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1호선 연장 청산역 소요산 종주] 이제 연천의 산은 전철 타고 간다

신준범 2024. 3. 1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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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역과 새로 생긴 청산역 잇는 색다른 소요산 종주 11km

"이번 열차는 연천, 연천역행 열차입니다."

수도권 전철 1호선 경기 북부 종착역이 소요산역에서 연천역으로 바뀌었다. 연천 구간이 연장 개통한 것. 지난해 12월 16일 소요산역과 연천역을 잇는 21km의 전철이 개통했으며, 1호선 청산역~전곡역~연천역이 새로 생겼다. 각각의 역을 기점으로 즐길 수 있는 아웃도어 활동과 맛집, 명소를 소개한다.

청산역에서 가까운 초성임도. 연천군 청산면 초성리의 임도를 걷기길로 조성했다. 찾는 이가 드물어 순백의 눈길을 즐길 수 있었다. 성예진, 조수연씨가 눈밭에서 재미있는 포즈를 취했다.

등산에 관심 없는 사람도 소요산은 안다. 수도권 1호선 전철에선 "이번 열차는 소요산, 소요산행 열차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종일 나온다. 간혹 세상살이에 지쳐 마음이 곤란에 처하면 지하철 안내 방송이 "소요산 소풍 가는 열차입니다"라고 엉뚱하게 들린다. 1호선 경기북부 종점에 사람 마음을 아는 산이 있어, 한가로이 거니노라면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游를 알게 될 것만 같다.

혜자惠子가 바르지 않고 굽은 큰 나무의 쓸모없음을 걱정하자, 장자가 아무 것도 없는 너른 벌판에 그 나무를 심어, 한가로이 그 나무 아래 거닐고 누워 자는 것逍遙乎寢臥其下(소요호침와기하)은 어떠냐고 말한다. 소요산에서 실컷 소요逍遙하다 산을 내려서서 닿은 곳이 청산靑山이라면 산꾼에게 이보다 좋은 하루가 있을까.

소요산의 명성에 걸맞게 산 입구는 여러 조형물과 기념탑, 주차장, 식당, 화장실, 관광지원센터 등이 즐비하다.

소요산역에서 산행을 시작해 청산역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다. 2022년 '파워우먼 한북정맥 종주'를 본지에 연재한 성예진·조수연씨와 함께다. 오랜만의 산행이라는 성예진씨는 늘 무언가 몰두하는 성격인데 지금은 폴 댄스Pole dance에 빠져 있다. 연천이 고향인 조수연씨는 한국산악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소요산은 원점회귀 산행이 공식인데, 틀을 벗어나기로 했다. 인터넷에도 북진해 종주한 산행기는 드물었다. 월간<山> 지도와 산림청 지도, 네이버 지도에 북쪽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었다. 완벽한 종주는 어렵지만 임도를 따라 마을로 내려서면 자연스런 청산역 하산이 가능할 것 같았다. 일반적인 산행은 아니지만, 합법적인 코스이니 도전에 나섰다.

가을이면 등산객으로 붐비는 단풍터널, 겨울에는 찬바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원효가 최고봉을 의상대라 부른 까닭

결말을 알 수 없는 이야기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식당이 즐비한 입구, 광장 같은 주차장, 번듯한 관광지원센터를 차례로 지난다. "명산 중의 명산, 소요산으로 말할 것 같으면"으로 시작하는 미사여구를 잔뜩 섞은 무언의 설명을 풍경이 하고 있었다. 차가운 산 공기가 아니었다면 서울시내를 벗어나지 못한 줄 착각했을 터.

태조 이성계 행궁, 나옹선사와 무학대사, 요석궁지 포토존, 자재암과 원효대사, 원효대사와 관음보살의 만남, 서경덕과 황진이 피서지….

숱한 안내판과 명소, 명산에서 흔히 마주치는 것이지만 100% 사실이라 볼 수 없고, 100% 허구도 아니다. 다만 세월 속에서 지나치게 확대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 사실처럼 포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소요산은 옛 문헌에도 이름이 여러 번 나오고, 1920년대의 신문기사에도 '경기도의 소금강(작은 금강산)이자 원효대사가 세운 자재암이 있다'고 실린 걸 감안하면, 오랜 명성이 완전 허구는 아니다.

봄·가을엔 등산 인파가 엄청 몰리지만, 오늘은 등산객보다 공원관리자가 더 많다. 신라시대 원효가 창건했다는 자재암自在庵이 다가올수록 불심佛心의 밀도가 높다. 기도터의 촛불이며 무수한 불상에 걸음이 경건해진다.

