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납치해 성노예로 만든 집단···만화 ‘원피스’에 등장한다? [사색(史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4. 3. 17.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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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61]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무엇일까요. 답은 50억권의 성경입니다. 만화책으로 범위를 좁혀봅니다. 왕좌는 ‘원피스’가 차지합니다. 1997년 첫 권 이후 무려 올해까지 5억권이나 팔렸기 때문입니다. 원피스가 ‘만화계’의 성경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원피스는 해적 루피가 보물 ‘원피스’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립니다. 27년간 연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을 모릅니다. 넷플릭스에 실화 영화가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고무고무~”, “너 내 동료가 돼라.” 수많은 명대사가 여전히 남녀노소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지요.

1866년 장 레온 제롬의 ‘슬레이브 마켓’. 이슬람 해적단에 의해 납치된 백인 여성들은 주로 오스만 제국에 끌려갔다.
‘원피스’는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그 기반에는 실화가 적절히 녹아 있습니다. 수많은 캐릭터 중 실존한 ‘바다 사나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인 여성을 납치해 오스만제국에 팔아넘긴 해적들도 캐릭터 중 하나로 등장합니다. 역사 덕후들이 원피스에 빠져드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원피스에 녹아 있는 역사 이야기를 전합니다. 윤슬이 가득한 봄 바다가 그리운 시기여서입니다.
만화 ‘원피스’ 표지. [사진출처=shueisha]
태초에 ‘해적’이 있었다
해적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등장합니다. 로마 카이사르가 해적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기록이 있었을 정도지요. 해적들은 부유한 국가의 부를 무력으로 빼앗는 걸 즐겼습니다. 무역이 활발할수록 약탈품은 늘어갔지요. 포도주, 올리브유, 밀, 노예가 이들의 먹잇감이었습니다.

로마는 제국의 전 거점에서 물류를 운송합니다. 이런 양질의 보물들을 해적들이 놓칠 리 없었지요. 로마의 군사들은 육지에선 무적이었지만, 해적의 홈그라운드인 바다에선 예외였습니다.

중세 지중해를 주름잡은 바르바리 해적.
11세기 중세 지중해는 해적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무역의 핵심지역인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이슬람 해적들이 명성을 떨립니다. 바르바리 해적이었습니다. 1530년부터 약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150만~200만 명 이상이 이들에게 노예로 끌려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해적, 권력과 손을 맞잡다
이슬람의 맹주인 오스만 제국은 바르바리 해적을 ‘전략’적으로 육성했습니다. 스페인이 ‘레콩키스타(재정복)’로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냈을 때입니다.

오스만 제국으로서는 동유럽과의 전쟁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서유럽을 견제할 필요성이 있었지요. 바르바리 해적을 물질적으로 지원하면 서유럽이 해안을 통해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바르바리는 이슬람 해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집단이었다. 그림은 피에르 프란체스코 몰라의 1650년 작품.
바르바리 해적들은 오스만의 ‘사략선’(국가에 의해 공인된 해적)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지중해와 북해에 면한 국가들을 약탈해 기독교 여성들을 납치하곤 했었지요. 오스만 제국 ‘하렘’의 노예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금발, 흰 피부를 가진 여인들이 오스만제국의 군주들의 후궁으로 이름을 알린 배경입니다. 백인 여성들은 ‘화이트 골드’라고 통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지요. 오스만제국에서 가장 위대한 군주로 통하는 술레이만 대제의 황후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록셀리나라는 여성이었습니다. 노예로 끌려와 황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지요.

술레이만이 그녀를 어찌나 사랑했던지. 그 세레나데가 지금도 전해집니다. “나의 동반자, 나의 사랑, 빛나는 나의 달빛이여.”

오스만제국의 명군 ‘술레이만’ 대제.
술레이만의 소울메이트는 백인 노예인 우크라이나 출신의 록셀리나였다.
해적에서 영웅이 된 하이르 앗 딘
술레이만에게 가장 인정받던 해적은 하이르 앗딘이었습니다. 스페인에 공격받은 알제를 구원해 지도자로 오르면서였습니다. 빨간 턱수염으로 기독교 세력에 맞섰기에 그는 ‘붉은 수염’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내가 지중해의 주인 ‘하이르 앗딘’이라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삼지창은 바다의 주인을 상징한다.
술레이만 대제는 그의 공적을 인정해 바르바리 해적인 그를 오스만 제국 해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명성에 걸맞게 그는 카를 5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대활약을 펼쳤지요.

만화 ‘원피스’에서 밀짚모자 루피의 산하 해적단이 된 ‘거인’ 하이 루딘이 이 사내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입니다. 지금도 튀르키예에서도 하이르 앗딘은 ‘해군의 아버지’로 통하지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사극 드라마까지 있을 정도입니다(바르바로사: 지중해의 검).

하이르 앗딘 바르바로사의 그림. [사진출처=Fine Art Museum - Algiers]
오스만의 사략선 전략을 배운 잉글랜드
“우리도 해적을 육성하자.”

