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없어도 알아본다… 티 내지 않는 ‘젠틀 럭셔리’[Premium Life]

김호준 기자 2024. 3. 1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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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emium Life - 올드머니룩 명가 ‘브루넬로 쿠치넬리’
伊 장인이 제작…‘캐시미어의 제왕’ 애칭
튀는 색상·패턴 없이 미니멀 디자인 추구
부드러운 감촉·편안한 착용감으로 인기
미학 담은 男女 컬렉션 우아함의 대명사
브루넬로 쿠치넬리 봄·여름(S/S) 컬렉션을 모델들이 선보이고 있다. 이번 컬렉션은 부드러운 볼륨감과 균형을 강조하면서도 캐시미어·리넨·실크 등 고급 섬유를 세심하게 믹스 매치해 편안하고 가벼운 느낌을 강조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지난해 전 세계 패션계를 휩쓴 스타일은 단연 ‘올드머니(old money)룩’이다. 대대로 내려온 부(富)를 물려받은 이들이 즐겨 입는 패션 스타일을 뜻하는 올드머니룩은 은은하고 튀지 않는 클래식한 스타일, 로고나 눈에 띄는 패턴을 드러내는 대신 고급 소재와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고급스러움을 추구한다. 올드머니룩은 상류층의 고급 취미인 승마, 요트 등을 즐길 때 입던 패션에서 발전했다. 캐시미어, 실크, 고급 리넨 등 고가 소재를 사용한 클래식한 아이템과 원색 대신 베이지, 화이트, 브라운 등 튀지 않는 색상을 주로 사용한다.

이탈리아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올드머니룩의 대표주자이자 ‘젠틀 럭셔리’(Gentle Luxury)의 대명사로 불린다.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고품질과 최상급 캐시미어 소재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패션계에서는 ‘캐시미어의 제왕’이라는 칭호도 얻었다. 브랜드 창립자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1953년 이탈리아 페루자 카스텔 리고네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환경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부친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직업을 꿈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건축 측량사 학위를 취득한 후 대학 공학부에 진학했지만 곧 중퇴하고 25세 때인 1978년 이탈리아 페루자 지방에 작은 캐시미어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50만 리라(약 37만 원)의 대출금을 갖고 시작한 그는 첫 번째 샘플 컬렉션으로 5가지 색상의 캐시미어 스웨터를 제작해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캐시미어 제품은 부드러운 감촉과 편안한 착용감으로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인기 품목이었으나, 까다로운 소재 특성상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분야에 속했다. 쿠치넬리는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의 결과로 캐시미어 주요 소비층인 여성들의 니즈를 반영한 다채로운 색상의 캐시미어 스웨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1985년 쿠치넬리는 페루자 지방의 작은 마을에 있는 14세기 말 지어진 솔로메오 성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그는 솔로메오가 가진 독특한 문화적 자원들이 자신의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는 그가 어렸을 때 구상했던 인간의 존엄과 가치, 즉 인본주의적 꿈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쿠치넬리는 마을에 학교, 교회, 극장, 도서관을 짓고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위한 각종 시설을 만들었다. 쿠치넬리는 솔로메오에서 회사를 운영하면서 관료주의적 관행인 출퇴근 카드를 찍는 제도를 폐지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출퇴근할 수 있도록 했다. 형식적인 조직 내 계급도 폐지했다.

이렇게 활기를 찾기 시작한 솔로메오에서 만든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고품질 캐시미어 제품들은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지금까지도 솔로메오는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브랜드와 사업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각인되고 있고, 마을의 문장(紋章)과 성곽의 이미지는 브랜드 로고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브랜드 철학에 인본주의를 담고 있는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한 번 사면 쉽게 버리지 않는 옷, 손자·손녀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옷으로 지속가능한 패션을 실천하는 데 힘쓰고 있다.

올해 봄·여름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여성 컬렉션 콘셉트는 ‘자연스러운 균형’이다. 간결함과 화려함, 더하기와 빼기, 미학과 기능성 등 상반된 요소들의 조화에 중점을 뒀다. 재킷과 슈트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 어울리는 패딩과 후드, 트렌치코트 등 클래식한 아우터웨어와 함께 스커트, 팬츠, 반바지와 잘 어울리는 바이커 재킷 등을 선보였다. 특히 남성복에서 차용한 오버사이즈 재킷은 여성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허리선은 컷, 벨트 또는 코르셋 효과로 강조했다. 또 오버사이즈 블레이저, 롱 트렌치코트, 맥시 카디건, 기장이 긴 아우터는 반바지 또는 치마바지와 스타일링된다. 스커트는 짧은 니트웨어, 티셔츠, 허리길이의 셔츠와 완벽하게 어울리도록 길게 제작됐다. 니트웨어는 다양한 니트와 원사를 사용해 독특한 질감을 연출하고 볼륨감을 강조했다.

남성 컬렉션 콘셉트는 ‘보헤미안 에볼루션’이다. 현대인의 개성을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 구상된 이번 컬렉션은 ‘우아함에 대한 탐구’가 핵심이다. 남성의 개성이 가장 단순한 조합에서도 무리 없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신선한 색상과 부드러운 볼륨감으로 우아함을 자아내도록 했다. 팬츠뿐만 아니라 티셔츠, 니트웨어 카테고리에서도 부드러운 핏을 더욱 강조했다. 컬렉션의 핵심인 여름 니트웨어는 면, 리넨, 실크와 같은 고급 천연 섬유를 세심하게 사용해 편안함과 가벼움을 선사한다. 새롭고 부드러운 볼륨감과 다양한 스티치의 조합으로 입체적인 패턴을 연출하는 등 다양한 디자인이 강점이다.

김호준 기자 kazzy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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