방향을 꺾어 공주봉 산길로 든다. 최고 전망대인 의상대와 공주봉을 모두 둘러볼 심산이다. 입구에서 걸음이 멈춘다. 북사면답게 꽁꽁 얼어붙은 빙판이다. 반쯤 얼었으면 조심해서 오를 자신이 있는데, 아이젠 없이 오르기 어려운 상태다. 그래서일까. 마주치는 사람 하나 없이 고요해서 산의 굴곡을 뜨겁게 세기며 오른다.

공주봉 쪽에서 본 소요산 의상대. 능선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이 확연히 대비된다. 소요산은 부드러우면서 거친 매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촬영을 위해 잠깐 바위에 올라섰다. 험한 곳은 우회하는 데크계단이 놓여 있어 어렵지 않다.

500m대 산이라 얕본 적 없으나, 조심성 많은 산은 입산 자격이 있는지, 코가 닿는 오르막으로 묻고 또 묻는다. 질주하는 증기기관차마냥 수증기를 내뿜으며, 냉랭한 산길을 깨우며 올랐다.

한 겹씩 옷을 벗어 배낭에 넣다 보니, 피부에 닿는 옷은 집티 하나만 남았다. 지하철 난방에 의지하던 몸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땀을 쏟아내며 살아 숨 쉰다. 잊었던 육체의 강인함을 일러주는 등산의 맛이 정신을 지배한다.

시원하게 토악질하듯 묵은 땀을 쏟아 닿은 공주봉(526m). 오를 만했다. 여성스런 이름과는 달리 100평쯤 되는 너른 데크 너머 남쪽 동두천 시내가 발아래 펼쳐진다.

완고한 무늬의 충돌. 건물로 빽빽한 사람의 땅과 눈 쌓인 산 특유의 백호 무늬. 극단적인 반대의 것이 함께 사는 풍경, 자연스럽다.

진짜 산행은 이제부터라고 산이 말한다. 상반된 능선의 흘러내림에 눈이 번쩍 뜨인다. 의상대 능선 남쪽은 부드러운 갈색으로 흘러내리고, 북쪽은 희고 검게 치솟은 사면이 포효하는 호랑이 같다. 소요산의 기막힌 이중성. 한쪽은 무르고, 한쪽은 거칠다.

아직 봄이라 하기엔 동장군의 세력이 막강하다. 빙판길과 마른길이 번갈아 나와 속도를 내기 어렵다.

산꾼도 고도를 기다린다

추락하듯 고도를 뚝 떨어뜨려 안부에 닿은 후 도움닫기 하듯, 물과 간식으로 체력을 보충해 박차고 오른다. 능선 종주는 지구력과 멘털이다. 헉헉거리며 어렵게 올린 고도를 언제든 버려야 하고, 추락하듯 내리꽂는 내리막을 발판 삼아 다시 올라서야 한다. 고도를 내리면서 올릴 때를 기다리고, 올리면서 내릴 때를 기다린다. 산꾼도 고도를 기다린다.

빙판과 맨땅이 번갈아 나온다. 귀찮지만 아이젠을 신었다 벗기를 반복한다. 잔잔한 바윗길이 많지만, 속도가 나지 않을 뿐 어렵지 않다. 소요산 정상 의상대에도 전망데크가 있다. 공주봉보다는 좁지만, 북쪽 경치가 시원하다. 공주봉은 남쪽 전망터, 의상대는 북쭉 경치가 황금비율이다. 자재암에 자리 잡은 원효는 최고봉 이름을 수행 도반인 의상 이름을 붙였다.

두 사람은 반대 성향이었다. 계급제가 전부인 사회에서 의상은 진골, 원효는 6두품에 불과했다. 당나라로 의상과 함께 유학을 떠나려던 원효는 동굴에서 잠을 자다 물을 맛있게 먹은 후 아침에 해골바가지의 물이었음을 알고 토해 내며, '모든 것은 내 안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원효는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에 남아 민중에게 불교를 전한다.

의상대를 지나 상백운대로 이어진 능선길. 바위를 뚫고 용틀임하는 소나무가 산행의 맛을 더한다.

의상은 당나라에서 화엄종의 대가 지엄의 수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고 돌아와 부석사를 비롯한 사찰을 지었으며, 주로 지배층에 불교를 전파했다. 파계해 요석 공주와 인연으로 설총을 낳았다고 전하는 파격적인 고승 원효. 그는 의상을 라이벌로 질투하기보다는, 진심으로 존경해 봉우리 이름으로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미지의 산길로 든다. 평평한 공터인 상백운대를 지나, 겨울 왕국으로 든다. 소요산역으로 가는 원점회귀 코스를 버리고 북진하자, 순백의 눈길이다. 산길이 희미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누군가 발자국을 새겨 걸은 흔적이 있다. 그래도 찾는 이가 적은 탓에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산길이다. 다행히 이정표와 안내판이 주기적으로 있고, 능선길이 단순명료해 길찾기 쉽다.

