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도, 농부도 죄가 없다 [뉴스룸에서]

고찬유 2024. 3. 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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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과의 7%를 담당하는 의성사과. 얼음골사과(밀양)니 꿀사과(청송)니 일찌감치 브랜드화에 성공한 타지 사과에 밀려 대접이 시원찮았다. 그 때묻지 아니한 소외와 외면이 수출 동력이 된 건 아이러니다.'

사과농장 200m 이내 심식나방이 사는 복숭아나무 제거, 사과 겉면 빨간색(색태)은 7~8할 유지(그러려면 사과에 일일이 봉지를 씌워야 한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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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한 전통시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사과. 연합뉴스

'전국 사과의 7%를 담당하는 의성사과. 얼음골사과(밀양)니 꿀사과(청송)니 일찌감치 브랜드화에 성공한 타지 사과에 밀려 대접이 시원찮았다. 그 때묻지 아니한 소외와 외면이 수출 동력이 된 건 아이러니다.'

2010년 경북 의성군 사과농장을 취재했다. 사과가 나지 않아 전 세계 사과가 다 모이는 대만에 한국 사과를 수출한 역군들을 담았다. 이름하여 '아리랑(阿里郞)사과'는 대만 내 부동의 1위 일본 사과와 동등한 가격에 거래됐다.

방한한 대만 검역관이 제시한 기준은 까다롭고 낯설었다. 사과농장 200m 이내 심식나방이 사는 복숭아나무 제거, 사과 겉면 빨간색(색태)은 7~8할 유지(그러려면 사과에 일일이 봉지를 씌워야 한다) 등이다. 봉지 씌운 사과(유대)는 자연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놈들(무대)보다 맛이 덜해 국내에선 잘 팔리지 않지만 농민들은 외화벌이에 의기투합했다.

수출에 방점을 찍은 터라 사과 농사의 고단함은 기사엔 슬쩍, 가슴엔 가득 담았다. 사과를 베어 물 때마다 농부의 노고에 감사하리라 다짐했다. 사과를 수출은 하지만 수입은 안 한다는 사실과 그 이유도 현장에서 체득했다.

고물가 주범으로 사과가 지목된 최근 상황이 착잡하다. 사과를 몇 달째 못 먹어서가 아니다. 사과 가격을 낮추기 위한 수단으로 일각에서 수입을 거론하고 있어서다. "가격이 비싸? 그럼 수입해!"라는 간명한 문답에 '소비자 선택권'이라는 명분과 '농민 과보호'라는 누명까지 걸었다. 고물가로 신음하는 민심에 배려와 공존 대신 이기심과 적개심을 끼얹은 격이다.

사과 수입의 걸림돌로 호명된 8단계 수입위험분석(Import Risk Analysis·IRA) 절차는 '국민 건강 및 생명권' '식량 안보' '농업 기반 및 환경 보호' 등을 담보하는 국제 기준이다. 단계마다 과학적 검증을 마쳐야 해 절차를 빼거나 줄일 수 없다. 양국 간 이해관계가 얽힌 협의 사항이기도 하다. '지금 비싸니 당장 들여와'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사과 수입 시 국산 사과 생산 감소로 인한 피해액은 연간 4,080억~5,980억 원으로 추산(농촌경제연구원)된다. 장기적으로 사과 생산 기반이 무너진다. 수입 사과에 딸려 들어올 수 있는 해충으로 인한 피해는 다른 과일과 작물에도 들불처럼 번지면 가늠할 수 없다. 환경도 파괴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순위는 더 떨어질 게다. 잠깐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기대에 편승한 소탐대실인 셈이다.

그래서 근본 원인을 따져 봐야 한다. 이상기후와 농가 고령화→생산량 급감→사과 가격 급등. 여기에 유통 폭리는 여전한데 할인 명목 아래 세금으로 대형 유통업체 배만 불린다는 지적도 따라붙는다. 발등의 불을 꺼야 하는 정부 고심도 이해할 바이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물가 탓에 도드라지긴 했지만 사과는 기후위기의 실상이 미래가 아닌 현재라고 경고한다. 가격 급등에도 오르지 않는 농가 소득, 일손 부족, 비용 증가에도 지방 소멸을 묵묵히 막아 내며 농촌을 지키는 늙은 농부들, 그 후도 우리 사회의 숙제다.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아야 하는데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을 안 써." 영화 '다음 소희' 대사처럼 우리의 차가운 시선이 두려워 그 자리를 물려받을 청년이 없다면 신토불이 사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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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201001042323179811)

고찬유 경제부장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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