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볼!] 인자기가 펼치는 아기자기한 명품 축구... 인테르가 살아났다

장민석 기자 2024. 3. 1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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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인테르의 선두 질주를 이끄는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 X(옛 트위터)

유럽 축구가 올 시즌 일정을 70% 이상 소화한 가운데 선두 다툼이 치열한 리그도 있고, 한 팀이 독주하는 리그도 있습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은 아스널과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맨시티)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28라운드를 치른 현재 아스널이 승점 64(득실차 46)로 1위, 리버풀이 승점은 같지만 득실차(39)에서 뒤져 2위를 달리고 있죠. EPL 최초 4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맨시티는 승점63으로 3위입니다. 보기 드문 뜨거운 3파전입니다.

반면 독일 분데스리가는 사비 알론소 감독이 이끄는 바이어 레버쿠젠이 25라운드를 치른 결과 승점67로 2위 바이에른 뮌헨(승점 57)을 10점 차로 멀찌감치 따돌리고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분데스리가를 11연패(連覇)한 뮌헨의 연속 우승 기록이 깨질 위기인데요. 해리 케인은 독일 최고 명문팀에 와서도 무관(無冠)을 벗어나지 못할 운명에 처했습니다.

이강인이 뛰는 프랑스 리그1도 이강인의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PSG)이 여유 있게 선두를 달립니다. 25라운드를 소화한 올 시즌 리그1에서 PSG의 승점은 56. 2위 스타드 브레스투아(승점 46)와 승점 차는 10이죠. PSG의 리그 3연패가 무난해 보입니다.

28라운드를 치른 스페인 라 리가는 레알 마드리드가 승점69로 지로나(승점 62)에 앞서 1위입니다. 레알 마드리드보다는 바르셀로나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제치고 2위에 오른 지로나에 더 눈이 가네요.

그리고 유럽 5대 리그 중 하나가 남았으니 바로 이탈리아 세리에A입니다. 세리에A를 가장 나중에 언급한 이유는 오늘 이 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줄여서 흔히 인테르라고 부르는 팀입니다.

AC밀란과 함께 밀라노를 연고로 하는 인테르는 올 시즌 세리에A에서 그야말로 독주를 하고 있습니다. 24승3무1패로 승점 75를 기록, 2위 AC밀란(승점 59)에 무려 16점이 앞서 있죠. 지난 시즌만 해도 김민재가 버틴 나폴리가 승점 90으로 2위 라치오(승점 74)를 압도했는데 불과 한 시즌 만에 천하가 바뀌었습니다. 김민재를 떠나보낸 나폴리는 감독이 두 번이나 바뀌는 혼란 속에 현재 7위(승점 44)까지 처진 반면 작년 3위로 리그를 마친 인테르가 이탈리아 최강 클럽으로 올라선 겁니다.

인테르는 인자기 감독 체제에서 두 차례 코파 이탈리아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 X

잠깐 인테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영어권 표현인 인터 밀란으로 잘 알려진 이 클럽은 축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입니다. 1908년 창단해 세리에A에서 19회 우승컵을 들었죠. 최다 우승은 36회의 유벤투스. 인테르는 지역 라이벌 AC밀란과 2위입니다. 인테르가 올 시즌 정상에 오른다면 통산 20번째 우승 감격과 함께 AC밀란을 제치며 자존심을 세우게 되죠.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우승은 3회 차지했는데 1963-1964, 1964-1965 시즌 2년 연속 우승에 이어 2009-2010시즌엔 트레블(세리에A·코파이탈리아·UCL 동시 우승)을 이룹니다. 바로 조제 모리뉴 감독 시절이죠.

2000년대 인테르는 오르락내리락하며 롤러코스터와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2005-2006시즌부터 2009-2010시즌까지 세리에A 5연패를 이루며 황금기를 구가하다가 2011-2012시즌 6위로 처지더니 2012-2013시즌엔 9위, 2014-2015시즌 8위, 2016-2017시즌 7위 등 한동안 암흑기를 벗어나지 못했죠.

1995년 인테르를 맡아 재임 기간 15억유로의 사재를 이적 시장에 투자한 석유재벌 마시모 모라티가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인테르는 2013년 인도네시아 사업가 에릭 토하르를 거쳐 2016년 중국 쑤닝그룹이 인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혼란이 지속되며 인테르는 2000년 이후 임시 감독을 포함해 21차례 사령탑 교체가 이뤄졌죠.

어쨌든 인테르는 ‘우승 청부사’ 안토니오 콘테가 2020-2021시즌 세리에A 타이틀을 따내며 옛 영광을 되찾는가 싶었지만, 쑤닝그룹의 재정난이 겹치며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정상을 유지하진 못했습니다.

그런 인테르에 구세주가 등장했으니 바로 시모네 인자기 감독입니다. ‘인자기’라 하면 우리에겐 오프사이드 함정을 깨는 데 일가견이 있었던 이탈리아 대표팀 공격수 필리포 인자기가 먼저 떠오를 텐데요. 시모네는 필리포의 동생입니다. 선수 시절엔 형이 훨씬 더 유명했지만, 감독으로는 동생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인테르를 유럽 최정상급 클럽으로 다시 끌어올린 시모네 인자기 감독. / 로이터 연합뉴스

2016년 라치오 사령탑을 맡으며 세리에A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한 인자기 감독은 ‘단판 승부의 사나이’입니다. 2019년 코파 이탈리아(FA컵) 결승과 2017년과 2019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세리에A와 코파이탈리아 우승 팀이 단판으로 우승을 다투는 대회. 2023년부터 준우승 팀까지 4팀이 참가하는 대회로 확대)에서 모두 팀을 우승으로 이끈 인자기는 2021-2022시즌을 앞두고 인테르 지휘봉을 잡습니다.

