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아들 만나기 직전… 스러진 우즈베크 청년의 꿈

신지인 기자 2024. 3. 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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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학 나온 26세 에감쿨로프
아내·아들 만나러 고향가기 전날
주차장 철거 작업 중 추락해 숨져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건물에서 기계식 주차장 철거 작업을 하던 우즈베키스탄인 에감쿨로프 울루베크(26)가 15m 아래 지하로 떨어져 숨졌다. 그는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들과 아내를 둔 가장이었다. 아들을 처음 보러 가려고 월급을 모아 우즈베크행 비행기 표를 샀는데, 떠나기 하루 전날 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일 에감쿨로프는 지상 1층에서 안전모를 쓰고 한국인 근로자 1명과 함께 있었다. 작업 중 발을 헛디뎌 지하 15m 아래로 추락했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사고 조사에 착수한 고용노동부는 업체의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를 확인 중이다.

작년 2월 우석대학교 졸업장을 든 채 학사모를 던지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인 에감쿨로프 울루베크. /페이스북

사고 현장에는 고인의 친구였던 보버 울루베크(26)도 있었다. 우즈베크 사마르칸트 지역에서 함께 중·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한다. 그는 “사고 당일에도 친구가 ‘짐을 덜 챙겼으니 빨리 작업 마치고 집에 가자’고 했다”며 “가방 안에는 아들 주려고 산 장난감과 과자들이 들어 있다”고 했다. 에감쿨로프는 매일 저녁 아내와 영상 통화를 하며 “보고 싶다” “얼른 갈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어머니에게도 매일 전화해 안부를 전했다.

에감쿨로프가 한국에 온 건 2017년 초였다. 전북 우석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작년 초 졸업장을 받았다. 학생 재학 중엔 돈을 모으려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건물 청소, 심부름센터, 택배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주변에 “한국 회사에 경영직으로 입사해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철거 일을 시작한 건 작년 초다. 아들 출산을 앞두고 일용직인 주차장 철거 일을 했다. 친구 보버와 서울 중랑구의 월세 35만원 빌라에 함께 살며 돈을 모았다고 한다. 보버는 “에감쿨로프는 작업장에서 ‘베키’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모두와 친하게 지냈고, 사장도 그가 제일 열심히 일한다고 했다”며 “식비나 생활비를 아껴 한국에서 버는 돈 대부분을 가족에게 보내주는 친구였다”고 했다. 보버는 “친구는 비행기표를 산 한 달 전부터 빨리 가족들을 보고 싶다는 얘기만 했다”며 “이런 모습으로 가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에감쿨로프의 가족들은 최대한 빨리 시신을 수습해 고향으로 함께 오라고 보버에게 전했다고 한다. 보버는 에감쿨로프의 시신과 함께 13일 오전 비행기로 우즈베크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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