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 노련한 박지은 작가의 절묘한 ‘뒤집기’[스경연예연구소]

하경헌 기자 2024. 3. 15. 00: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tvN 주말극 ‘눈물의 여왕’의 대본을 쓴 박지은 작가. 사진 스포츠경향DB



흔히 모든 작가들이 극작품을 구상할 때 유념하는 것이 ‘반전’이다. 평범하게 또는 비범하게 흘러가던 이야기들이 극적인 반전을 통해 비밀이 드러나거나 진의가 드러날 때, 이를 보는 시청자나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단 2회가 공개됐지만, 박지은 작가는 극의 구성만으로도 벌써 ‘반전’의 묘미를 안겼다. 한 편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우리나라의 로맨스 드라마 역사가 유구한데, 왜 아무도 이런 생각을 안 해봤을까 싶은 느낌이다. 그만큼 ‘눈물의 여왕’의 시작은 신선하다.

tvN ‘눈물의 여왕’의 기세가 놀랍다. 첫 번째 방송 5%대(이하 닐슨 코리아 유료채널 기준) 시청률이 8% 후반대로 뛰어넘는 수치부터 콘텐츠 경쟁력 조사 전문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의 공식 플랫폼 펀덱스에 발표한 3월 1주차 조사에서 TV-OTT 통합 화제성 수치에서 2위에 2.5배 가까운 차이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tvN 주말극 ‘눈물의 여왕’ 포스터. 사진 tvN



겉만 봤을 때는 전형적인 재벌가 위주의 로맨틱 코미디로 생각할 수 있지만, 작품은 뜯어볼수록 박지은 작가의 노련한 의도를 볼 수 있어 놀랍다. 그는 기존 우리나라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얼개는 세워놓되 그 안에서의 성(性)과 관련한 역할을 모조리 뒤집었다.

극 중 퀸즈백화점을 운영 중인 주인공 홍해인(김지원)은 예쁘다. 집도 수조 원대의 수익을 논할 정도로 굴지의 기업가 집안이다. 하지만 성격이 파탄자 수준이다. 공감능력도 별로 없고,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제외하면 타인에 대한 관심도 없다. 그런데 이러한 캐릭터는 지금껏 많은 재벌 캐릭터를 통해 남자 주인공의 전형으로 자리 잡은 설정이다.

안하무인의 재벌이 있다면 그 옆에는 소시민의 정서를 간직한 유한 성격의 상대가 있다. 보통 ‘캔디’ ‘신데렐라’로 치부되던 이 캐릭터의 모든 특성은 배우 김수현이 연기하는 백현우 캐릭터에 집대성돼 있다. 그의 집은 시골 용두리에서 슈퍼마켓을 하며 누나와 형은 각각 미용실, 복싱장 관장이다.

tvN 주말극 ‘눈물의 여왕’ 한 장면. 사진 tvN



서울대 법대를 나왔지만, 집안이 변변하지 못했던 백현우는 거의 시집을 가듯 재벌가에 데릴사위 느낌으로 옮겨왔다. 퀸즈가의 내부에는 이러한 ‘반전’이 더욱 극명하다. 1회에서는 창업주 배우자의 제사에 사위들이 총동원돼 음식을 만들고, 이들은 명절 때 며느리들이 할법한 하소연을 내놓는다.

로맨스에 있어서도 기존의 법칙을 뒤집는다. 보통 일반적인 로맨스는 서로 다른 처지의 남녀가 만나 서로의 차이 때문에 뜨악하다 서로 접점을 찾고 사랑하며 갈등을 해소하는 구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과정을 다 건너뛰고 결혼 3년 차에서 시작한다. 또한 이미 사랑은 망가져 있다. 백현우는 다양한 이유로 지긋지긋한 처가와 아내에게서 벗어나려 이혼을 결심하고, 아내 홍해인의 시한부 소식을 듣고도 표정관리에 애쓴다.

어쨌든 재벌가 로맨스물의 전형을 취하고 있지만 오랜공력을 가진 박지은 작가는 세부적인 설정을 싹 다 뒤집어 거의 새로운 장르물을 보는 듯한 신선함을 안긴다. 그러한 내력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tvN 주말극 ‘눈물의 여왕’ 한 장면. 사진 tvN



KBS의 예능작가 출신이었던 그는 MBC와 SBS에서도 예능작가로 활약했다. 2009년 MBC ‘내조의 여왕’을 통해 김남주의 재발견을 이끌어냈고, 이후 ‘역전의 여왕’ ‘넝쿨째 굴러온 당신’ ‘별에서 온 그대’ ‘프로듀사’ 등의 작품을 연이어 히트시켰다.

‘푸른바다의 전설’을 기점으로 2년의 휴식기를 가졌던 그는 다시 2019년 tvN ‘사랑의 불시착’을 통해 해외에서 특히 통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을 늘어뜨리면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예능작가 특유의 반전에 소질이 있다.

‘내조의 여왕’ ‘역전의 여왕’에서는 이른바 ‘아줌마’에서 올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선입견과 편견을 깨내는 재미를 줬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는 미국에서 온 고아인 줄 알았던 남편에게 ‘시월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반전을 줬다. ‘별에서 온 그대’ ‘푸른바다의 전설’은 전설과 민담을 실재화했고, ‘프로듀사’에서는 실재감 있는 방송사 예능국에서의 동화같은 사랑이야기를 전했다.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주요 장면. 사진 tvN 방송화면 캡쳐



그의 경력에서처럼 그는 미니시리즈 로맨틱 코미디도 잘 쓰지만, 가족극 형태의 주말드라마에도 강점을 보이고 판타지와 막장, 코믹과 멜로, 휴먼을 오가는 장르적 변주에도 재주를 보인다. 오랜기간 자신의 변화무상한 대본을 현실에 적용하고 캐릭터로 구현하면서 입지를 만들어 온 덕분이다.

박지은 작가가 아마 오랜동안 했을 고민, ‘왜 우리 드라마에는 백마 탄 왕자만 있고, 백마 탄 공주는 없을까’하는 질문은 1회 ‘헬기 탄 공주’ 홍해인의 모습에서 깨져나갔다. 단 하나의 ‘뒤집기’로도 드라마는 신선해진다. 노련한 박지은 작가의 절묘한 ‘뒤집기’는 ‘눈물의 여왕’ 초반 상승세의 가장 큰 원동력이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