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미발표 유작
“친애하는 막스. 나의 마지막 부탁일세. 내가 남긴 모든 공책, 원고는 읽지 않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불태워주게.”
마흔 살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 소설가 카프카는 친구인 막스 브로트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브로트는 그 유언장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카프카의 재능에 확신을 갖고 있던 브로트는 그에게 늘 글을 발표하라고 독려했지만, 내성적인 카프카는 항상 자신의 글을 의심하며 부끄러워했다. 브로트는 친구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카프카가 “낙서”라고 불렀던 유작들을 모두 출간한 것이다. 그 덕에 세상 빛을 보게 된 작품이 <성> <심판> <아메리카> 같은 초현실주의 걸작들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유작 <8월에 만나요>도 비슷한 경로로 지난 6일 그의 사후 10년 만에 출간됐다. 마르케스는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알츠하이머로 기억력이 점차 흐려지는 상황이어서 소설의 질을 스스로 의심했다. 그는 죽기 직전 둘째 아들에게 “이 작품은 찢어버리고 절대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아들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판단했을지도 모른다’고 느껴 출판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이에 대해 “마르케스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한 작품을 발표하기로 한 선택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며, 우뚝 솟아 있는 유산에 실망스러운 각주를 추가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독자들은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작가의 죽음으로 창조의 문이 닫혀버린 세계를 유작으로나마 계속 탐구하고 싶은 욕심 말이다.
“아버님께서 하늘에서 ‘뭐하러 했노?’ 그러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솔직히 겁도 납니다.” 시인 박목월의 장남인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아버지의 미발표 시 166편을 지난 12일 공개하면서 한 말이다. 박목월은 미발표 시에 대해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았지만, 아들은 오래전 작고한 아버지의 뜻을 알 수 없어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나 그의 미발표 시 덕분에 한국의 시문학사는 더욱 풍부해질 것이기에 독자들은 또 한번 그저 욕심을 부리고 싶을 뿐이다.
정유진 논설위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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