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청소노동자 달갑지 않은 이유 [왜냐면]

한겨레 2024. 3. 1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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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인권단체 관계자들이 2020년 6월 청와대 사랑채 앞에 모여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민을 위한 지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동수 | 르포작가·‘유령들: 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 저자

정부는 지난해 12월 비전문취업(E-9) 비자가 발급된 외국인의 고용을 허가하는 업종에 호텔·콘도 객실 청소 업무를 추가시켰다. 아직은 강원, 부산, 서울, 제주 4곳에 있는 호텔·콘도로 한정한 시범사업이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건물 내부를 청소하는 것은 분명 처음 있는 일이다.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보게 될 그 광경이 현재로선 달갑지 않다. 이유가 있다.

2017년 6월 강영숙씨는 호텔 객실 청소노동자가 겪어야 하는 현실을 ‘최저시급 인상, 반가우면서도 두렵다’라는 제목으로 한겨레 ‘왜냐면’에 기고했다. 최저시급을 받고 일했던 강씨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포함해서 하루 9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근로시간만 딱 지키며 일할 수 없었다. 호텔 쪽이 근로시간 안에 끝내라며 매일 할당하는 일의 양 때문이었다. 기본 14개, 많게는 17~18개의 객실은 절대 9시간 안에 청소할 수 없는 개수라고 한다. 그래서 근로시간을 넘기며 일해야 했는데도 연장 근로에 대한 수당을 받지 못했다. 겉으로만 보면 기본급으로 최저임금은 받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일한 시간을 따지면 그조차도 받지 못하는 꼴이었다.

이 무급노동의 이면에는 호텔이 객실 수에 턱없이 부족한 청소 인력을 투입했다는 사실이 자리한다. 호텔이 적은 인력으로 업무를 유지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건비를 최대한 아끼려는 목적이다. 더군다나 강씨가 일하던 호텔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별 인건비’가 오르면 그나마도 적은 인력을 더 감축하려 했다고 한다. 남아 있는 노동자가 맡아야 할 업무는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2022년 9월 허지희씨도 한겨레 ‘6411의 목소리’에서 ‘돌아온 관광객, 돌아오지 못하는 호텔리어’라는 제목으로 호텔 객실 청소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했다. 그의 일터에는 감독관이 있었다고 한다. 감독관의 역할은 청소노동자들의 청소상태를 점검한 뒤 평가를 내리는 것이었다. 그 평가에서 낮은 등급이 나오면 청소노동자의 임금을 깎을 증거로 활용됐다. 청소노동자들은 그 대상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작은 흠, 순간의 실수로 지적당하는 일 자체를 만들지 말아야 했다. 애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오로지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한 목적의 평가처럼 보인다. 어쨌든 임금이 최대한 적게 삭감되기 위해선 더 오래, 더 열심히, 더 세심하게 청소할 수밖에는 없다. 노동강도 증가는 산재 발생률을 높이기 마련인데, 허씨도 좋은 등급을 받으려다 근골격계 질환이 생겼다고 한다.

강영숙씨와 허지희씨의 사례는 사실 청소노동자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현실이다. 두 사람도 청소노동자이기에 이런 부당한 대우를 겪을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그 여파로 호텔·콘도 객실을 청소하려는 노동자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이제 외국인 노동자까지 불러들이려 하고 있다. 청소노동자를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수익과 손실로 판단되는 회계장부상의 숫자로만 바라보는 비인간적 일터에서 구인난은 시간문제였다.

어느 누구도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구인난은 인간의 그런 본성에서 비롯한다. 현재 시행 중인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좋은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본성을 강제로 억압한다는 점이다. E-9 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은 일할 곳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중도에 해지하거나 갱신하지 않을 때만 이직이 가능하다. 이를 어기고 임의로 근무지를 옮기면, 발급받은 E-9 비자의 효력이 말소된다. 그 노동자가 한국에서 더는 합법적으로 일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폐업, 휴업, 실정법 위반 등 사용자에게 잘못이 있어도 이직할 순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이를 증명하고 적법하게 ‘자유의 몸’이 되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서 결코 쉽지 않다.

자신에게 이렇게 유리한 고용허가제를 이용할 수 있는 사용자가 굳이 인력난의 근본 원인을 개선하려고 할까? 오히려 제도의 맹점을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 머지않아 E-9 비자를 받고 한국 땅을 밟은 외국인이 8시간 치 최저임금만 받고 하루 20~30개 객실을 청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임금마저 깎기 위해 호텔은 청소 검사를 더 정밀하게 할 수도 있다.

정말 외국인 청소노동자가 필요하다면, 최소한 고용허가제부터 폐지해야 한다. 사용자는 그제야 사람이 그저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투자에 나설 것이다. 외국인 청소노동자도 인력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열악한 노동환경에선 절대 일하고 싶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들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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