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진짜 큰일 나겠다”…아파트 공사 곳곳서 중단, 공사비 갈등에 돈줄 마르는 건설업계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robgud@mk.co.kr) 2024. 3. 1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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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 급등한 공사비 반영 요청에
발주처 ‘물가변동 배제 특약’ 이유로 인상 거부
16개 건설사 작년 합산 매출, 전년比 13.8%↑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2.5%p↓
지난해 10월 중단 후 재개된 세종시 집현동 공동캠퍼스 공사가 공사비 갈등으로 지난 5일 공사가 다시 중단된 가운데 현장 근로자들이 공사 재개를 촉구했다. [사진 = 대보건설]
최근 몇 년 동안 원자잿값·인건비 인상 등으로 공사비가 크게 오르면서 전국의 건설공사 현장에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건설사들이 발주처에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이 발주한 대다수 공사에는 물가가 오르더라도 계약 금액을 유지한다는 특약이 포함돼 있어 건설사들의 요구는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아고 있다.

1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2019년 롯데쇼핑과 광주 광산구 ‘쌍암동 주상복합신축공사’ 계약을 체결한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롯데쇼핑 측과 공사비 증액을 놓고 갈등을 겪어오다 지난 1월 국토교통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쌍암동 주상복합신축공사는 지하 6층∼지상 39층 규모로, 아파트 315가구와 영화관 5개관, 판매시설 등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오는 4월 준공을 목표로 2020년 2월 착공했다. 2019년 9월 계약 체결 당시 총공사비는 1380억원이었다.

현대건설은 도급계약 체결 이후 발생한 공사비 상승 등을 이유로 2022년부터 롯데쇼핑 측에 140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롯데쇼핑 측은 물가 변동에 따른 계약 금액 조정을 배제한다는 내용의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이유로 공사비 증액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현대건설 측은 “계약 체결 당시인 2019년과 비교해 건설공사비 지수가 30% 가까이 상승했다”면서 “특약대로 물가 변동에 따른 인상분은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인상분인 140억원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쌍용건설은 지난해 봄 완공한 경기 판교 KT 신사옥 공사비 증액을 놓고 KT와 분쟁 중이다. 2020년 967억원에 공사를 수주한 쌍용건설은 2022년 7월부터 KT에 공사비를 171억원 증액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도급계약 체결 후 코로나19, 전쟁 등 불가항력적 요인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데다가 자재 반입 지연, 노조 파업, 철근 콘크리트 공사 중단 등 추가 악재가 이어지면서 원가가 크게 올라 171억원의 자금이 초과 투입됐다는 게 쌍용건설 측 주장이다.

하지만 KT 역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쌍용건설은 이와 관련해 작년 10월 국토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지만, 5개월이 지나도록 양측 간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에 쌍용건설은 지난해 10월에 이어 지난 12일 KT 광화문 사옥 앞에서 2차 시위를 벌일 계획이었지만, 시위 소식을 들은 KT 측이 협상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해 일단 시위는 연기한 상황이다.

공공공사 현장도 민간공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2022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세종시 집현동 공동 캠퍼스 건설공사를 수주한 대보건설은 LH와 공사비 증액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지난 5일 공사를 중단했다. 작년 10월 17∼26일에 이은 두 번째 공사 중단이다.

대보건설은 총 9개동 중 4개동의 준공을 반년가량 앞당겨달라는 LH의 요구에 따라 자체적으로 추가 공사비를 투입하며 공사를 진행했으나, 이 과정에서 레미콘 공급 차질,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 화물연대 파업 등 복합적인 사유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며 공사비 인상을 요구해 왔다.

