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모노 입었다는 이유로 밤새 5시간을 ‘꼬박’…애국주의에 발목잡힌 ‘이 나라’의 딜레마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4. 3. 1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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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톺아보기-124]
2022년 기모노 코스프레 의상을 입었다가 공안에 체포된 중국인 여성의 모습. [웨이보]
최근 중국 최고 갑부기업 ‘눙푸스프링(農夫山泉)’이 친일 논란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 라벨에 일본의 사원과 그림 등을 배경으로 사용했다는 것인데, 이를 계기로 다른 모든 제품들에 대해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죠. 눙푸스프링 측은 “녹차 제품 라벨에 있는 건물은 중국 사원의 건축 이미지를 기반으로 만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가라앉을 기미가 안보입니다.
불매운동 표적된 중국의 ‘국민 생수’ 기업 눙푸스프링 중국 네티즌들은 뚜껑 및 병의 색깔과 디자인이 일장기와 같고 포장에 그려진 산은 후지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웨이보]
자국산 음식료품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중국에서 드물게 품질을 인정받아온 이 브랜드에 대한 중국인들의 불매운동은 SNS를 통해 거침없이 확산되는 모양새 입니다. 제품의 명칭이 A급 전범이 합사된 일본 야스쿠니 신사를 형상화하고 있다거나, 생수병의 빨간 뚜껑이 일장기의 태양을 상징한다는 등 갖가지 추측이 떠돌고 있죠.
눙푸스프링 생수를 변기에 내다버리는 모습. [웨이보]
SNS에서는 눙푸스프링 제품을 변기에 쏟아버리거나 개봉하지 않은 제품을 냉장고와 통째로 철거하는 동영상까지 등장했습니다. 불매운동이 확산되자, 결국 지난 8일 중국 장쑤성의 편의점들은 눙푸스프링 생수를 판매하지 않겠다는 성명까지 발표했습니다.

지난 1월 장쑤성 난징시에 있는 한 대형 쇼핑몰에서는 새해를 기념해 붉은 동그라미를 넣어 디자인 한 포스터가 문제가 됐습니다. 일부 중국인들이 일장기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항의를 한 것인데, 결국 공안들이 나서면서 포스터는 철거됐습니다.

이에 대해 “모든 일출 이미지들에 일일히 트집을 잡게되면 태양을 형상화한 화웨이 로고 등도 문제 삼아야 된다”며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앞서 2022년 역시 장쑤성내 한 번화가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을 코스프레한 중국여성이 공안에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 여성이 입은 의상이 기모노였던 점이 화근이었습니다. 공안은 “중국인답게 하라”며 고함을 질렀고 연행된 이 여성은 밤새 5시간 넘게 심문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화웨이, 中서 아이폰 점유율 앞질러...민족주의·동조 압력 효과
한 여성이 중국 상하이 애플 매장에서 아이폰15 프로와 화웨이 메이트 60 프로를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하반기에 이어 올해도 중국에서 애플 아이폰 판매량은 눈에 띄게 급감한 반면, 화웨이 판매량은 급증해 두 회사의 점유율이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중국시장에서 아이폰은 이례적 할인행사에도 판매량이 올들어 첫 6주 동안 지난해 동기 대비 24% 감소, 중국 시장 점유율은 15.7%로 내려앉았습니다. 반면 같은기간 화웨이 판매량은 64%나 뛰었고, 점유율도 9.4%에서 16.5%로 급등 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중국 가계소비가 침체되면서 아무래도 가격이 싼 화웨이쪽으로 수요가 몰린 영향이 있겠지만, 정치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 아이폰 매출 감소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지난해 9월 부터 였습니다. 중국 당국이 공무원들에게 아이폰 사용을 금지했다는 외신발 보도(중국 당국은 부인)가 나온 시점이었죠. 이때 이미 중국의 아이폰 유저들 주변에서는 “중국을 사랑한다면 화웨이다. 아이폰을 쓰면 매국노” 라는 분위기가 만연했습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첨단 반도체를 확보하려는 중국과 이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려는 미국의 기술패권 경쟁은 중국인들에게 소위 그들만의 ‘대국 의식’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즉, 최근 아이폰 점유율 하락은 중국 대중들의 민족주의와 동조 압력이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죠.

오직 공산당만이 기준 제시할 수 있는 ‘당제 민족주의’
일본 지진 관련 발언을 이유로 소속 아나운서를 정직시킨 중국 하이난TV. [연합뉴스 캡처]
그런데 이처럼 중국 사회에서 발생하곤 하는 민족주의 광풍을 중국 정부가 전부 용인하는 건 아닙니다. 가끔씩 제재를 가하기도 합니다.

