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격전지] “추미애씨 하남이 만만해?” “이용이 누구죠?”

하남=이슬기 기자 2024. 3.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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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손민균

“뭣하러 와 여기를 감히! 그렇게 만만해?”

“어디서 또 행패야? 술 먹었으면 그냥 집에나 가!”

지난 14일 오후 경기도 하남덕풍시장 한복판에선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이용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후보가 나란히 다녀간 직후, 두 행인의 말싸움이 시작됐다.

이날은 덕풍 5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추 후보가 보좌진과 명함을 돌리며 인사하자, 마스크를 쓴 70대 여성이 “감히 어디라고 오느냐”며 다가왔다. 캠프 관계자가 “열심히 하겠다. 인사드리러 왔다”며 제지하자 “얼굴에 철판 깔았냐”는 고성이 돌아왔다. 이를 지켜보던 70대 남성은 “(추미애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했다.

좁은 시장통에 서있던 주민 일부도 거들었다. 반찬가게 앞을 지나던 중년 남녀는 “추미애가 왜 왔어?”라며 걸음을 멈췄다. 50대로 보이는 여성 3명이 “저 아줌마 또 왔네. 아예 상종도 마세요”라며 “윤석열 독재 청산!”이라고 했다. 조금 전 생선가게 앞에서 추 후보를 반기며 사진촬영을 한 이들이었다.

족발집 매대에선 “강병덕(민주당 예비후보)은 어디가고 갑자기 웬 추미애냐” “이미 추미애가 된 거 몰랐느냐” “에이 설마?” “거 뉴스좀 보셔”라는 상인들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족발에 막걸리를 들이키던 남성들 사이로 “이창근(국민의힘 예비후보)이 여론조사 전화 기다렸는데 안 오더라” “딴 데로 갔대. 옆(하남을)으로” “왜?”라는 말도 들렸다. 민주당은 전략공천, 국민의힘은 제한 경선을 하면서 탈락한 후보들을 찾는 말들이었다.

하남 덕풍재래시장 입구. 도로 건너편엔 2024년 3월 말 입주 예정인 아파트 단지가 있다. /이슬기 기자

◇‘거물 외지인’ 내려오자 “그래도 민주당호불호는 커”

하남갑은 22대 총선부터 신설된 지역구다. 원래 하남 1개 선거구였지만, 감일·위례·미사 등에서 인구가 꾸준히 늘어 하남갑, 을로 나뉘었다. 갑은 감일지구 등 토박이 주민들이 모인 원도심이다. 도농복합지역으로, 신도시 위주인 하남을에 비해 보수 지지세도 만만치 않다. 하남갑 지역에선 2020년 총선때 민주당이 이겼지만, 2년 뒤 대선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이겼다. 하남 전체에선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소폭 앞섰다.

갑 내부에서도 지역 현안은 제각각이다. 이날 여야 후보가 다녀간 덕풍동은 하남 원주민들이 모인 동네다. 8차선 도로를 사이로 아직 입주도 안 한 1000가구짜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있다. 건너편은 덕풍 재래시장이다. 매달 4·9일마다 5일장이 선다. 도시에선 만나기 어려운 ‘장날’이 볼거리다. 골목마다 수십년이 지난 낡은 상점, 주택가를 끼고 있다.

여기서 10여분만 걸으면 신장동인데, 대형마트를 품은 주상복합 아파트가 나온다. 보도블록 하나까지 ‘새것’티가 나는 신도시와 아늑한 지방 소도시의 풍경이 교차한다. 따라서 개발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이와 달리 위례는 서울 송파구와 접한 2기 신도시다. 행정구역은 하남이지만, 생활권은 송파와 훨씬 가깝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사실상 ‘서울시민’이다. 자연히 ‘서울 편입’ 이슈가 최대 관심사다.

이날 덕풍동과 신장동에서 만난 이들 대부분은 “여기서 40년 살았다”는 고령층 토박이들이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60대 남성은 “DJ때부터 민주당원”이라며 “여긴 그냥 민주당 밭이다. 호남 출신이 많고 김대중, 노무현에 대한 애정도 크다”고 했다. ‘그럼 추미애 후보가 당선될 거라 보느냐’고 묻자 “당선은 건데, 후보 결정된 거 보고 좀 놀랐다”는 답이 돌아왔다.

점주는 “노무현 탄핵이란 과오가 있지 않느냐”며 “여긴 민주당이면 무조건 찍지만, 추 장관은 호불호가 크다. 하남을로 나왔으면 훨씬 쉬웠을텐데 왜 여기로 왔나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이용 후보를 묻자 “여긴 그쪽 검찰 놈들은 사람으로 안 본다. 될 일이 없다”고 했다. 또 “추미애가 어렵게 싸우다 이기지 않겠냐”고도 했다.

