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들고 협상할 용기"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4. 3. 1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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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깃발, 곧 백기가 전쟁에서 '항복'을 상징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동서양이 같았다.

 특히 서양의 경우 백기가 쓰이기 전에는 전투 도중 방패를 머리 위로 올리는 것이 항복의 표시였다고 한다.

인류 전쟁사와 함께한 백기가 국제사회에서 항복의 표시로 공식 인정을 받은 것은 100여 년 전인 1907년의 일이다.

서로 언어가 다른 나라들끼리 전쟁을 하는 경우 백기를 드는 것이 곧 투항의 의사표시라는 합의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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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깃발, 곧 백기가 전쟁에서 ‘항복’을 상징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동서양이 같았다. 동양은 서기 25년부터 250년까지 존속한 중국 후한(後漢) 왕조 시절의 관습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서양에서도 로마제국이 한창 융성하던 서기 100년 무렵부터 백기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서양의 경우 백기가 쓰이기 전에는 전투 도중 방패를 머리 위로 올리는 것이 항복의 표시였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백기일까. 학자들에 따르면 염색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에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하얀 천이었던 영향이 크다. 과거 전쟁터에선 적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 형형색색의 깃발을 동원하곤 했다. 이런 깃발들이 널려 있는 전투 현장에선 가장 눈에 잘 띄는 것이 바로 백기였기 때문이란 설명도 있다.
백기. 게티이미지 제공
1636년 병자호란 발발 당시 조선은 군사적으로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인조 임금은 신하들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으나 곧 청나라 군대가 산성을 포위하며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차단된 가운데 원래 얼마 되지 않았던 비축 식량마저 다 떨어지며 산성 내부 사람들의 고통이 극에 달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던 인조는 이듬해인 1637년 음력 1월30일 직접 청나라 태종 앞으로 나아가 항복했다. 우리가 잘 아는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이다. 당시 인조가 삼전도까지 이동하며 탄 말은 백마였다. 전쟁에서 진 패장 신분인 만큼 항복을 의미하는 흰색 말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청나라의 요구사항이었다. 오늘날 서울 잠실 석촌호수 부근에 있는 삼전도비가 그날의 치욕을 생생히 증언한다.
인류 전쟁사와 함께한 백기가 국제사회에서 항복의 표시로 공식 인정을 받은 것은 100여 년 전인 1907년의 일이다. 그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국제평화회의가 열려 각국 대표들이 국제법의 일종인 전쟁법에 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국가 간에 전쟁을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낼지 절차를 규정하는 가운데 항복 방식도 거기에 포함됐다. 서로 언어가 다른 나라들끼리 전쟁을 하는 경우 백기를 드는 것이 곧 투항의 의사표시라는 합의가 이뤄졌다. 항복한 병사들, 곧 포로의 대우에 관한 협약도 뒤따라 만들어졌다. 다만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이런 규정들이 얼마나 잘 지켜졌는지는 의문이다. 일부 지휘관은 휘하 장병들이 적에게 투항하는 것을 막으려고 내의를 포함해 흰색 옷을 아예 입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은 2023년 5월 젤렌스키 대통령이 바티칸시티를 찾아 교황과 악수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9일 스위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 “백기를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의 전쟁을 중단하고 대화를 통해 평화의 길을 모색하라는 취지다. 문제는 항복을 연상시키는 백기라는 표현을 쓴 점이다. 우크라이나가 발끈한 것은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반박의 목소리가 나왔다. 평화가 바람직하긴 하지만 어떤 평화이냐가 중요하다. 러시아에 무릎 꿇고 노예처럼 굴종하면 전쟁이야 없겠으나 그것을 제대로 된 평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무런 자유도 없고 이웃 눈치만 봐야 한다면 ‘가짜 평화’가 아닐까. 어떤 평화를 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이 결정할 사안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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