해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오스만의 전략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잉글랜드였습니다. 제국을 일군 스페인의 강력한 해군과 싸우기에 잉글랜드는 아직 미약한 나라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강 대 강’으로 맞붙으면 참패했을 게 자명했지요. 엘리자베스 역시 오스만제국의 지혜를 빌렸습니다. 해적을 육성해 스페인의 상선과 무적함대를 교묘히 괴롭히는 전략이었습니다.

“스페인과 정면승부하기엔 우리나라는 너무 약한데...”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그때 등장한 인물이 ‘프랜시스 드레이크’였습니다. 제법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몰락한 집안의 인물. 그는 어려서부터 사략선에 올라 아메리카 대륙까지 섭렵한 인물이었지요. 그때부터 스페인들의 상선을 무자비하게 털어 명성이 높았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적임자라고 여겼습니다. 물론 외교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임무는 비밀리에 또 은밀하게 수행됐습니다.

“우리 가문의 과거는 묻지 마시게.” 가운데가 프랜시스 드레이크.
해적 드레이크 잉글랜드를 부유하게 하다
1570년 드레이크는 임무를 완벽히 수행합니다. (잉글랜드 왕실이 지원한)원정대를 이끌고 스페인 앞바다로 항해해 왕실의 재물을 훔쳐오는 데 성공합니다.

그가 엘리자베스에게 바친 재화는 30만 파운드에 달했습니다. 당시 잉글랜드 왕실의 1년 국고 수입보다 많은 액수였습니다. 원래 아메리카 대륙까지 제집 드나들듯 하는 그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요. 마젤란 다음으로 세계 일주를 완수한 것도 드레이크였습니다.

“드레이크를 당장 처벌하라.” 스페인 펠리페 2세는 잉글랜드 해적에 대한 분노를 쌓아가고 있었다.
스페인은 잉글랜드 왕실에 요청합니다. 잉글랜드의 해적들을 소탕할 것을. 엘리자베스는 당연히 침묵을 지켰지요. 두 나라 사이에 전운이 감돕니다. 가톨릭의 무적함대 스페인과, 개신교의 신성 잉글랜드의 대결이었습니다.
잉글랜드를 구한 것도 ‘해적’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더 이상 숨기지 않았습니다. 1581년 드레이크를 불렀습니다. 신하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그에게 기사작위를 내리지요. 해적 드레이크에서, 서(Sir) 드레이크가 된 것이었습니다. 잉글랜드의 함대를 지휘하라는 무거운 책임이 그에게 지워집니다.
칼레 해전은 양국의 역사를 뒤바꾼 전투다.
도버해협에 141척 함선이 출몰합니다. 무적함대였습니다. 잉글랜드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스페인 펠리페 2세의 분기가 담겨있었습니다. 이름도 유명한 ‘칼레 해전’입니다. 1588년 7월의 일이었습니다.

드레이크는 완벽한 바닷사람이었습니다. 해류를 읽고 빠른 기동성을 보여서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해적처럼 치고 빠지는 ‘아웃복서’ 스타일에 스페인 함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요. 안달루시아 함대를 포박해 항복을 받아낸 것 역시 드레이크였습니다.

화공으로 박살나는 스페인 무적함대.
잉글랜드는 8척의 함선에 불을 붙여 바람에 흘려보냅니다. ‘화공법’이었습니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처럼 그 함선이 스페인 무적함대의 전열을 완전히 깨뜨립니다. 이제 바다의 지배자는 잉글랜드였습니다.

대영제국의 시작을 알린 영웅이 ‘해적’이었던 셈입니다. 1596년 그가 열병으로 사망하기 직전 남긴 말입니다. “미래에 잉글랜드가 큰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면 자신이 전쟁을 지휘할 때 사용한 북을 울려 미리 알리겠다” 1914년 세계 1차대전 때도 이 북이 잉글랜드 함대에서 울렸다고 전해집니다.

“항복합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오른쪽 흰 갑옷)에게 항복하는 안달루시아 함대 사령관.
영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드레이크를 꼽는 배경입니다. ‘원피스’에서 루피와 함께 최악의 세대로 나오는 인물 X 드레이크가 그를 본떠 만들어졌습니다. X드레이크 역시 프랜시스 드레이크처럼 해적이면서 동시에 해군이지요.
“스페인을 잡을 수 있다면, 해적이면 어떻고, 해군이면 어떠랴.” 무적함대를 무찌른 후 그려진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지구본 위에 손을 대고 있는 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상징한다.
신대륙까지 뻗어나간 ‘대항해 시대’
드레이크가 보여주듯, 해적의 주요 앞마당은 이제 지중해를 벗어나 아메리카 대륙까지 뻗어갑니다.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 모든 무역의 중심지가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이뤄지면서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도둑이 있기 마련이지요. 해적들은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인 캐리비언 해역을 본거지로 삼고 약탈을 일삼기 시작합니다. 18세기 캐리비언은 그야말로 ‘대해적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해적의 세상이었습니다.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는 원피스의 흰수염과 검은수염 두 캐릭터의 모티브가 됐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악당은 에드워드 티치였습니다. 1713년부터 캐리비언에서 활동한 그는 가장 강력한 해적 중 하나로 통합니다. 4년의 해적질 동안 그가 약탈한 금액은 15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큰 키와 덩치로 엄청난 중압감을 보였다고 전해지지요.