국민의힘 하남갑 이용 후보와 배우자가 14일 하남 덕풍시장에서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슬기 기자

시장 초입에 떡집 주인은 하남에서 30년을 살았다고 했다. 이날 이 후보와 아내가 장바구니 밀차를 끌고 오자, 그는 “이제 (옷에 쓰인) 예비후보 떼어야지”라고 살갑게 말했다. 이 후보가 “추미애 후보보다 인지도, 정치 경험 다 부족하지만 제가 우리동네를 훨씬 잘 안다. 꼭좀 도와달라”고 했다. 시루떡을 고르던 60대 부부는 “또 왔네”라며 “잘 해야 뽑아주지”라고 했다. 기자에겐 “동네를 잘 알고 일 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떡집 주인은 “여긴 민주당이 확실히 세다”라며 “그런데 당보단 개발이 너무 필요하다. 재개발 하는 데만 10년이 걸리고 다 그린벨트로 묶여서 뭘 제대로 못 한다”고 했다. 그는 정당 선호도를 묻자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개발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정부나 대통령과 잘 맞는 사람이 더 낫다”고 했다.

상인회장 김모 씨는 “경선 때 (이 의원이) 찾아왔길래 ‘경선에서 이기고 오면 도와주겠다’고 했었다”며 “일반 재래시장에 비해 5일장 상인들은 어려움이 크다. 이런 현안을 잘 챙기라”고 했다. 이 의원이 지나간 뒤 만난 부침개·파전집 상인은 “민주당이 되지 않겠냐”면서도 “민주당에 강 누구였더라, 그 사람(강병덕)도 있고 오수봉씨도 있었는데 다 떨어진 건가 안 보이네”라고 했다.

여당 공천 파동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것도 보였다. 60대 남성은 이 의원과 악수를 나누며 “창근이는 어디갔냐”고 물었다. 당초 하남갑에 출마했다가 당의 요청에 따라 하남을로 옮긴 이창근 전 당협위원장을 찾는 말이었다. 이 전 위원장은 오랜 기간 이곳에서 출마를 준비해왔으나 돌연 컷오프(공천배제)를 당해 논란이 됐었다. 캠프 관계자들이 “하남을로 가셨다”고 하자, “몰랐네. 창근이도 열심히 해서 응원했는데”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하남갑 추미애 후보가 14일 하남 덕풍시장에서 지지자와 포옹하고 있다. /추미애 선거캠프

◇ “와 추미애다, 사진찍어요!” “이용? 가수 이용은 들어봤는데…”

이날 추 후보가 들르는 곳마다 사진촬영을 기다리는 이들로 시장통은 북적였다. “추다르크” “너무 멋지다” “꼭 만나보고 싶었다”며 포옹을 하는 여성들도 많았다. 일부는 동그란 ‘민주당 배지’를 옷에 달고 있거나, 자신을 민주당원이라고 소개하는 사람도 있었다. ‘잼잼 자봉단’ 문구를 붙인 유튜버도 동행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지지하는 단체다. 이들은 시장 상황을 생중계하며 추 대표를 비난하는 행인에 맞대응 했다.

포장마차에서 낮술을 즐기던 네 남녀의 가벼운 말다툼도 들렸다. “힘 있는 사람이 와야 뭐라도 하지. 추미애가 훨씬 낫지” “추미애를 누가 뽑아줘?” “여기 지나가는 사람 반이 민주당이야. 뭘 좀 알고 말해” “(추 후보) 용산 가는 거 아니었어?” 목소리가 커지자 이를 말리던 남성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국힘당은 안 뽑아”

시장 밖 목소리는 더 냉담했다. 신장동 거리의 한 카페 점주는 “이용이 누구죠?”라고 했다. 40대 후반이라고 답한 이 남성은 “가수 이용은 들어봤는데…”라며 웃었다. 그는 “바로 옆동네에서 오래 살았다”며 “추미애는 안다. 장관도 하고 유명한 분 아니냐”고 했다. 투표 의향을 묻자, “해야죠”라며 “추미애는 잘 아는데 여기 나온 건 좀 신기하고, 국민의힘 쪽은 아예 모른다”고 했다.

마라탕 가게에 어린 자녀와 함께 온 여성에게도 물었다. 그는 “여기 원래 국회의원이 민주당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추미애 그분 인지도도 높고 오면 좋을 것 같은데, 좀 생뚱맞다”며 “국민의힘은 잘 모르는 사람인데 그쪽 당 뽑을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 후보를 아느냐고 묻자, “대통령 측근이라고 기사 봤다”며 “근데 그런 경력으로 별로 좋은 효과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추 후보는 이날 출마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독재 음모를 분쇄하고, 대통령 한사람에 의해 또다시 나라가 좌지우지 되지 않도록 총선에서 힘을 모아달라”고 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 의원을 겨냥해 “하남시민의 선택이 윤석열 심판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역 연고가 없다는 지적에는 “하남을 제일 잘 아는 (현역) 최종윤 의원과 우리당 예비후보들이 저에게 지혜를 모아주셨다”며 “상수원보호구역 규제 완화를 시작으로 하남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겠다”고 했다.

반면 이 후보는 “민주당이 추미애 장관의 인지도만 믿고 하남에 연고도 없는 사람을 내려보냈다”며 “하남 지역 현안이 무엇인지, 주민이 뭘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는 후보가 어떻게 주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또 “대권이나 다른 야욕에 기웃거리지 않고 하남을 최우선시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하남에 터를 잡고 살아온 만큼, 주민의 의견을 받들어 지역 발전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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