연초 난징의 쇼핑몰에서 일장기 소동을 유발하고 이를 웨이보 등에 생중계했던 왕훙(網紅·인플루언서)에 대해 중국 관영 CCTV는 조회수와 수익을 위해 “애국을 비즈니스 삼아 유해 활동을 했다”며 힐난했습니다.

같은시기 일본 노토반도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을 단행한 데 따른 “인과 응보”라고 발언했던 아나운서의 경우는 방송 출연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강조하며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온 중국 당국인데, 자국민들의 과도한 민족주의를 경계한다는 게 언뜻 모순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진핑 정부에게 애국과 민족주의는 미국 등 서방과의 대결을 연출함으로써 강권 통치를 정당화 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일 뿐입니다.

지난해 6월 시진핑 주석은 공산주의 청년단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애국의 진수란 국가와 함께 공산당과 사회주의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시주석이 어디까지나 ‘공산당 체제에 봉사하는 것’을 애국과 민족주의의 전제로 삼고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줍니다.

즉, 무엇이 애국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결국 그것이 공산당 체제를 이롭게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중국인들이 당의 이득과 상관없이 아무때나 애국이나 민족주의를 외칠때 당국이 제재를 가하려는 건 전혀 이상할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 됩니다. 한마디로 ‘당(黨)제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죠.

실제로, 지난해 11월 미중 정상회담 뒤 양국간 해빙 기류가 나타나자 CCTV 등 관영 매체들이 먼저 반미 톤을 다운시켰고 민간과 SNS에서도 일제히 여기에 보조를 맞추는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청년 실업률 등 경제상황 심상치 않은 中... 애국주의가 ‘딜레마’ 되나
중국이 이달 전인대에서 야심차게 제시한 경제 관련 목표치. 다만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매경DB]
결국 중국은 지금까지 당의 사정에 맞춰 애국주의의 수위를 조절해온 셈인데, 앞으로는 이렇게 하기가 점점 버거워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경제가 최근 수세에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지난해 GDP 성장률은 목표치를 소폭 상회한 5.2%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명목 GDP에서 채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287.8%(전년 대비 13.5% 증가)에 달했습니다. 이는 민간 소비가 냉각된 상황에서 정부 지출로 GDP를 지탱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점을 시사해주는 대목 입니다.

중국의 주택 가격은 24개월째 하락세 입니다. 주식시장은 2021년 9월 고점 대비 20% 가량 떨어지며 4년째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민간기업의 고정자산 투자는 0.4% 줄어들었는데, 이는 코로나 봉쇄가 삼엄했던 2022년 보다 더 위축된 수준 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최악인 청년 실업률 입니다.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2018년 공표 이래 지속적으로 올라, 지난해 6월 21.3%로 역대 최고치로 치솟은 바 있습니다. 그러자 당국은 한동안 청년실업률을 공개하지 않다가 지난 1월 “더 정확한 집계를 위해 새 기준을 적용했다” 며 집계대상에서 재학생수를 제외한채 14.9%라는 반쪽짜리 실업률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베이징대 경제학과 장단단 교수 등 전문가들은 중국의 실제 청년 실업률이 40%를 훌쩍 넘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실업률이 40%를 넘는다는 것은 만 16∼24세 중국인 2.5명 중 최소 1명 이상이 실업자라는 뜻입니다.

챗GPT가 경제난을 겪고 있는 중국 지도부가 민족주의 관련 직면할 수 있는 딜레마 상황을 형상화한 이미지.
그동안 중국에서는 경제성장의 과실로 국민의 삶이 윤택해졌다는 점1당 독재와 대중의 정치 참여 배제를 정당화해 왔습니다. 바꿔 말해 경제난으로 삶이 피폐해진다면 잠재돼 있던 중국인들의 사회적 불만도 표출되기 쉬워집니다.

어느나라든 국민들이 겪는 고통이 지속되면 불만의 화살은 지도부를 향하기 마련입니다. 다만, 중국은 근래 무자비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견디다 못한 일부 사람들이 ‘백지시위’ 에 나선 사례가 있긴 해도, 체제 특성상 당국에 대한 불만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긴 어렵습니다.

바로 그럴때 평소 국가적으로 대립해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나라들(미국, 일본, 최근에는 한국까지)은 사회적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기 좋은 대체 타겟이 됩니다. 불안과 불만이 커질수록, Z세대 등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애국 민족주의는 더 과격한 모습을 띌 수 있습니다.

그동안 민족주의 감정을 통치 도구로 적극 활용해 온 중국 지도부는 만약 앞으로도 경제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예전과 달리 통제에 어려움을 겪을것으로 예상됩니다.

애국과 민족주의가 오히려 중국 지도부를 점점 옥죄면서 그들의 이익에 쉽게 부합하지 않는 ‘딜레마’ 가 되는 셈입니다. 이럴 경우 내부의 긴장을 외부로 돌리면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등 주변 지역의 중국발 긴장이 더 고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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