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같은 사람, 물같은 사람

한겨레 2024. 3. 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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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솥바위. 사진 원철 스님

부자 1번지 솥바위 그리고 승산마을을 찾다

한 해가 시작될 무렵에는 경남 의령에 있는 정암(鼎巖, 솥바위)을 찾는 사람이 평소보다 많다. 솥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20리 안에 나라에서 내로라는 부자를 배출한다는 전설이 있다. 그 전설 덕분인지 정암을 중심으로 한국의 재벌가인 삼성, 효성, 금성(LG·GS 전신) 집안의 본생가(本生家)가 삼각형을 이루면서 자리잡았다. 전설이 전설이 아니라 눈 앞의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전설이 현실이 될 때는 설득력을 가진다. 설득력 있는 장소는 명소가 되고 명소는 사람을 부르기 마련이다.

바위신앙의 역사는 인류의 출현과 함께할 만큼 그 역사가 길다. 특히 솥바위는 부(富)를 기원하는 성소(聖所)였다. 농업이 산업의 중심인 시절에는 솥 안에 가득한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 쌀밥은 그 자체로 부귀의 상징인 까닭이다. 농업자본이 농업자본에서 멈춘다면 그것은 그대로 과거사로 정지된다. 즉 전설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지역은 농업자본이 농업자본으로 멈춘 것이 아니라 상업자본으로 전환에 성공한 인재를 배출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솥바위의 영험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또 부귀는 현대인들이 ‘대놓고 추앙하는’ 또다른 종교로서 자리매김하는 시류까지 한 몫을 더했다. 따라서 ‘솥바위교’ 신도들도 날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 날도 바위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선여인(善女人)들을 만났다.

심리적으로 잠재적 솥바위 신도인 현대인들을 불러 모으는 정암을 찾았다. 새해가 되면 꼭 참배해야 하는 ‘기(氣) 충전소’임을 이미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지자체는 아예 ‘대한민국 부자일번지’를 표방하고 있다. 포토존 의자에는 ‘함께 부자가 되자’고 하면서 ‘富(부)’ ‘Rich(리치)’ 등 한문과 영어를 병기하여 구세대는 물론 신세대까지 동시에 불러 모으고 있다.

솥바위는 남강 가운데 우뚝하게 자리 잡았다. 풍수학자들은 물은 재물을 상징한다고 했다. 재물이 바위에 걸리면서 천천히 흐른다. 자연스럽게 재물이 쌓이는 구조이다. 그런 바위를 나성(羅星)이라고 한다. 세 부자집안 기업의 공통상호인 ‘성(星)’자가 여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요즘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예로부터 정암진 나루터는 남해와 낙동강을 따라 온 물자들이 서부경남 내륙으로 들어가는 물류의 거점이었다. 근대에도 철교가 놓일만큼 교통요지로서 위상도 만만찮았다.

먼저 전경을 살피고자 언덕 위에 있는 정자인 정암루(鼎巖樓)에 올랐다. 안내문에는 빼어난 경치로 인해 많은 선비와 가객들이 찾아 학문을 논하고 자연을 노래했다고 적어 놓았다. 함안 가산(家山) 기슭에 무덤이 있다는 어변갑(魚變甲, 1381~1435) 선생이 누각에서 주변 풍광을 노래한 시가 남아 있다. 그는 집현전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조선 초기 문신이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 생가. 사진 의령군청 누리집 갈무리

춘수정암횡련벽(春水鼎巖橫練碧)이요

춘풍자굴전병신(春風闍堀展屛新)이라.

봄날 흐르는 솥바위의 강물은 비단을 펼친 듯 푸르고

가을바람 부는 자굴산은 병풍을 펼친 듯 새롭네.

그 시에 자굴산(闍堀山)이 나온다. 인도의 마갈타국 수도 왕사성 동북쪽에 있는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闍’는 ‘사’ 혹은 ‘자’로 읽는다. 보통 사굴산(강릉의 굴산사 당간지주가 있는 산)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에서는 자굴산이라고 부른다. 어쨋거나 사굴이건 자굴이건 모두 인도말 ‘기자꾸타(gijjha-kuta)’의 소리번역이다. 원문 발음대로라면 ‘사’보다는 ‘자’로 읽는 게 맞겠다. 하지만 자굴산보다는 사굴산으로 읽는 것이 모두에게 익숙한 편이다. 결국 문법은 많이 쓰는 사람 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역사회에서 읽어왔던 관례는 존중되어야 한다.

기사굴산은 붓다께서 머물면서 설법하던 곳으로 세계적인 불교성지다. 법화경은 서두에 기사굴산에서 설했다는 말로 시작된다. 산봉우리가 독수리와 닮았다고 하여 영취산(靈鷲山, 영축산)으로 부른다. 소리번역이 아니라 뜻번역이다. 전남 여수 등 전국 몇 곳에 영취산이 있다. 양산 통도사가 자리하고 있는 산은 한문으로 같은 표기를 함에도 ‘영축산’으로 읽는다. 이 또한 지역사회의 읽기 관례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함안은 아라가야에 속하는 가야문화권이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중국을 통해 불교를 받아들인데 반하여 가야불교는 허황후와 장유화상에 의해 인도에서 직수입된 불교이다. 남쪽지방에 있는 산 이름에도 그런 흔적들이 남아 있다고 하겠다.

논어에는 ‘지자요수(智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고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산 따로 물 따로’는 아니다. 늘 함께 한다. 그래서 묶어서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한다. 산은 인물을 키워주고 물은 재물을 늘려준다고 했다. 솥바위에서 진주 방향으로 구씨(LG)와 허씨(GS)집안이 대대로 함께 살고 있는 승산(勝山)마을이 있다. 행정구역은 ‘지수(智水)면 승산(勝山)리’다. 산이름과 물이름이 함께 어우러진 명당마을이라 하겠다.

승산마을 골목길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 마을길을 함께 걸었다. 600년 전통의 부자마을 허씨와 구씨 집성촌답게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번듯한 기와집이 동네 전체에 빼곡하다. 한양의 명문세도가들 사이에서도 ‘진주는 몰라도 승산은 안다’고 할만큼 조선시대에도 큰 관심을 받은 동네라고 했다. 좋은 기운은 많이 받을수록 좋다고 하였으니 계속 동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면서 거듭 두어바퀴 걸었다.

글 원철 스님(불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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