영국 함대에 승선한 적이 있던 그는 전쟁이 끝난 뒤 본격 해적으로 ‘전업’을 결정합니다. 40척이 넘는 배를 약탈할 정도로 악명 높은 인물이 되었지요. 캐리비안에서 프랑스 국적 노예 운반선인 콩코드를 나포한 것도 그였습니다.

검은수염의 ‘해적기’.
영국 해군은 에드워드 티치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상업 활동에 방해를 주는 그를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718년 11월 영국 해군이 포위에 성공합니다. 그는 끝까지 저항했지만 영국 해군을 당해낼 순 없었습니다. 25곳에 상처를 입은 뒤 그의 거대한 몸뚱이가 쓰러집니다.

‘원피스’의 대해적 흰수염 에드워드게이트와 끝판왕 악당 검은수염 마샬 디 티치가 이 한사람으로부터 탄생한 캐릭터지요. ‘피터팬’의 후크 선장 역시 그의 외모를 기반으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포획되는 검은수염. 장 레옹 제롬 페리스의 1920년 작품.
검은수염의 함선인 ‘앤 여왕의 복수’의 모형. 거대한 크기가 해적단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해적왕 골드로저...진짜 해적왕은 따로 있었다
망망대해 어딘가에 숨어있을 ‘보물’의 존재는 모든 뱃사람의 로망이었습니다. ‘원피스’ 역시 해적왕 골D. 로저가 남긴 ‘원피스’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지요. 이 이야기 역시 모티브가 존재합니다.

한 해적이 엄청난 보물을 숨겨놓은 채 죽음을 맞이했다고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17세기 영국 해적 ‘윌리엄 키드’가 그 주인공입니다(또 다른 별명은 캡틴 키드. ‘원피스’의 유스타스 키드).

키드가 보물을 묻는 상상화. 후대 화가 하워드 파일의 1921년 그림.
스코틀랜드 출신 윌리엄 키드는 잉글랜드 정부로부터 프랑스 선박을 공격하는 임무를 받은 ‘사략선’의 선장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공격에도 성공했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착오로 인해 인도 무굴제국의 선박을 포획한 것이었지요. 외교적 문제로 비화하자 집권당인 휘그당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집니다. 야당인 토리당이 지속해서 문제 제기를 했기 때문이지요. 휘그당은 궁여지책으로 ‘꼬리 자르기’를 결심합니다. 키드를 해적으로 몰아 사형시키고 자신들과 연관성을 끊어버리자는 것이었지요.

“제 보물은 여기 어디에 있소, 부인.” 뉴욕 항구의 키드선장. 장 레옹 제롬 페리스의 1920년 작품.
사형이 결정된 후 키드는 자신이 숨겨 놓은 보물에 대해 털어놓습니다. 실제로 그 장소에서 일부 귀중품이 발견되기도 했었지요. 뉴욕 인근 가디너스 섬(Gardiners Island)도 그 후보군 중 하나였습니다.

그가 죽은 뒤에도 전설은 살을 더해갑니다. 세상 모든 진귀한 보물을 그가 특정 장소에 숨겨뒀다는 내용. 보물섬과 원피스 등 각종 보물찾기 콘텐츠의 시작이었습니다. 실제로 발견된 보물은 거의 없다시피하지만, 그는 ‘이야기’라는 엄청난 보물을 남긴 셈입니다. ‘원피스’의 작가 오다 에이치로의 재산은 수천억원으로 추산됩니다(진정한 해적왕!!).

해적에 의해 공격받는 프랑스 선박. 1615년.
P.S. 2008년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재밌는 기사를 출고합니다. 역대 최고의 ‘해적왕’을 뽑는 기사였습니다. 약탈 금액을 기준으로 선정한 것이었지요. 2위는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 1억 1500만달러를 턴 것으로 산정합니다. 우리 돈으로 1500억원이지요.그가 조국에 이바지한 승리까지 고려하면 그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입니다.

1위는 ‘블랙샘’으로 불린 새뮤얼 벨라미였습니다. 그는 50척이 넘는 배를 털어 1억 2000만달러를 손에 쥐었습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가까스로 넘어선 수준이지요. 역사 속 진짜 해적왕인 벨라미지만, ‘원피스’에서 그의 비중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네줄요약>

ㅇ고대부터 해적은 존재해왔다. 바다까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해서다.

ㅇ정치 권력은 해적과 손을 잡기도 했다.

ㅇ오스만 제국은 해적 하이르 앗딘을 이용해 기독교 세력을 견제하고, 잉글랜드는 해적 드레이크를 활용해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찔렀다.

ㅇ두 사람은 모두 원피스에 나온다. 그래서 원피스가 재밌다.

<참고문헌>

ㅇ앵거스 컨스텀, 해적의 역사, 가람기획,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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