경치 없는 덕일봉(감투봉) 지나, 그만 하산하자고 조르는 갈림길을 여럿 지난다. 깊은 낙엽과 눈이 지배하는 야산 같은 산길. 바위도 없고, 멋들어진 소나무도, 전망데크도 없다. 인터넷 지도의 등산로가 실제로 있는지도 장담할 수 없다. 허나 수더분한 맛이 있다. 이름 없는 능선에 쏟아지는 오후 3시의 햇살은 순박해, 빛깔과 촉감을 기억하게 된다. 산과 사람 사이 거리감이 확 좁혀지며 긴밀해지는 느낌이다.

아늑한 고요를 망토처럼 휘감아 잔잔한 오르내림을 파도 타기 하듯 즐긴다. 골프장 경계를 따라 산길이 이어진다. 길이 희미해진다 싶으면, 이정표가 나타나 산길이라는 확신을 준다. 임도를 따라 초성4리마을회관으로 향한다. 배려 깊은 산이 지는 햇살을 붙잡아 놓으려 안간힘을 쓴다. 능선에 태양이 반쯤 걸렸다.

백미는 초성임도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길. 직선으로 뻗은 늙수그레한 잎갈나무가 모처럼 나타난 사람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 인공 숲답게 나를 심어준 사람을 사랑한 적 있다고 천천히 흔들리며 말한다. 바람이 우수수 불어와 다 옛일이라고 걸음을 서두르라고 보챈다.

초성임도를 걷는 성예진(왼쪽), 조수연씨. 2년 전 한북정맥을 종주한 만만찮은 산행 내공을 가지고 있다. 성예진씨는 2019년 24세의 나이로 여성 최연소 백두대간 단독 일시종주에 성공했다.

산행길잡이

어렵지 않지만 쉽지도 않다. 산행 거리가 짧지 않으므로 길찾기에 주의하고,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산 높이에 비해 주능선까지 산길이 가팔라 얕보면 산행이 힘들 수 있다. 소요산역에서 계곡 입구 주차장까지 1.4km이며, 하산 지점인 초성4리회관에서 청산역까지 1.4km이다. 산행 거리 11.4km를 포함하면 약 14km이다.

상백운대를 지나며 산길이 희미해진다. 하지만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있어, 주의하면 어렵지 않다. GPS를 활용하고 월간山 등산지도가 있어 가고자 하는 코스를 꿰고 있다면 길찾기는 쉽다. 상백운대와 중백운대를 지나 이정표의 덕일봉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후에는 이정표의 말턱고개 방향으로 진행한다.

골프장을 만나는 봉우리에 산악회에서 세운 '번대산' 표시가 있다. 임도와 골프장 철문이 만나는 곳 부근에 연천군에서 세운 '임도(초성4리 유원지)' 방향으로 200m 가면 초성임도를 만난다. 여기서 왼쪽(서쪽)으로 가면 초성4리마을회관이다. 회관 앞에는 차량 6~7대를 세울 공간이 있다. 초성임도가 끝나는 곳에 철문이 있는데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다. 멧돼지나 야생동물이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한 시설이다.

산행 말미에 임도를 잘못 들더라도 가다보면 도로나 마을로 연결된다. 다만 청산역과의 거리가 멀어지므로 초성4리마을회관 방면으로 가는 것이 효율적인 코스다. 찻길로 나온 이후에는 중국음식점 대복관 앞의 다리인 수동교를 건너고, 이어서 신천교를 건너면 청산역이다.

교통

청산역 열차 시간에 주의해야 한다. 개통 초기라 1시간에 1대 정도 운행한다. 주말 기준 청산역에서 서울 방면 열차 시간은 다음과 같다. 05:40, 06:41, 07:45, 08:48, 09:51, 10:46, 11:43, 12:47, 13:53, 14:49, 15:49, 46:46, 17:48, 18:49, 19:43, 20:45, 21:43(인천행 막차), 22:50(광운대행), 23:43(광운대행 막차). 열차 시간은 언제든 바뀔 수 있으므로 산행 당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평일 청산역에서 서울 방면 열차 시간은 다음과 같다. 05:41, 06:35, 07:11, 07:47, 08:49, 09:45, 10:43, 11:49, 12:49, 13:56, 14:57, 15:54, 16:49, 17:44, 18:47, 19:43, 20:24, 20:54, 21:54(인천행 막차), 22:50(광운대행), 23:42(광운대행 막차). 열차 시간이 많이 남았을 경우 역 부근 유일한 카페 겸 서점 겸 빵집인 서다(0507-1313-0641)에서 시간을 때우기 좋다.

맛집

초성4리마을회관에서 청산역 가는 길에 허기를 채울 만한 맛집이 여럿 있다. 청산역 맛집 기사를 참고 바란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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