대보건설 관계자는 “계약 당시 공사비는 750억원이었는데 300억원 이상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공사 중단 이후 LH 측과 협상을 재개했지만,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LH 측은 “건설업체와 계약금액 조정사항에 대해 적극 협의하고 있다”면서 “세종 공동캠퍼스 사업의 조속한 공사 재개와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건설사 재정건전성 빨간불
한산한 서울의 한 오피스텔 건설현장 [이충우 기자]
발자사와 시공사간 갈등은 지난해 급격히 늘어난 원가 부담으로 주요 건설사들의 수익성이 눈에 띄게 떨어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기업평가(KR)의 주요 건설업체 2023년 잠정실적 발표 보고서를 보면 분석 대상 16개 건설사의 작년 합산 매출은 전년 대비 13.8% 증가한 87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건설자재와 인건비 상승과 인플레이션 여파 지속 등의 영향으로 영업이익률(2%)은 전년 대비 2.5% 포인트 하락했다.

보고서는 매출은 기분양 주택물량 기성에 힘입어 모든 업체가 증가세를 나타냈으나, 영업수익성과 재무안정성은 원가부담 가중과 운전자본부담 확대 등으로 저하된 업체 수가 개선된 업체보다 많았다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해 대다수 건설사들은 이익 축소에 따른 현금흐름 저하, 분양선수금 감소에 따른 운전자본부담 등으로 인한 현금부족분을 외부자금에 의존함에 따라 차입금이 증가했다.

문제는 올해도 차입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부터 미분양에 따른 사업위험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건설업계는 2022년 이후 급격히 감소한 주택착공 추이로 인해 올 하반기부터 외형 축소 흐름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보고서는 미분양에 따른 공사미수금으로 인해 대손반영이 본격화될 수 있고, 이는 즉각적인 자본감소와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내놨다.

작년 12월 기준 전국 미분양주택은 6만2000가구로 지난해 3월 이후 9개월만에 증가세로 전환됐다. ‘악성 미분양’으로 평가받는 준공 후 미분양 역시 지난해 10월부터 1만 가구를 상회하고 있다.

보고서는 올해 내 금리 인하가 현실화되더라도 이러한 인하가 주택구매자들의 실질금리로 체감되는 시점은 내년에나 도래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9월말 기준 KR유효등급 보유 20개 건설사의 미수금은 약 31조4000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25.4% 늘었다.

최근 2년 동안 지속된 부동산 경기 침체와 6만 가구를 웃도는 미분양 주택, 공사비 급등, 고금리 지속 등으로 건설사들이 한계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작년 3분기까지 유효 신용등급을 부여한 상위 20개 건설사의 개발사업과 재건축 정비사업을 포함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총액이 3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 미수금은 약 31조4000억원으로 2022년보다 25.4% 증가했다. 시공능력평가 50대 건설사 중 14곳은 부채비율이 200%를 웃돈다.

50~200위권 중견 건설사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법정관리를 신청한 건설사는 새천년종합건설(105위), 선원건설(122위) 등 7곳이다.

폐업하는 건설사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건설사 폐업 신고는 704건(종합건설사 83건·전문건설사 621건,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이었다. 지난해 건설사 폐업은 581건으로 2005년(629건) 후 가장 많다.

건설사는 채무 축소와 자금 조달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신세계건설은 사모사채(2000억원) 발행, 레저사업부문 매각 등으로 한숨을 돌렸다. SGC이테크건설은 800억원 규모의 채무증권을 발행했다. 동부건설도 해외 현장 공사대금과 준공 현장 수금, 대여금 회수로 3000억원을 긴급 확보했다.

하지만 PF 우발채무 리스크 확산 속에 고금리 조달에 따른 건설사의 차입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1~2월 전국에서 새롭게 대출이 실행된 부동산 PF는 7건뿐이다. 그나마도 기존에 있던 대출을 차환하기 위한 PF 대출이 절반이고, 신규 공급을 위한 대출은 손에 꼽는다.

한 대형건설사 주택담당 임원은 “올해는 신규 사업을 최대한 자제하자는 방침”이라며 “금융회사에서 ‘대형사는 대출이 될 것’이란 얘기를 들었지만 금리 부담이 크고 시장 상황이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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