인자기 감독은 인테르에서도 팀을 2022년과 2023년 코파 이탈리아 우승으로 이끌었고,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도 세 차례 정상에 올랐습니다. 결승 전적만 8승2패입니다. 지난해 UCL 결승전에서 맨시티와 대등한 승부 끝에 0대1로 패한 것이 아쉬웠죠.

부임 이후 세리에A에서 2021-2022시즌 2위와 2022-2023시즌 3위를 기록한 인자기는 올 시즌엔 팀을 압도적인 선두로 이끌고 있습니다. 인테르는 이번 시즌 리그에서 가장 많은 득점(77골)을 넣고 가장 적은 실점(28골)을 한 팀입니다.

인자기가 놀라운 점은 모기업 재정난으로 몸값 높은 특급 스타들을 영입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뤄낸 성과라는 것입니다. 여기엔 주세페 마로타 CEO의 효율적인 선수 영입도 한몫했습니다. 인테르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안드레 오나나와 마르첼로 브로조비치, 로빈 고젠스, 안드레아 피나몬티 등을 떠나보내며 챙긴 이적료로 얀 좀머, 다비데 프라테시, 뱅자맹 파바르 등을 데려 왔습니다. 마르쿠스 튀랑과 알렉시스 산체스는 FA로 영입했고요.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는 임대로 데려왔습니다.

인테르에서 베테랑의 진가를 보여주는 알렉시스 산체스. / AFP 연합뉴스

인테르는 올 시즌 영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골키퍼 좀머는 주전 수문장으로 든든히 버티고 있고, 공격수 튀랑은 25경기에 나서 10골 7도움을 올리며 공격의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36세 노장 산체스도 UCL에서 2골을 넣는 등 베테랑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고요. 아르나우토비치는 서브 공격수로 쏠쏠한 활약을 펼칩니다. 파바르는 3명의 중앙 수비수 중 오른쪽을 주로 맡고요.

오랜 시간 인테르 소속이었던 선수들도 올해 최고 시즌을 보냅니다. 2018년부터 인테르에서 뛰는 아르헨티나 골잡이 라우타로 마르티네스는 올 시즌 23골로 세리에A 득점 1위를 달리며 기량이 만개한 모습입니다. 2017년부터 인테르 소속으로 두 번의 임대 생활을 거친 알레산드로 바스토니는 세리에A 정상급 센터백으로 거듭났고요. 인테르 유스 출신으로 임대로 네 팀에서 뛴 페데리코 디마르코도 올 시즌 왼쪽 윙백으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명의 센터백 중 왼쪽에 주로 서는 바스토니와 왼쪽 윙백 디마르코의 콤비 플레이는 올 시즌 인테르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인자기 감독은 몇몇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로테이션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이번 시즌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올 시즌 15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가 18명에 달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충분한 체력을 확보한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빠른 공수 전환 등 강도 높은 플레이를 펼치는 거죠. 득점원도 많아 3골 이상 넣은 선수가 8명입니다.

인테르에서 왼쪽 윙백으로 주로 뛰는 페데리코 디마르코는 인자기 감독 전술의 핵심이다. / AP 연합뉴스

인자기의 인테르는 기본적으로 3-5-2 포메이션을 쓰지만, 여기에 얽매이지 않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특정 공간에서 순간적인 수적 우위를 확보하는 포지션 플레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2~3명이 펼치는 부분 전술이 동시 다발적으로 그라운드에서 이뤄지는 겁니다. 이 점은 사비 알론소 체제에서 무패 행진을 달리는 레버쿠젠과 닮았습니다.

인테르는 주로 스리백을 쓰면서 좌우 윙백이 수시로 전진해 공격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중앙 수비수들도 후방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전진하거나 측면으로 빠지는데 동시에 미드필더들도 움직이면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죠. 스리백과 포백을 지속적으로 오가면서 빌드업을 가져간 뒤 전방 압박에 나선 상대를 끌어들여 그 뒷공간을 효율적으로 공략하는 패턴을 자주 사용하는 것도 특징이고요.

인테르에서 유럽 최정상급 미드필더로 거듭난 하칸 찰하놀루. / X

이런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움직임은 짧은 시간 이루긴 어려운데 올 시즌은 인자기가 인테르를 맡은 지 3년차라 어느 정도 완성된 단계에 이르른 느낌입니다. 여러 클럽과 포지션을 거치며 기복 있는 플레이를 펼쳤던 미드필더 하칸 찰하놀루와 헨리크 미키타리안이 인테르에서 활약하는 것도 인자기가 그들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게 역할을 부여한 덕분이란 평가입니다. 찰하놀루는 3선에서 기가 막힌 패스를 뿌려주고 있고, 미키타리안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인자기 감독의 전술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인테르는 이런 추세라면 세리에A 역대 최다 승점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습니다. 현재 최다 기록은 2013-2014시즌 유벤투스의 102점. 승점 75인 인테르가 남은 10경기에서 9승1무를 거두면 103점으로 새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쉽지 않아 보이지만, 올해 공식전 13전 전승을 기록한 터라 불가능한 목표는 아닙니다.

시모네 인자기의 인테르는 어떤 성과를 달성하고 올 시즌을 마치게 될까요? 비록 UCL에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밀려 8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남은 세리에A 경기를 지켜보는 것은 유럽 축구 팬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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