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하면 택시처럼 달려와”…영암군, 삼호읍 버스체계 콜버스로 전환

이시내 기자 2024. 3. 14. 08: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암군 삼호읍에서 5일부터 시범운행에 들어간 수요응답형 ‘영암 콜버스’.
영암군 삼호읍에서 5일부터 시범운행에 들어간 수요응답형 ‘영암 콜버스’. 버스 안 모니터에 승객들의 닉네임이 떠있다.

“아야, 감자가 누구여, 감자가?” 

“제가 감자입니다.”

11일 오후 4시30분 전남 영암군 삼호읍의 한 중학교 앞. 16인승 버스가 도착하자 학생들이 우르르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기사의 눈과 손도 분주해졌다. 승객들이 호출 때 사용한 닉네임을 호명하며 인원수를 점검하고 승하차처리를 해야 해서다. 버스 앞자리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감자’, ‘출근싫어’ 등 닉네임이 깜빡거렸다. 삼호읍에서 5일부터 시작한 ‘영암콜버스’ 운행 현장이다.  

영암콜버스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전화를 통해 승객의 호출받아 운영되는 수요응답형(DRT·Demand Responsive Transit) 버스다. 수요응답형 버스는 대중교통 운행 여건이 열악한 농촌 지역에서 주민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5년 전북 완주를 시작으로 경기와 전남 나주 등에서 일부 노선을 대체하는 등 운영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영암군은 여기에서 한발 나아가 삼호읍에서 운영되던 기존 3개 노선을 폐지하고 수요 응답형 버스로 전면 전환했다. 군은 이번 시범운영 결과를 토대로 콜버스 운행을 군 전체로 확대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영암콜버스가 수요응답형 버스의 지속가능성 여부를 보여줄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면서 농촌지역 교통문제 해결의 답이 될지, 그 성공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영암 콜버스 호출 애플리케이션 화면. 택시 호출 앱처럼 콜버스의 이동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영암 콜버스 호출 애플리케이션 화면.
영암 콜버스 호출 애플리케이션 화면.

직접 타보니…버스와 택시 장점 결합=평소 택시 호출 앱을 써온 사람이라면 콜버스 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먼저 수요응답형 모빌리티 플랫폼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회원가입을 하면 스마트폰 화면에 승하차 지점을 입력하는 화면이 뜬다. 지도상에서 탑승지점을 선택하고 탑승인원을 입력하면 예상 대기시간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호출하기’ 버튼을 누르면 ‘타는 곳까지 걸어서 이동해달라’는 문구와 함께 가까운 승강장으로 안내한다.

버스 안 풍경은 여느 시내버스와 다를 게 없다. 차량 입구엔 교통카드 단말기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종착역이 어디일지는 기사도 모른다. 정해진 노선 없이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대로만 달리기 때문이다. 지정된 승강장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시스템이 승객들의 호출을 실시간으로 취합해 최적의 동선을 알려준다.

기존 노선버스는 승객이 없어도 지정된 정류장을 거쳐야 했지만 콜버스는 호출이 있는 정류장만을 가기 때문에 이동시간이 단축되는 효과도 나타났다. 승강장도 기존 50여곳보다 늘어난 74곳을 운영한다.

콜버스로 등하교 한다는 한 중학생은 “예전보다 정류장도 가까워지고 버스를 갈아타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며 “정차시간도 줄어 목적지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통 정보가 전산화된다는 것도 덤이다. 군 관계자는 “이용자들의 동선을 분석해 승강장을 추가하는 등 교통 정책을 운용하는 데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실제 버스 운행거리와 승객 수가 모두 기록되기 때문에 투명한 재정 운용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굣길에 오른 학생들이 영암 콜버스를 타기 위해 줄 서 있다.
영암군 삼호읍에서 5일부터 시범운행에 들어간 수요응답형 ‘영암 콜버스’.
영암군 삼호읍에서 5일부터 시범운행에 들어간 수요응답형 ‘영암 콜버스’.

◆고령층·외국인노동자는 소외… “적응까지 시간 필요”=부정적인 의견도 적잖다. 특히 이용자가 많아 노선버스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구간이나 기존 방식에 익숙한 주민들은 오히려 불편함을 호소했다.

삼호읍에 있는 대불국가산업단지로 출퇴근하는 배혜진씨(33)는 “출퇴근 때마다 버스를 호출해야 하니 번거롭다”며 “버스 노선도 유동적으로 바뀌는 탓에 배차간격이 예전보다 길어지는 경우도 있어 지각생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령층과 외국인 노동자 등 교통약자들의 이용률도 콜버스 운영 이후 급감했다. 삼호읍에서 지선버스(행복버스)를 4년 넘게 운행해 승객들과 안면을 튼 김 기사는 “기존에 행복버스를 자주 이용했던 어르신 90%가 사라졌다”며 “고령층과 외국인 노동자는 앱 사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앱 사용이 익숙치 않는 사람들을 위해 콜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콜센터 상담사를 통해 정확한 승하차 지점을 알리는 과정에서 고령층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이다.

군은 아직 사업 초기인 만큼 적응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업에서 자문을 맡은 유지현 현대자동차 셔클기획팀 연구원은 “지난해 3월부터 동일한 서비스가 시행된 경기 안산 대부도에선 주민들 상당수가 고령층이지만, 1년간 전화 호출 방식에 적응해 콜버스 이용률이 증가했다"며 “운영 10개월만에 누적 탑승객은 3만3850명에 달하며 평균 차량 대기시간도 5.5분으로 기존 노선버스 평균 대기시간인 28.1분보다 80%가량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인구 현황, 지리적 성격 등 지역적 특성에 따라 적합한 버스 운영 방안을 도출해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영암군은 당초 금정면을 시범사업지로 검토했지만 지역 특성상 오히려 비용이 증가할 수 있어 삼호읍으로 변경했다.

군 관계자는 “한해 교통지원 예산으로 35억원가량을 지출하는 등 재정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수요응답형 버스는 지속가능한 농촌 교통수단으로서 충분히 검토할 만한 대안”이라며 “버스 호출용 키오스크를 마을회관마다 설치해 고령층의 교통 접근성을 높이고 출퇴근과 등하교 때만이라도 기존처럼 노선 운영을 하는 등 보완 방안을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