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사랑해요”, “잘 가 아들딸, 꼭 다시 만나자”.. 132일 간의 여정, ‘가족’이란 이름은 또 다른 인연을 약속했다

제주방송 김지훈 2024. 3. 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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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첫 '외국인 공공형 계절근로사업' 참여
41명, 5개월 일정 마무리.. 18일 귀국 앞둬
고령화·인력난 농촌 “안정적 일손 제공“ 평가
농협 등 전담 지원 한계.. ‘지자체 협력’ 주문
14일 감귤밭 현장을 찾은 베트남 근로자들과 문대오씨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의 한 감귤밭. 수확이 끝난 밭에서 삼삼오오 모인 이들 사이에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그래도 환한 웃음과 아쉬움, 기대감이 교차하면서 말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지난해 11월 제주를 찾아 위미농협에서 농가 일손을 도운 베트남 근로자들입니다. 
5개월여 근무를 마친 후 18일 귀향 일정을 남겨두고, 마무리 작업과 함께 인사차 한 농가를 찾았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외국인 근로자들의 손을 빌어 감귤 수확을 마친 문대오(87)씨도 직접 현장을 찾아 한 명 한 명 보듬으며 마음을 전했습니다.

며칠을 떨어져 있다 만났지만 서로가 어제 본 듯, 부르는 호칭에서 어색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서툰 ‘아버지’라는 말에 어느새 주름 가득한 문씨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듭니다.   

연신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현하는 베트남 근로자들의 인사에, 오히려 문씨가 자신이 할 말이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말을 잘 알아듣고, 움직이는게 다르긴 달랐다”는 문씨는 “저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올해 농사는 포기했을지 모른다. 정말 일손 하나 구하기 힘든 시기를 맞아, 아주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서운하다”고 현재 심정을 밝힌 문씨는 “짧다면 짧은 또 길다면 긴 시간, 정말 자식같이 생각해서 함께 일 하다보니 정이 들었다.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플 뿐”이라고 아쉬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제주에 투입된 외국인 공공근로자는 모두 41명. 베트남 남딘성에서 6.8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여성 근로자 25명과 남성 근로자 15명으로, 5개월 동안 체류할 수 있는 E-8 비자를 받고 지난해 10월 31일 제주에 도착했습니다.

이튿날 한국어 등 기본교육을 이수한 이후, 감귤 따기 현장실습에 나섰고, 위미농협과 근로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어 외국인등록증 발급에 필수코스인 마약검사를 받은 이후, 11월 3일부터 본격적으로 감귤 수확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14일 감귤밭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공공형 계절근로사업 참가자들


그렇게 이달 중순까지 제주에서 보낸 시간은 채 5개월이 안되지만,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많은 걸 겪었다는 근로자들입니다.

황녹민(34. 베트남 남딘성)씨는 “(감귤) 농사를 해본 적이 없어, 제주에 와선 너무 걱정이 되고 심적으로 힘들었다”면서 “다행히 농가와 농협에서 잘 챙겨주고, 일을 가르쳐줘서 금방 적응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 달 정도 일하고 받은 월급이, (베트남보다) 5배 정도 많았다”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면 오토바이 1대를 사고 집도 고칠 계획이다. 기회가 되면 다시 꼭 제주에 오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만큼 임금 수준에 대해선, 너나없이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습니다.

농가 조합원들이 남자 근로자에 지급한 일당은 11만 원, 여자는 7만 5,000원.
여기에 농협이 자체 자금을 보태 성별 구분 없이 41명 모두에 동등하게 월급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했습니다. 4대 보험료와 숙박비로 58만 원 정도를 제외하고 한 달 평균 215만 원을 지급했습니다.

적어도 1인당 한 달 200만 원, 많게는 25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추산합니다.

위미농협은 인건비 보전에 월 평균 1,000만 원 정도 자체 손실을 본 것으로 집계했지만, 농가로선 일반 인력을 구할 때보다도 훨씬 싸게 일손을 빌릴 수 있어 인력난 해소에 큰 보탬이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4일 감귤밭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공공형 계절근로사업 참가자들


레티김국(40. 베트남 남딘성)씨도 마찬가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지만, 현지에서보다 3배 정도 높은 월급 체감도를 느꼈습니다.

특히 이번 공공근로를 마치면서 현지에서 한국어 교육일정을 잡을 정도로, 제주 계절근로에 재참여 의지를 다지는 계기도 됐습니다.
“제주에서 모은 돈을 자녀 학비와 새 전자제품 구입 등에 쓸 것”이라며 “베트남에 돌아가면 우선 한국어를 배워, 다시 (한국에) 왔을 때 대화를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고 각오를 밝혔습니다.

이처럼 행·재정적으로 품을 들여도, 열악한 농가 인력난을 해소해준 성과를 낸 것이 계절근로사업이었습니다.

앞서 문씨는 “젊은 사람은커녕, 나이 든 사람조차 구하기 힘든게 현실”이라면서 “굳이 나서서 막일을 하려 들지 않아, 좀처럼 일손을 구할 수가 없었다”고 상황을 전했습니다.

공공형 계절근로사업이 가뭄 속 단비가 됐습니다.
문씨는 “사실 나이 든 사람들만으로 농사짓는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면서 “그냥 농사를 접어야 하나 했던 것이, 이번에는 베트남 근로자들이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번 외국인 공공형 계절근로사업은 사업기간 우려했던 이탈자가 1명도 없었다는데서 더한층 성과를 자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농협 관계자는 “근무기간 1명의 포기자나 이탈자도 없이 성공적으로 사업을 마무리한 것은 특기할 만한 부분”이라면서 “농협에서도 근로자 가족들에게 설 등 명절 선물을 보내는가 하면, 겨울옷 지원 등에 나서 양국간 상호 신뢰를 다지는데 노력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근 위미농협 조합장


위미농협은 이번 사업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1억 3,100만 원을 지원받아 보험료와 통역 인력 등 채용과 차량 대여비 등에 썼습니다.

현재근 위미농협 조합장은 “베트남 근로자에 대한 농가 반응이 좋은데다 앞으로도 사업을 이어가길 바라는 수요가 많다”면서 “올해 50명을 신청했고, 상황에 따라 70명까지도 신청 폭을 확대해보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남녀 근로자 등 성별 숙박시설 확보를 비롯해 인력 관리 등을 지역농협 단위에서 도맡아 진행하는데 따른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지역 내 숙소 마련 뿐만 아니라, 인력 등을 전문적으로 관리 운영하는 것까지 일괄 떠맡게 되면서 자칫 한계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탈 방지 등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선 지자체 협력이 뒤따라야한다고 주문했습니다.

공공근로자 공동 숙소로 제공한 펜션


현 조합장은 “숙박시설 문제만 해결된다면 수요에 맞게 신청 인력을 더 늘려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선 지역 단위에서 계속 전담 추진하는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면서 “인력이나 제도, 재정적으로도 지방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들 41명은 14일 오후 4시 위미2리 다목적회관에서 열린 환송회에 참가하고, 주말까지 쉰 이후 18일 귀국길에 오를 예정입니다.

외국인 공공형 계절근로사업에 참가한 베트남 근로자들 연령대는 25~39살, 1980년부터 2010년대생인 ‘MZ세대’들로 25~30살도 9명 포함돼 있습니다.

올해 제주에선 위미농협(50명) 함께, 고산농협(30명)과 대정농협(30명)이 신규로 공공형 계절근로사업에 참여 예정입니다.

14일 오후 위미2리 다목적회관에서 열린 환송회에서 위미농협이 베트남 공공근로 참가자들에게 귀국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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