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車, 창피해서 못타겠다”…‘연두색 번호판’ 슈퍼카, 뽐냈다가 X망신? [세상만車]
지난해 이미 다 샀다? ‘풍선효과’ 발생
법인차량 악용, 지켜보는 눈들이 많네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는 뜻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멋을 최우선 순위로 두는 태도나 생각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죠.
폼생폼사를 대표하는 차종은 ‘남자의 로망’이라는 슈퍼카입니다.
디자인과 성능이 매력적이어서 사기도 하지만 자신이 강한 남자, 능력 있는 남자라는 사실을 뽐내기 위해 구입하기도 합니다.
심리학과 동물행동학에 따르면 명차·명품을 진짜 좋아해서가 아니라 허세를 부리기 위해 구입하고 과도하게 과시하는 남자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승인욕구’가 강하다고 합니다.
잘난 체하지만 속으로는 낮은 평가를 받을까 불안해하고 자기혐오로 가득 찼다고 하죠.
거만하게 행동하는 이유도 사실은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크게 짖어대는 강아지, 목소리만 큰 사람이 떠오르지 않으신가요.
내 돈으로 사지 않은 고가 법인차량을 사적으로 악용하는 부류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회사차량을 내 차인 것처럼 여기고 뽐내는 심리는 남들보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매우 약해 자격지심이 심각한 부류에게 주로 발생합니다.
아니면 남들이 애써 낸 세금을 자기 돈인 마냥 마음껏 쓰고 싶은 ‘도둑 심보’ 때문일 수도 있겠죠.
국가는 세법 테두리 안에서 법인차량을 업무용으로 적법하게 사용하는 조건으로 혜택을 줍니다.
법인명의 차량은 구입비, 보험료, 기름값 등을 모두 이용자가 아닌 법인이 부담하고 세금도 감면받습니다.
법인명의 차량을 개인이 업무용·영업용 등 법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사적으로 악용하면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 혐의를 받습니다. ‘세금 도둑’이 될 수 있죠.
하지만 회사 찬스, 남편 찬스, 아빠 찬스를 악용해 업무용·영업용으로 보기 힘든 슈퍼카를 법인명의로 뽑아 악용하는 사례가 횡행했습니다.
“법인차량을 개인용도로 쓰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무너진 조세 형평성과 공정은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유리지갑 국민들에게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줬습니다.
국세청 단골 적발 사례라는 게 그만큼 자주 발생한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국내 최초(언론보도 기준)로 번호판 변경을 제안하고 꼼수 사용을 차단하라는 기사도 계속 썼습니다.
번호판 변경과 처벌 강화에 정치권도 반응했고, 2022년에는 대통령 공약으로 나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2년 1월 후보 시절에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원희룡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이 함께 출연한 쇼츠(59초 이내 동영상) 공약을 통해 법인차량 번호판 색상을 연두색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에는 법 시행이 구체화됐습니다. 같은 해 2월5일 당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법인차량 악용에 강력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는 “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슈퍼카를 법인차로 등록해 배우자와 자녀까지 이용하는 꼼수는 횡령·탈세 등 법 위반은 물론 우리 사회의 불공정과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였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이 시행된 지 2달이 지나면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와 국토교통부 자동차데이터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를 통해 지난해와 올해 1~2월 법인차량 등록현황을 비교·분석한 결과입니다.
포르쉐는 지난해 1~2월 판매된 1849대 중 1036대가 법의명의였습니다. 법인 비중은 56%에 달했죠.
올 1~2월에는 1505대 중 692대가 법인 몫이었습니다. 판매대수가 감소한 것은 물론 법인 비중은 45.9%로 낮아졌습니다.
람보르기니는 전년동기 판매대수 46대 중 38대가 법인명의였습니다. 법인 점유율은 83%였습니다. 올해는 11대 중 10대가 법인명의로 나왔습니다.
법인 대상 판매대수는 4분의 1 가량 줄었습니다. 다만, 법인 비중은 91%로 높아졌습니다.
벤틀리는 지난해 1~2월 판매대수 133대 중 101대가 법인용이었습니다. 올해는 24대 중 17대가 법인 몫이었습니다. 판매대수가 급감했고 법인 비중도 76%에서 71%로 떨어졌습니다.
롤스로이스의 경우 전년동기에는 31대 중 30대가 법인명의로 등록됐습니다. 올해는 20대 중 17대로 집계됐습니다. 판매대수는 절반 정도에 그쳤고 법인 비중은 97%에서 85%로 줄었습니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페라리는 같은 기간 기준으로 지난해에는 35대 중 33대, 올해는 49대 중 35대가 법인명의였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법인 판매대수가 크게 줄어든 다른 브랜드와 달리 페라리만은 소폭 증가했습니다. 다만 법인 비중은 94%에서 71%로 줄었습니다.
포르쉐 카이엔, 람보르기니 우루스, 벤틀리 벤테이가, 롤스로이스 컬리넌처럼 고성능·슈퍼카 브랜드 판매에 크게 기여하는 SUV인 페라리 푸로산게가 본격 판매된 영향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법인명의 차량을 탈세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는 ‘무늬만 법인차’로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됐다는 근거로 이 오류를 내세우죠.
실제 KAIDA 법인명의 통계에는 사업자 대상인 운용 리스 차량은 물론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는 금융 리스 차량과 렌터카도 포함됩니다.
단,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는 금융 리스는 절세 효과가 작습니다. 명의만 금융회사로 돼 있는 할부 개념이죠.
