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미만 '젊은 암' 원인, 데이터로 찾는다

이정아 기자 2024. 3. 14. 14:1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암 사망율 줄었지만 ‘젊은 암’ 증가
대규모 집단 데이터 토대로 장내미생물, 출생 전 발암물질 노출 등 원인 찾는 중
건강검진이 늘어나고 치료법이 향상되면서 전 세계 암 사망률이 줄고 있지만 50대 미만에서 발생하는 '젊은 암'은 늘고 있다. 연구자들은 대규모 집단 인구의 데이터를 토대로 젊은 암의 원인을 밝히는 연구를 하고 있다./픽사베이

건강검진이 늘어나고 치료법이 향상되면서 전 세계 암 사망률이 줄고 있지만 50대 미만에서 발생하는 ‘젊은 암’은 늘고 있다.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주요 원인으로 꼽혔던 비만, 인스턴트식품 섭취 증가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며, 대규모 집단 인구의 데이터를 토대로 젊은 암의 원인을 밝히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장내미생물이나 출생 전 발암물질 노출 여부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전 세계 암 사망률 줄었지만 젊은 암 늘어... 주요 원인 미상

전 세계 젊은 암 발생률 통계./네이처

네이처는 13일(현지 시각)에 따르면 모든 암 종에서 젊은 암 발생률이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에서 1990~2019년 젊은 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28%나 늘었다. 학계는 2019~2030년 사이에 30% 정도 더 늘 것으로 추정한다. 가장 흔한 젊은 암은 대장암이고 췌장암, 위암 순이다.

네이처는 먼저 건강검진이 늘면서 젊은 암 진단율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소니아 쿠퍼(Sonia Kupfer) 미국 시카고대 유전학·유전체학및시스템생물학과 교수는 “이 때문에 어떤 환경에 사느냐에 따라 젊은 암 진단에 대한 격차가 생긴다”며 “건강검진을 비롯해 건강한 음식에 대한 접근성, 생활방식 등이 다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위장암은 지금까지 인스턴스식품 섭취량이 늘면서 비만율이 증가해 많이 발생한다고 추정됐다. 대니얼 황(Daniel Huang) 싱가포르국립대병원 장기이식센터 교수는 “하지만 데이터 통계 분석을 보면 이것만으로는 젊은 위장암 발생 증가를 설명하기 어렵다”며 “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장내미생물, 출생 전 발암물질 노출 데이터 연구로 젊은 암 원인 찾는다

흔히 젊은 암은 나이 들어서 생긴 암보다 공격적이고 빠르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젊은 암 환자는 겉보기에 날씬하고 튼튼한 경우가 많다. 캐시 엥(Cathy Eng) 미국 밴더빌트대 메디컬센터 혈액학및종양학과 교수는 “32세에 위장암 진단을 받은 한 여성은 마라톤을 준비할 만큼 건강했다”며 “이전까지 다른 의사들은 그의 대변에 혈액이 섞여 나오는 이유를 맹렬한 훈련 때문이라고 진단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젊은 암이 왜 생기는지, 50대 이후 암보다 왜 훨씬 공격적인지 원인을 찾기 위해 데이터 분석 연구에 나섰다. 미국국립암연구소(NCI)와 영국 암연구소가 대표적으로 관련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장내미생물에 주목하기도 한다. 식이 변화나 항생제 복용 등으로 인해 장내미생물 군집이 달라지면 염증이 생길 수 있고, 염증이 과다하면 암을 비롯한 여러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내미생물군이 젊은 암 발생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확실한 데이터 자료가 없어서다.

크리스토퍼 리우(Christopher Lieu) 미국 콜로라도대 암센터 부센터장은 “미생물군집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너무 다양하다”며 “어렸을 때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연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엥 교수팀은 장내미생물 군집과 젊은 암 발생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개발 중이다. 미국뿐 아니라 남미, 아프리카, 유럽으로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한 지역이나 국가 안에서는 젊은 암 발생율이 여전히 상대적으로 적어 통계를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 간 차이를 조사하는 연구자도 있다. 가령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적으로 유사하지만, 젊은 대장암은 한국에서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토모타카 우가이(Tomotaka Ugai) 하버드대 의대 병리학과 교수는 현재 한일간 젊은 대장암 발생율 차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젊은 암의 발생 원인을 찾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태아기’ 때부터 살피기도 한다. 조지 바레토(George Barreto) 호주 플린더스대 메디컬센터 교수는 태아기에 노출된 알코올과 담배 연기, 영양실조, 스트레스가 향후 젊은 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바버라 콘(Barbara Cohn) 미국 공중보건연구소 아동건강및발달연구 책임자는 “젊은 암을 이해하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며 “연구에 따르면 석면이나 담배 연기 등 발암물질에 노출된 지 수~수십 년 후에 암이 발생할 수 있다”고 근거를 댔다. 그러려면 연구자들은 수천 명 인구에게서 40~60년 간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 콘 책임자는 1959년 이후에 아이를 낳은 여성 약 2만 명으로부터 수집한 혈액과 타액, 소변 샘플과 데이터를 토대로 그들의 자녀를 추적 관찰하고 있다.

그는 케이틀린 머피(Caitlin Murphy) 미국 텍사스대 보건과학센터 임상과학과 교수와 함께 이미 젊은 대장암과 출생 전 발암물질 노출에 대한 연관성을 찾았다. 당시 조산을 막기 위해 사용했던 프로게스테론 약제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들은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다른 집단에서 비슷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한 태아가 자궁 내에서도 노출될 수 있는 화학물질을 더 많이 찾기 위해 추가 연구 중이다. 머피 교수는 “연구를 진행하면 할수록 젊은 암을 유발하는 원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고 말했다.

젊은 암은 50대 이후 암보다 치료하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남은 생존기간이 훨씬 길기 때문에 추적 연구가 중요하다. 젊은 암 환자는 진단 당시 임신 중이거나 향후 임신을 계획 중일 수 있다. 또 암 치료 후 건강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회활동을 수십 년간 더 지속해야 한다. 젊은 암 환자들은 대개 항암치료가 임신이나 태아, 업무능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한다.

이리트 벤 아론(Irit Ben-Aharon) 이스라엘 하이파 람반헬스케어센터 종양학센터장은 “연구자들은 젊은 암에 대한 데이터를 공유하고, 환자가 치료를 마친 후에도 추적 관찰해 최선의 치료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은 생존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젊은 암 환자가 암 치료에 불리하다”며 “일부 항암제는 치료 후 수 년이 지나면 심혈관 문제나, 전이암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공통적으로 젊은 암에 대해 연구하려면 여러 대륙 국가에 걸쳐 데이터를 대규모로 모아 비교 분석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충분한 자료가 없다고 강조했다. 바레토 교수는 “향후 다른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20년간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