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무당 콤비의 오컬트 퇴마 소설, 타인만 악마일까 [책&생각]

한겨레 2024. 3. 1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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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원고를 쓰려고 지역 도서관에서 사주명리학과 타로를 배웠다.

'직장상사악령퇴치부'는 한국적으로 오컬트를 긍정하는 연작소설집이다.

소규모 미스터리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현실 풍자를 가미한 환상소설의 성격을 띤다.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분위기의 이 소설집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시점에서 세계가 묘사된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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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
이사구 지음 l 황금가지(2024)

몇 년 전, 원고를 쓰려고 지역 도서관에서 사주명리학과 타로를 배웠다. 그 후 알게 된 사실. 종교가 있든 없든 모두가 “무료라면” 점을 보고 싶어 한다. 최근 영화 ‘파묘’의 인기로 토속 신앙에 대한 관심이 가시화되었지만 본디 여기는 오컬트의 세계, 신비주의적 사고는 늘 강했다. 이사할 때 손 없는 날을 고르고, 새 프로젝트에는 고사를 지낸다. 한국 사회에 뿌리박은 오컬트를 거스를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사람은 빨간 펜으로 자기 이름을 거침없이 쓰고, 건물 4층의 444호를 거리낌 없이 고르고, 돼지꿈을 꾸고도 로또를 사고 싶은 유혹을 무시하라.

‘직장상사악령퇴치부’는 한국적으로 오컬트를 긍정하는 연작소설집이다. 소규모 미스터리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현실 풍자를 가미한 환상소설의 성격을 띤다. 각 장에는 “벽간 소음 상호 결별부”나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처럼 부적 이름이 제목으로 붙었다.

20대의 김하용은 아이티(IT) 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 첫 이야기에서 하용은 옆집에서 커플이 내는 벽간 소음에 지쳐 유튜브에서 부적 쓰는 법을 익힌 후 헬스클럽 전단지로 위장해서 옆집에 붙인다. 부적은 효과를 발휘했지만, 부작용도 컸다. 결국 하용은 유튜브 채널 주인 무당 언니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후 이상해진 직장 상사 문제로 하용은 잔다르크 장군을 모시는 엠지(MZ)세대 무당 명일을 다시 만나고, 급기야 그의 밑에서 일하게 된다. 두 사람은 홈스-왓슨처럼 콤비를 이루며 수상한 친구 남친, 갑자기 시름시름 앓게 된 청소년 복싱 선수의 사건 등을 처리한다.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분위기의 이 소설집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시점에서 세계가 묘사된다는 장점이 있다. 취업이나 직장 생활의 고충, 연애나 교우 관계의 난관. 그들이 사회생활에서 겪는 온갖 부조리는 악귀로 묘사되고, 현실을 헤쳐 나가려는 청년들은 부적을 쓴다. 많은 환상 소설은 은유의 상상력을 발휘하지만, 이 소설은 은유라기보다는 현실의 모사에 가깝다. 요새 미디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서, 일종의 시대정신은 내가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분노이다. 여기서 부적이라는 장치가 등장한다. 나를 괴롭히는 이는 악령이므로 퇴치해야 한다. 이런 정서 면에서는 이 소설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쇼트 폼 콘텐츠와 궤를 같이한다. 이는 소설 독자에게는 약점일 수 있겠지만, 작금의 콘텐츠 소비자에게는 동시대적으로 여겨질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어떤 사람이 감정에 휩싸여서 평소와 다르게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할 때 “악귀 들렸다”고 표현한다. 무시무시한 단어에 비해서는 약간 귀여운 맥락에 쓰이는데, 여기에는 인간성에 대한 낙관이 기본으로 깔렸다.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는 건 악귀의 짓이고, 이를 오컬트한 관행을 통해서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되었다. 그러나 악귀는 과연 타자일까? 누구에게나 질투, 이기심, 집착 등 악한 마음이 있다. 마음속에서 늘 피해자의 위치에 있는 나도 실은 가해자일 수 있고, 퇴마사가 아니라 구마의 대상이기도 하다. 우리의 악귀 퇴치 부적은 이런 깨달음일 것이다. 남의 악귀를 퇴치하되, 일단 나부터 악귀에 들리지 말자. 실은 이것이 모든 오컬트 소설이 공유하는 정신이다.

박현주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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