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화물연대 총파업 조합원 업무개시명령 내린 정부에 “형사처벌 말라”

세종=손덕호 기자 2024. 3. 1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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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개시명령 발동 때 노동계 ‘강제노동 금지’ ILO 협약 위반 주장
정부 “취약계층 생계 위협 최소화하려 불가피한 조치”
ILO 협약 29호에 명시된 강제노동 예외 상황이었다는 설명
2022년 12월 6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인근 도로에서 민노총 조합원들이 화물연대 총파업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선DB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2022년 총파업(집단운송거부)을 했을 때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이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가 “형사처벌을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또 화물연대에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했다. 정부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또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정상적으로 운행하는 화물 차주들에게 쇠구슬을 발사하는 등 불법적인 행위를 한 것에 대한 내용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1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ILO는 지난 13일(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350차 이사회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이 제기한 화물연대 총파업 관련 진정 사건에 대한 ILO 결사의자유위원회(결사위)의 권고안을 채택했다.

앞서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며 2022년 11월 24일부터 12월 9일까지 16일 간 집단운송거부를 벌였다. 정부는 시멘트·철강·석유화학 분야 운송 화물차주 등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는 등의 대응이 ‘결사의 자유 협약’ 위반에 해당한다면서 ILO에 진정을 제기했다.

권고안은 총 5개 사항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ILO는 “자영업 근로자(self-employed workers)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가 그들의 이익을 증진할 목적으로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의 원칙을 충분히 누리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화물차주와 같은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자에게도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또 “파업 참가자들에게 단지 업무개시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하지 말라”고 했다. 화물연대 조합원 정보를 절대적인 비밀로 보장할 것도 권고안에 포함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 당시 운송사업자 사이의 운송 방해가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화물연대에 사업자 명단 제출을 요구했다.

ILO는 화물연대 개별 조합원의 행동을 이유로 공공운수노조나 화물연대 등의 단체에 제재를 가한다면 이는 결사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조합원에게 운송업체들이 내리는 보복성 조치나 반노조 성향의 차별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적절한 제재를 정부가 해야 한다는 점도 권고에 포함됐다.

정부는 ILO의 이번 권고에 대해 “우리나라가 ILO 협약 위반을 언급한 내용은 없다”며 “결사위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직접적인 제재도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결사위 보고서 일부 내용이 한국 정부가 결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노사 단체와 국제 사회가 오인할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2년 12월 8일 전남 광양 광양포스코 제2문, 코일을 실은 트레일러들이 정문은 나서고 있다. 이날 정부는 집단운송거부 중인 화물연대 조합원에게 철강·석유화학 분야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조선DB

고용부는 ILO가 ‘자영업자에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 권고한 데 대해 “우리나라는 현재도 실업자·해고자는 물론 순수 자영업자가 아닌 특수형태고용종사자(특고)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면 노조를 설립하거나 가입할 수 있는 등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롯데슈퍼운송노조, 현대모비스자동차부품운송노조, 홈플러스물류노조 등 화물운송기사도 노조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화물연대는 다양한 형태의 개인사업자로 구성돼 있어 일률적으로 근로자성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화물연대는 설립신고 등 노조법에 따른 절차를 거치지 않아 법적 보호를 받는 노조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업무개시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형사처벌을 하지 말라’는 권고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업무개시명령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만을 이유로 실제 형사 제재가 이뤄진 사례는 없다”고 했다. 당시 일부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처벌을 받기는 했으나, 운송 중인 비조합원 화물차량에 쇠구슬을 날리는 등 불법 행위를 한 경우라는 게 고용부 설명이다.

또 고용부는 “이번 권고는 업무개시명령 제도 자체가 ILO 협약 위반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고용부는 화물연대가 16일간 집단운송거부를 하면서 시멘트·원유 등 운송 차질로 건설일용직 일자리, 동절기 난방, 무주택 서민 주거권 및 건강권이 위협을 받아 취약계층 생계에 대한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우 제한적으로 취해진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2022년 화물연대 조합원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을 때 노동계에서는 ILO 협약 제29호를 위반한 강제 노동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협약 29호에는 국민 전체 또는 일부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에 강요되는 노동은 강제 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이 있다. 고용부의 설명은 당시 업무개시명령은 강제 노동 예외에 해당한다는 설명으로 보인다.

또 고용부는 공정위가 조합원 명단을 제출한 것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자료를 요청했다”며 “화물연대는 적법한 조사를 거부해 정부는 화물연대 구성원 정보를 취득한 바가 없다”고 했다. ILO가 운송사들이 화물연대 조합원에게 보복조치를 하지 말 것을 권고한 데 대해서는 “정부는 실정법 위반 행위는 대상을 불문하고 엄정히 조치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이번 ILO 결사위의 권고에 대해 관계부처와 공동으로 주요 내용을 면밀히 검토할 예정이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거나 한국 정부 조치에 대해 오해가 발생한 부분은 공식적 답변으로 ILO에 반영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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