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속 세상 알록달록 페나궁전 만나는 ‘포르투갈 숨은 보석’ 신트라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2024. 3. 1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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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서 기차타고 40분 당일치기 인기여행지로 인기/알록달록 동화같은 ‘왕실 여름별장’ 페나궁전/북아프리카서 건너온 이슬람 세력 역사 살아 숨쉬는 무어인의 성/단테의 ‘신곡’ 등장 9층 지하탑 만나는 헤갈레이라 별장/시인 바이런 “에덴의 동산” 극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트라 페나궁전.
지하세계로 향하는 9층 깊이 나선형 계단. 돌고 돌아 한층 한층 내려설 때마다 빛은 줄고 어둠은 짙어지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맨 아래층에 내려서자 온통 어둠이다. 하지만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 지나온 나선형 계단 위로 쏟아지는 파란 하늘은 희망이 가득하다. 내가 선 곳은 지옥, 머리 위는 천국.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꾸민 포르투갈 신트라 문화경관지구 헤갈레이라 별장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을 생각한다.
여행1면
여행2면
◆알록달록 동화 속 나라 페나 궁전

에덴의 동산.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신트라를 보고 이렇게 극찬했단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바이런이 반했을까.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신트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타자 벌써 가슴이 설렌다. 14∼20세기 초 역대 왕들의 여름별장으로 사용된 신트라는 리스본 여행자들에게 인기 높은 당일치기 여행지. 기차를 타고 편하게 다녀올 수 있어서다. 리스본 시내 호시우 기차역을 이용하면 신트라역까지 40분이면 닿고 리스보아 카드가 있으면 무료다.

페나궁전 입구.
여행자들은 대부분 신트라역 앞에서 기다리는 434번 순환버스에 올라탄다. 신트라에는 대표적인 성과 궁전만 6개에 달해 신트라 지구를 도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하루 이용권이 13.5유로이며 434번과 435번을 타면 무어인의 성, 페나 궁전, 신트라 궁전, 헤갈레이라 별장 등 주요 명소와 연결된다.
페나 궁전 입구 기념문.
구불구불 산길을 달리던 버스는 20여분 만에 무어인의 성을 지나 페나 궁전에 여행자를 내린다. 정원과 페나 궁전 외관만 둘러보는 입장료는 8유로, 내부까지 보려면 14유로라 저렴하지 않다. 최근 예매사이트를 확인해 보니 한 달 만에 20유로까지 올랐다. 외관만 둘러봐도 충분하니 가격이 부담된다면 정원 티켓만 구입하면 된다.
페나 궁전 전경.
 
페나 궁전 전경.
이름 모를 새가 재잘거리는 수목이 울창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10여분 가파른 언덕을 올라 다이아몬드 모양 부조가 설치된 이국적인 개선문을 통과하면 동화 속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봄의 전령사 개나리를 닮은 짙은 노랑으로 궁전의 외관이 채색됐고 푸른 타일장식 아줄레주와 빨간색 탑까지 어우러져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환상적이다.
페나 궁전 전경.
페나 궁전 안뜰 입구.
페나 궁전의 역사는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페나의 성모’를 기리는 예배당이 있던 곳으로 마누엘 1세 국왕이 ‘페나의 성모 수도원’을 건축했다. 하지만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됐고 1834년 수도회 폐지령으로 아예 폐허가 돼 버렸다. 이를 지금의 알록달록한 감수성 넘치는 동화의 궁전으로 복원한 이가 1836년, 마리아 2세 여왕과 결혼한 작센왕가의 페르디난드 2세다. 음악과 그림에 심취해 ‘예술가의 왕’으로 불리던 그는 신트라의 경관에 반해 왕실 여름별장용으로 건물 복원을 시작, 마누엘 양식과 무어 양식을 결합한 놀라운 풍경의 페나 궁전을 완성했다.
트리톤 조각상.
페나 궁전 교회.
 
제단.
푸른 아줄레주 장식 건물을 관통해 안뜰로 이어지는 통로 위에는 트리톤(triton) 조각이 무서운 눈을 부라리고 있다. 반은 인간, 반은 물고기인 트리톤은 페나성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수중과 육상 세계를 연결하는 존재. 세 개의 조개 위에 앉은 트리톤의 머리에서 자라난 포도 덩굴은 그가 두 팔로 잡고 있는 창문으로 연결돼 육상 세계로 이어진다. 16세기 포르투갈 국민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 6장에 묘사된 존재로 전해진다.
스테인드글라스 마누엘 1세.
스테인드글라스에 담긴 페나궁전 교회.
스테인드글라스에 담긴 교회 스테인드글라스.
안뜰로 들어서면 교회와 제단 건물이 등장하며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하다. 페르디난드 2세가 1840년 독일 뉘른베르크의 켈너 공방에 주문해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으로, 아래쪽에 ‘테주강의 귀부인’ 벨렝탑을 배경으로 대항해 시대를 이끈 마누엘 1세와 1498년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한 바스쿠 다가마를 담았다. 위쪽에는 성모 마리아와 성 게오르기우스가 묘사됐고 팔방위 항해용 기구, 기사단 십자가, 작센 왕실 문장과 포르투갈 왕실 문장이 결합된 페르디난드 2세의 문장으로 장식됐다. 자세히 보면 페르디난드 2세 왼쪽 어깨 위에 창문이 그려졌는데 바로 밖에서 보이는 건물의 스테인드글라스다.
페나궁전에서 본 무어인의 성.
 