유지비, 관리비, 보험료, 취득세를 이용자가 부담해야 합니다. 계약 만기 때는 차량을 반납할 수 없고 인수해야 합니다.
억대 차량을 리스하려는 개인이나 법인은 할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금융 리스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장기 렌터카는 ‘하·허·호’ 등 빌린 티가 확 나는 번호판을 적용받기 때문에 슈퍼카·럭셔리카 이용자들이 꺼렸습니다.
억대 법인명의 수입차 이용자들이 가장 선호하고 악용 문제를 일으키는 상품은 법인 리스인 운용 리스입니다.
슈퍼카·럭셔리카, 고성능 스포츠카를 빌릴 때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수가 법인 리스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싼 수입차를 취급하는 딜러나 리스 회사들은 ‘절세’를 앞세워 법인 리스를 적극 권유해왔습니다.
하지만 법 시행이 너무 지연돼 살 사람은 이미 샀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번호판 변경은 지난 2022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공약’으로 선보였습니다. 시행까지는 길게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그 사이 연두색 번호판을 피하려는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실제로 딜러들도 ‘연두색’을 실적 올리는 데 사용했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승용차 등록 현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신규 등록한 3억원 이상 법인 승용차는 1858대였습니다. 취득가액 3억∼5억원 차는 1554대, 5억원 초과 차는 304대에 달했습니다.
2022년에는 3억원이 넘는 법인차 등록 대수가 1173대(3억∼5억원 934대, 5억원 초과 239대)였습니다. 1년 만에 685대(58.4%) 급증한 셈입니다.
3억원 이상 자동차 등록대수는 2018년에는 357대였습니다. 5년 만에 5.2배 증가한 셈입니다.
8000만원 미만이면 연두색 번호판을 달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을 맞출 수 있는 프리미엄 수입차가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BMW는 지난해 1~2월 판매된 1만2470대 중 3586대, 올해는 1만419대 중 4139대가 법인명의로 나왔습니다. 법인 비중은 29%에서 40%로 올라갔습니다.
벤츠는 같은 기간 8419대 중 4682대, 6523대 중 2945대가 법인 몫이었습니다. 법인 비중은 56%에서 45%로 줄었습니다.
벤츠는 지난해에는 법인차량 수요 확대에 적극 나서 실적을 올렸습니다. 올해는 물량 부족으로 판매대수도 법인비중도 감소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일부 수입차 브랜드는 8000만원 이하에 맞출 수 있게 할인을 해주거나 ‘다운 계약서’를 활용하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미 엉성한 그물 때문에 큰 물고기들이 많이 빠져 나가고 올해도 구멍을 뚫는 편법이 등장했습니다.
다만, 마중물 역할은 할 수 있습니다. ‘시행착오’를 철저히 분석한 뒤 법과 제도를 계속 개선해 빠져나갈 구멍을 좁히고 촘촘하게 엮으면 됩니다. 강력한 처벌 조항도 마련하면 됩니다.
폼생폼사 법인차 악용 부류가 신경쓰는 ‘남들의 시선’도 법인차량 악용을 차단하는 데 중요할 수 있습니다.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 법인 돈으로 구입한 차를 영업용이나 업무용으로만 쓰지 않고 사적으로 악용하면 망신당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합니다.
“오빠(차) 멋있다” 대신 “오빠차 창피해서 못 타겠다”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비싸고 멋지더라도 횡령·탈세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주홍글씨 세금도둑 차량에 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니까요.
물론 업무·영업용에 매우 부적절하게 여겨지는 법인용 슈퍼카라도 정해진 용도로만 사용한다면 문제될 게 없겠죠.
“우리 회사 직원들은 영업용으로 슈퍼카 탄다”고 자랑할 수도 있겠죠.
무엇보다 멋진 슈퍼카를 타는 멋진 남자로 여겨지고 싶다면 비겁하게 ‘찬스’를 쓰는 게 아니라 ‘내 돈’으로 사는 게 진짜 멋진 행동 아닐까요.
혹시라도 “연두색 번호판은 돈 많다는 부의 증거”라며 횡령·탈세를 개의치 않고 계속 사적으로 악용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이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이제는 도로, 주차장, 유흥가, 여행지, 동호회 등 곳곳에서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지켜보는 눈들이 아주 많아졌다는 것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목받는 ‘주차 빌런(악당) 고발’처럼 ‘세금도둑 차량 고발’이 유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켜보겠습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한국서 누가 이런 車 사” 욕했는데…美친 아빠차 “우리 가족은 VIP” [최기성의 허브車] - 매
- 손흥민 이어 오타니 초청에 수백억 ‘펑펑’...온라인 유통제왕 쿠팡의 속셈 [소비의 달인] - 매
- ‘난교 발언’ 논란 장예찬…결국 공천 취소됐다 - 매일경제
- “초등 담임 고작 8시간 일하나”…대기업맘, 되레 뭇매 - 매일경제
- 오타니 거짓말했다…평범하다던 미모의 아내, 놀라운 과거 ‘깜짝’ - 매일경제
- “의사 관두고 용접이나” 발언에…용접협회장 “용접이 우습나” - 매일경제
- “엄마 배고파 밥줘~”…2030 캥거루족 “딱히 독립할 필요 있나요” - 매일경제
- “‘2000명’ 먼저 풀어야…지속되면 국민건강 돌이킬 수 없는 피해” - 매일경제
- “건물주가 마음대로 세입자 구해 왔어요”…내 권리금 어찌하오리까 - 매일경제
- 괴물과 처음 마주친 꽃도 놀랐다 “류현진 구속이 벌써 148km라니…한 번 본 게 큰 도움 될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