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대신 써달라" 女초등생 유인, 성추행후 살해…노무현도 나섰지만

박태훈 선임기자 2024. 3.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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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경찰 총동원, 방송 공개수배…첫 앰버 경고 [사건속 오늘]
전과 23범, 유괴 2시간 뒤 살해…시신 40일 만에 집 부근서 발견
2007년 3월 16일 집 부근에서 실종된 제주 초등생을 찾는 전단지. (SNS 갈무리) ⓒ 뉴스1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대통령까지 나서 "조속히 찾아라"며 특별 지시를 내렸고 3만4000여명의 경찰과 군, 공무원이 동원됐고 전국 고속도로 국도 및 서울시 고속화도로 지하철 전광판 등 4200곳의 전광판과 교통방송 라디오를 통해 사상 첫 앰버(Amber) 경보를 올렸지만 결국 9살 소녀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 피아노 수업 마친 뒤 실종…제주 경찰력 총동원

2007년 3월 16일, 제주 서귀포시 북서귀초교 3년생 A 양(9)의 아버지는 저녁이 다 되도록 딸이 돌아오지 않자 피아노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학원장은 오후 5시 집 앞에 A 양을 내려줬다며 '다시 한번 잘 찾아보시라'고 했다.

A 양 아버지는 가족, 이웃과 함께 딸을 이름을 부르며 이곳저곳을 다녔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자 밤 8시쯤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서귀포 경찰서는 강력 사건임을 직감, A 양 집 부근을 샅샅이 살폈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에 경찰 실종 다음 날인 17일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공개수사에 나서 A 양 실종 사건은 제주도를 벗어나 전국적 관심사가 됐다.

◇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 전과 23범 그놈 손에

골프장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송영철(당시 49세)은 3월 16일 오후 5시쯤 술에 취해 자신이 거주지로 삼고 있던 과수원 관리 막사로 걸어가던 중 피아노 학원 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음을 옮기는 A 양을 봤다.

순간 엉뚱한 욕심에 사로잡힌 송영철은 "학생 여기 잠깐"이라며 A 양을 불러 세운 뒤 "내가 글을 모른다. 편지를 대신 좀 써 달라"고 하자 A 양은 "예 아저씨" 하면서 송영철이 머무는 막사로 들어섰다.

A 양을 상대로 욕심을 채운 송영철은 속내의를 강제로 다시 입힌 뒤 "너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고 물었다.

겁에 질린 A 양이 '안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성추행 사실이 들통날까 두려웠던 전과 23범 송영철은 주변이 모두 어두워진 오후 7시 무렵 A 양 목을 졸랐다.

◇ 경찰, 군, 공무원 등 3만4000명과 수렵견 투입…대통령까지 나서

경찰은 '어린이를 찾습니다'라는 전단 4만 장을 뿌리고 제주도 경찰력, 군과 공무원 등 연인원 3만4000여 명을 A 양 찾기에 투입했다.

수렵협회 협조를 받아 수색견을 A 양 집 부근 오름과 인근 지역을 훑도록 하고 헬기를 띄웠다.

또 인근 항 포구 주변을 살피고 잠수부까지 동원해 바닷속까지 뒤졌지만 A 양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신고포상금을 1000만 원까지 올리는 한편 A 양을 찾거나 실종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에게 1계급 특별승진까지 내걸었다.

실종이 장기화 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빨리 찾아 부모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라"고 특별 지시까지 내렸다.

MBC PD수첩은 특별 공개 수배방송을 편성해 "딸이 꼭 살아 돌아오리라 믿는다, 우리 딸을 돌려달라"는 아버지의 애끓는 호소를 내보냈다.

ⓒ News1 DB

◇ 국내 첫 앰버, 실종경보 발령

A 양 사건에 전국민의 눈과 귀가 쏠리자 경찰은 4월 9일 우리나라에서 처음 앰버(Amber) 경보를 발령했다.

