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 직원들도 투잡 뛴다... 4대그룹 4610명 부업 전선 나서

석남준 기자 2024. 3. 13.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업 중개 플랫폼 ‘커리어데이’ 살펴보니… 4대 그룹 4610명
일러스트=백형선

"삼성전자 직원 971명을 포함해 삼성그룹 1784명, 현대차그룹 1373명, SK그룹 743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직장인들의 부업 자리를 중개해주는 플랫폼 '커리어데이' 강경민 대표의 말이다. 이 업체에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건강보험공단 이력 조회에 동의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업체는 회원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재직 이력을 확인하게 된다.

부업 문화가 바뀌고 있다. 과거 부업이라 하면 생계비를 더 벌기 위해 시간을 쪼개 퇴근 후 또는 주말에 주로 배달, 대리기사, 편의점·식당 아르바이트를 의미했다. 하지만 국내 최고 연봉을 받는 삼성, 현대차 직원들도 부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새로운 부업 문화의 등장 뒤에는 주52시간제의 정착, 코로나 팬데믹으로 익숙해진 재택 문화, 공간의 이동 없이 일하고 보상받을 수 있는 플랫폼 경제의 확산 등 복합적인 사회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전 세계에서도 최근 들어 부업 열풍이 불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4대 그룹 4610명이 부업 전선 뛰어들어...부업 권하는 사회

지난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국내 부업 인구는 57만5000명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고치다. 하지만 회사와 주변에 부업 사실을 알리지 않는 이른바 '샤이(shy) 부업인’을 포함하면 실제 부업에 뛰어든 인구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업 중개 플랫폼 커리어데이만 봐도 그렇다. 이 업체에는 직장인 2만여 명이 등록돼 있는데 이 중 4대 그룹(삼성, 현대차, SK, LG)에 근무하고 있는 회원만 4610명에 달한다. 이 업체에 등록된 대기업 직원들은 중소기업·스타트업의 업무 컨설팅, 프로젝트 계약, 자기소개서 첨삭 등으로 월급 외 수입을 얻고 있다. 전화 상담을 할 경우 시간당 20만~3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업체 강경민 대표는 "회원 가입을 꺼려 하는 직장인들에게 근로소득 외 소득은 개인정보로 취급돼 국세청에서 회사에 별도 통보하지 않아 회사에서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고 말했다.

화장품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40)씨는 집을 사기 위해 모아놓은 2억원을 투자해 서울 강북구에 프랜차이즈 덮밥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에선 겸업을 금지하고 있지만, 장모 명의로 가게를 열었다. 그는 "가게에는 일주일에 한 번 갈까 말까”라며 "폐쇄회로(CC)TV를 스마트폰으로 보며 매장 상황을 살펴보고, 포스기(계산기)앱으로 실시간 매출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국내 한 대기업의 인사팀 직원은 "회사에 정식으로 겸직 신청을 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데, 주변에선 다들 부업을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부업 열풍에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부업을 권하고 있다. 한 무인 세탁소 업체는 “직장인도 OK! 매장 상주 없이 월급 통장 만들 수 있는 24시간 무인 세탁소”라고 홍보하고 있다. 부업 중개 플랫폼은 "당신의 경력이 제2의 월급이 되는 곳"이라는 문구를 홈페이지 전면에 내세운다. 한 식당 프랜차이즈 업체 대표는 “가맹 상담의 절반 정도가 현직 직장인”이라며 “직장을 다니며 가게를 굴릴 수 있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주52시간제, 플랫폼 경제가 부업시장 키웠다

부업 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은 이전부터 있었다. 이전과 달리 저소득층뿐 아니라 대기업 직원들까지 부업 전선에 뛰어든 데 전문가들은 주52시간제 정착과 플랫폼 경제의 등장을 꼽는다. 주52시간제가 정착돼 퇴근 후 자기 시간이 생기고, 한곳에 몸담을 필요 없이 여러 플랫폼을 통해 일한 만큼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플랫폼 경제가 자리 잡으면서 부업시장이 커졌다는 것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와 달리 일과 휴식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며 "주52시간제, 플랫폼 경제에 익숙한 MZ 세대는 과거 휴식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에 아이디어를 얻고 보상을 얻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본업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부업을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주류업체에 근무했던 김모(36)씨는 최근 회사를 퇴사하고 골프 스튜디오를 열었다. 어린 시절 프로골퍼를 꿈꾸다 넉넉하지 않았던 집안 형편에 대기업 취업을 택했던 그는 틈틈이 프리랜서 중개 플랫폼인 '숨고'를 통해 골프 레슨을 하다 회원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자, 퇴사 후 창업을 택한 것이다.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유지한 채 골프라는 오랜 꿈이 현실적인지 부업을 통해 확인했고, 결국 결심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현재 식당 30여 개를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사 대표인 채모(40)씨는 "글로벌 대기업을 다니면서 사업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업으로 프랜차이즈 식당을 열었다가 자신이 생겨 창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日 기업 절반 부업 허용...美 840만명 2개 이상 직업 가져

부업 전성시대는 한국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지난달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부업에 나서는 정규직 직원들이 늘고 있다"며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20~59세 정규직 직장인 800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인 400명이 부업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것이다. 일본 경제 단체 게이단렌 조사에 따르면 일본 전체 기업의 50% 정도가 직원의 부업을 허용하고 있다. 20% 정도의 기업은 앞으로 부업을 허용할 계획을 밝혔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10월 기준 840만명이 한 개 이상의 직업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500만명은 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부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밀레니얼세대(1981~1999년생)의 절반이 부업을 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를 보도한 미국 경제매체 CNBC는 "밀레니얼 세대 등 젊은 세대들은 하나 이상의 직업을 갖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매체들은 '부수입 얻을 수 있는 베스트 30 부업’ 등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른바 '쏠쏠한 부업' 목록에는 흔히 떠올리는 배달, 블로그 운영 등에 더해 온라인 설문조사, 온라인 상담, 강의 등이 포함됐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