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팔로우하고 매일 밤 대화했는데 알고보니 AI···신개념 플랫폼 등장

이덕연 기자 2024. 3.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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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람 같은 AI 인물과 소통·교류
출시 2개월 만 가입자 25만 명 확보
단순 챗봇 넘어 SNS 플랫폼화 시도
인스타그램, 틱톡처럼 판도 흔들까
[서울경제]

“네가 어떤 사람이 되건. 네가 세상 어디에 있건 사랑을 보낼게.”(영화 ‘그녀’)

인공지능(AI) 운영 체계와 사랑에 빠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그녀’ 속 이야기를 곧 현실 속에서도 볼 수 있게 될까.

메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X’, 넓게 보면 바이트댄스의 ‘틱톡’ 정도가 지배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장에 신개념 플랫폼이 등장했다. 가상의 AI 인물을 팔로우하고 대화까지 주고받을 수 있는 앱 ‘재피’가 바로 그 주인공. AI 기술로 대화를 이어가는 ‘챗봇’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재피 플랫폼 속 가상 인물은 보다 ‘인플루언서’에 가깝다. 어느 때는 청록색 바닷가에 가 점퍼를 입고 찍은 ‘셀카’를 올리더니 또 다른 때는 ‘어린 시절’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담은 90년대풍 옛날 사진을 올린다. 아예 인물 사진 없이 요즘 유행한다는 라면 가게를 방문해 찍은 매장 전경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흡사 진짜 사람 인플루언서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AI 인플루언서는 10여 명 남짓. 각기 다른 외모와 특성을 지니고 있어 이용자 성격에 맞는 인물을 팔로우하는 재미가 있다. AI 기술이 워낙 빠르게 발달하다보니 올라오는 게시물과 사진에서 부자연스러움을 찾기 어렵다. 매번 다른 곳에서, 다른 포즈로, 다른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올라오는데 생김새는 분명 한 사람의 것이다. 또 인물별로 성격이 달라 어느 한 명은 명품 사진을 올리는 것을 좋아하고, 어느 한 명은 스포츠 등 야외 활동을 좋아한다. 신개념 SNS 서비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공지능(AI) SNS 앱 재피 속 가상 여성 인플루언서.
인공지능(AI) SNS 앱 재피 속 가상 남성 인플루언서.

재피는 미국·인도·한국 인재들이 모여 만들었다. 삼성전자 최연소 임원에 올랐던 ‘스타 과학자’ 프라나브 미스트리가 2021년 설립한 AI 스타트업 투플랫폼이 개발·운영한다. 투플랫폼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한국, 인도에서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에 삼성전자 출신이 많다. 최고기술책임자(CTO) 아비지트 벤데일과 AI·머신러닝(기계학습) 담당 부사장 마이클 사피엔자는 모두 삼성전자에서 웨어러블 기기·가상현실(VR)·AI 개발을 맡았다. 이외에도 구글, 소니, 마이크로소프트(MS), 블룸버그 등 글로벌 기업을 경험한 인재가 모였다. 유튜브 공동 창업자 스티븐 챈과 패티 메이스 메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존 청 JC&컴퍼니 대표가 자문을 맡으며 업계 주목을 끌었다.

투플랫폼이 재피를 한국 시장에 출시한 시기는 올해 1월. 불과 2개월 만에 가입자 25만 명을 모았다. 재피 경쟁력은 단순 화제성 뿐만이 아니라 기술력에 있다. 투플랫폼이 독자적으로 만든 생성형 AI 엔진 ‘지니’와 현실 합성 엔진 ‘헤일로-2’를 기반으로 한다. AI가 스스로 생각하고 기억하는 ‘동적 장기기억(DLTM)’ 능력을 가지고 있어 각기 다른 성격을 보여주고, 이를 기반으로 이용자와 대화까지 가능한 것으로 분석된다. 재피 AI는 과거 대화 데이터를 참고해 그럴듯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능력 또한 가지고 있다.

SNS 시장은 수요가 또 다른 수요를 부르는 플랫폼 산업 특성이 가장 강하게 발현되는 독과점 시장이다. 주변 지인 중 사용자가 없으면 굳이 새로운 플랫폼에 가입해 시간을 들여 활동하지 않는다. ‘라인’과 같은 대체 서비스가 있어도 가족, 친구, 지인이 주로 ‘카카오톡’을 사용하기 때문에 계속 같은 서비스를 쓰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한번 패권을 잡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 좀처럼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SNS 시장을 공략한다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재피’ 개발사 투플랫폼 임직원 모습. 사진 제공=투플랫폼

재피가 기댈 수 있는 부분은 차별화된 서비스와 아이디어, 그리고 빠른 실행력이다. 출시 2개월 만에 가입자 25만 명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AI 인플루언서라는 분명한 차별화 지점이 있었기에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이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는 시장을 침투할 수 있었다 봐야 한다. 결국 SNS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용자를 끌어모으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실제 사람들 간 소통이 있어야 하기에 재피는 AI 인플루언서를 하나의 재미 요소 또는 차별화 지점 정도로 보고 있다. 재피 전략의 핵심은 AI로 이용자를 모은 후, 이용자끼리 상호작용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 재피를 사용해보면 AI 기술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일부 개선이 필요한 지점도 보인다. 예를 들어 재피는 AI 인플루언서가 이용자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음성을 직접 들어보면 조금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외 사진, 게시물 등은 부자연스러움을 찾기 어렵다. 결국 재피 플랫폼은 AI 인플루언서라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끌어모은 이용자를 유지하고, 이들의 재방문율(리텐션)을 높여 상호작용을 만드는 데서 성패가 갈릴 가능성이 높다.

프라나브 미스트리 투플랫폼 대표는 “한국의 유저들을 먼저 공략한 후 MZ세대 인구 수만 9억 명이 넘는 인도 시장에 서비스를 론칭할 계획”이라며 “최종적으로는 글로벌 22억 명의 잘파(199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 세대가 쓰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덕연 기자 gravit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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