 우려하기도 하지만 영화관 관람 문화의 변화와 함께 단독 개봉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1월 유화 애니메이션 ‘립세의 사계’를 단독 개봉해 좋은 반응을 얻었던 롯데컬처웍스 엑스콘팀 김세환 팀장은 “앞으로 더 다양한 장르의 경쟁력 있는 단독 개봉작을 발굴해 극장이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될 수 있도록 라인업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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