무어인의 성 가는 길.
무어인의 성 입구.
◆무어인의 성에 올라 신트라 역사를 마주하다

페나 궁전에서 걸어서 5분이면 무어인의 성 입구에 닿는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즐기며 오솔길을 걸으면 성벽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헉헉거리며 가파른 성벽길을 따라 무어인의 성 정상에 오르자 페나 궁전과, 신트라 마을, 그리고 저 멀리 대서양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가파른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의 길이는 약 450m로 12개의 망루가 남아 있다.

무어인의 성 정상.
무어인의 성 정상.
무어인의 성 정상.
8∼9세기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온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들이 건설했는데 성벽과 망루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 옛 역사를 전한다. 한때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지배하던 무어인들은 12세기 이베리아반도 북부 가톨릭 왕국들이 무어인을 축출하는 레콩키스타(Reconquista)를 펼치자 이곳을 중요한 방어 거점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1147년 포르투갈 아폰수 1세가 2차 십자군 세력과 연합해 무어인의 성을 정복하면서 그들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무어인의 성 성벽길.
 
무어인의 성 망루.
무어인의 성 망루.
무어인의 성 망루.
이곳도 리스본 대지진 때도 많은 피해를 봤고 페르디난드 2세가 무어인의 성도 복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풍스러운 성벽이 운치를 더하고 망루를 배경으로 인생샷도 건질 수 있으니 걷기 좀 힘들지만 신트라 여행에서 무어인의 성은 꼭 둘러봐야 한다. 신트라 궁은 ‘문장의 방’으로 불리는 웅장한 돔 천장이 압권이다. 16세기 포르투갈 명문 가문 72곳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헤갈레이라 별장 지하 9층탑 입구.
 
헤갈레이라 별장 지하 9층탑.
◆단테의 ‘신곡’ 만나는 헤갈레이라 별장

페나성과 무어인의 성만 둘러봐도 오전이 후딱 지나간다. 신트라 마을에서 느긋한 점심을 먹은 뒤 걸어가면 헤갈레이라 별장까지 10여분이면 닿는다. 신트라 여행은 헤갈레이라 별장에서 정점을 찍는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신비한 지하 연못 덕분이다.

헤갈레이라 별장 지하 9층탑.
바닥에서 올려다 본 지하 9층탑.
많은 화려한 건물 사이에 보잘것없는 돌무더기를 쌓아 올린 곳에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입구가 보인다. 신석기시대 무덤 모양으로 만든 통로를 지나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광경이 펼쳐진다. 9개 층으로 이뤄진 우물처럼 생긴 지하탑이 땅속 깊은 곳까지 까마득하게 펼쳐진다.
미로.
미로.
단테의 신곡에서 ‘9’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람이 죽으면 죄의 경중에 따라 아홉 단계로 이뤄진 지옥으로 가게 되고 연옥을 뜻하는 아홉개 테라스에서 자신의 죄를 씻고 구원을 얻는다. 헤갈레이라 지하탑은 각 층마다 테라스를 만들어 이를 정확하게 표현했다. 맨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역시 신곡에 나오는 9개 하늘이 펼쳐진다. 영혼이 속죄하고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갈수록 신과 가까워진다는 매우 심오한 철학을 담았다.
연못.
연못.
맨 아래층에서 미로가 이어지는데 마음을 비우는 과정이다. 미로 끝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오른쪽 어두운 터널은 죽음, 자연광이 들어오는 왼쪽길은 삶을 뜻한다. 왼쪽을 선택해 끝까지 가면 찬란한 빛이 쏟아지며 생명을 뜻하는 물줄기가 연못 위로 쏟아져 내린다. 연못 수면 위에 놓인 징검다리는 부활. 기암괴석을 흐르는 맑은 물이 녹색 이끼로 덮인 연못 위로 작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공중에 돌다리까지 놓인 풍경은 예쁘면서 신비롭다. 하지만 연못 징검다리는 통제돼서 건널 수 없으니 ‘죽음’을 통해 밖으로 나와야 한다.
헤갈레이라 별장 전경.
헤갈레이라 별장 전경.
이런 정교하고 독특한 구조물을 사람이 만들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이 별장은 브라질에서 커피와 보석 수출로 백만장자가 된 카르발류 몬테이루가 헤갈레이라 자작 부인 땅을 사들여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조각가들 고용, 6년 공사 끝에 1910년에 완성했다. 그의 이름을 따 ‘백만장자 몬테이루의 궁전’으로도 불린다.
헤갈레이라 별장 전경.
 
연못 돌다리.
축구장 5개 정도인 4만㎡ 부지에 건물 6개, 호수, 정원 등 시설 24개를 갖췄다. 연못에서 보이던 공중의 돌다리로 가는 길은 숨은그림찾기처럼 어렵다. 헤갈레이라 별장 본관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돌다리로 연결되는 작은 길이 숨어 있다. 예쁜 새가 지저귀는 다리 위에 서서 찬란한 햇살을 받으니 마치 지옥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얻은 이의 평화로운 영혼처럼 가슴이 싱그러운 생명력이 요동친다. 

신트라=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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