앰버는 1996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에서 납치된 후 살해된 9세 소녀 엠버 해거 먼 이름에서 딴 경보 체제로 미국 경찰이 납치 용의자와 피랍 어린이 정보를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으로 '방송 비상 대응' (America's Missing: Broadcast Emergency Response)의 약자이기도 하다.

경찰이 앰버 경보를 발령하면 해당 지역의 TV, 라디오 등 모든 전파매체는 즉각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납치 사실을 실시간으로 보도해야 한다.

◇ 등잔 밑 어두웠던 경찰, 원점에서 재수사…수색견이 A 양 시신 발견, 집에서 불과 120m 떨어져

A 양 실종사건이 한달을 넘겨 장기 미제사건화하는 모양새를 보이자 경찰은 원점에서 재수사키로 하고 마지막으로 목격된 지점부터 정밀수색에 나섰다.

그러던 4월 24일 경찰은 A 양 집에서 120m가량 떨어진 과수원 관리 막사 화장실 쪽이 수상하다고 판단, 수색견 '퀸'을 투입했다.

폐가전 더미 부근에서 뭔가 냄새를 맡은 퀸이 '이곳이다'며 핸들러(개를 다루는 경찰관) 옆에 앉았다.

이에 형사들이 퀸이 알려준 곳을 파헤친 결과 검은 비닐과 마대에 싸여 있는 시신을 발견했다.

◇ 부패 상태 심했지만 엄마는 즉시 딸을 알아봐

시신은 부패 상태가 심했지만 옷과 액세서리를 본 엄마는 즉시 딸을 알아봤다. DNA 감정결과도 A 양으로 나타났다.

모든 수사력을 동원해 과수원 관계자와 일대 우범자들에 대한 정밀 조사에 착수한 경찰은 과수원 관리인 송영철이 1997년 두살 어린이 납치 미수 사건으로 청송감호소에 있다가 2004년 출소한 전과 23범임을 확인했다.

이에 특공대까지 동원해 송영철을 긴급체포한 뒤 그가 머물던 관리 막사를 압수수색했다.

ⓒ News1 DB

◇ 속옷 뒤집혀 있어…살해 후 다음 날 새벽 시신을 비닐로 이중 포장해 유기

송영철의 침대에서 A 양의 머리끈을 발견한 경찰은 송영철을 추궁해 "성추행 사실이 알려져 다시 감옥으로 갈까 두려워 죽였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또 A 양 속옷이 뒤집힌 채 입혀져 있던 점을 중시한 경찰은 송영철로부터 '강제로 옷을 입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송영철은 A 양을 죽인 뒤 다음 날 새벽 5시 인기척이 드문 틈을 이용해 A 양 시신을 마대에 싼 뒤 다시 비닐로 이중 포장해 쓰레기 더미에 숨겨 놓았다.

바로 눈앞의 범인을 무려 40일 동안이나 놓쳤던 경찰은 "범인이 비닐로 꽁꽁 싸맨 데다 재래식 화장실 쪽에 버려 수색견이 냄새를 맡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명을 내놓았지만 전과 23범인 송영철이 A 양 이웃인 것조차 몰라 비판을 자초했다.

◇ 눈물의 영결식, 제주 전역 애도…송영철 1, 2심 모두 무기징역

A 양 부모는 실종 43일 만인 4월 27일 딸의 장례식을 치렀다.

제주도 교육청은 이날을 '애도의 날'로 정해 모든 학교가 조회 때 묵념토록 하고 검은 리본도 착용케 했다.

A 양이 모교인 서귀북초등학교를 마지막으로 찾았을 때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눈별로 작별 인사를 했으며 A 양 시신은 화장 후 고향 앞바다에 뿌려졌다.

살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송영철에게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으나 2007년 8월 9일 1심은 무기징역형을 내렸다. 그해 10월 27일 2심도 무기징역형을 선고하자 송영철은 상고를 포기, 감방에서 죗값을 치르고 있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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