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말 듣지 말라" 손정의, 손태장이 나눠가진 한마디 [정혜진 기자의 세상 한권]

정혜진 기자 2024. 3.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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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CEO 내려놓고 떠난
손정의 동생의 교육실험 여정
손태장 미슬토 회장 인터뷰
일본 상장사 '겅호' CEO 내려놓고
교육 시스템 바꾸는 여정 시작해
깨달음 모아 '모험의 서' 출간
손태장 미슬토 회장이 7일 서울 SBVA 사옥에서 한국에서의 사업 계획과 최근 출간한 저서 ‘모험의 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서울경제]

국내에는 손정의(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막냇동생으로 더 잘 알려진 손태장 회장. 도쿄대 경제학부 졸업과 동시에 일본 야후 법인 설립에 참여하고 1998년 게임사 겅호온라인엔터테인먼트를 창업한 후 굴지의 상장사로 키워냈다. 일본에서는 손정의 회장 만큼이나 ‘성공한 기업인’의 고유명사가 됐다. 손태장 회장은 지난해 말 자신이 공동창업한 회사 디에지오브가 국내 3대 벤처캐피털(VC)인 SBVA(옛 소프트뱅크벤처스 아시아)를 인수하면서 국내 시장과의 접점을 확보했다. 스타트업 투자 회사인 미슬토 회장이면서 디에지오브 창업자 등 다양한 직함이 있지만 이번에는 교육에 대한 생각과 비전을 담은 책 ‘모험의 서’를 출간한 저자로 인터뷰에 응했다. ‘모험의 서’는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돼 10만 부 이상의 판매 실적을 올렸고 지난달 말 국내에 출간됐다.

‘모험의 서’는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파문을 던졌다. 책에서 그는 기존에 나이를 구분해 각기 다른 교육 커리큘럼을 짜는 ‘생애 주기 교육’을 벗어나고 기본과 응용의 틀을 탈피하는 한편 시험과 평가를 없앨 것을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화된 교육 공간을 ‘평생 운동장(Lifelong playground)’으로 제시했다. 10만 이상의 독자들의 반응은 제각각 엇갈렸다. ‘너무 이상적이고 실현가능성이 적다’ ‘스스로는 도쿄대를 나왔는데 기존 교육을 배격한다’ ‘손태장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등 회의론이 많았다. 그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도전적인 의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를 통해 생각하기를 바랐다”며 “편향돼 있다는 의견도 많지만 일단 논쟁적인 주제를 던지고 토론을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고 전했다.

손 회장은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하며 수재 소리를 들었지만 기존 규율 중심의 학교 체제에 회의감을 느꼈다. 하지만 기업인으로 살아오면서 교육에 대한 의문점과 열망은 한동안 접어둔 채 살았다. 그러다 마흔이 된 어느 날 가슴에 큰 통증이 왔다. 통증의 이유를 찾아가던 그는 “월요일부터 일요일, 아침부터 자정까지 모든 일정표가 전략 미팅, 팀 미팅, 저녁 미팅으로 채워져 있었다”며 “맛있는 것을 먹어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아무것도 즐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고 술회했다.

은퇴까지 길면 20년. 지루한 일에 더 이상 시간을 쏟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그때 스스로 창업한 회사 겅호에서 내려올 결심을 했다. 내려오는 데는 5년 가까이가 걸렸다. 이후 손 회장은 2016년 아이들을 위한 무료 교육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비비타(VIVITA)’를 출범시켜 일본·미국 등 전 세계 7개국에서 운영하고 있다.

비비타에는 그의 신념이 그대로 녹아 있다. 학교교육은 배움을 수동적으로 만들면서 재미를 빼앗았고 평가와 시험이 다른 이들과 다르게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또래 압력’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비타에는 선생님도, 커리큘럼도, 평가도 없다. 비비타에서 손 회장은 아이들 사이에서 그저 ‘타이조 상(타이조 아저씨)’일 뿐이다. 아이들이 롤러코스터를 디자인할 때는 안전요원으로 참여하거나 머리를 맞대 브레인스토밍을 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지내며 아이들은 틀을 깨고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배운다. 한 지역 축제 때는 롤러코스터를 직접 만들겠다고 아이들이 제안해 손 회장이 난색을 표하자 직접 롤러코스터 제작 디자인 회사에 연락을 하고 설득해 “왜 한계를 짓느냐”고 반문해 그의 말문이 막힌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비비타는 기업가 정신을 키우는 공간이 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한 소녀 캐롤린 카기는 한 때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였다. 비비타에 와서 슬라임이라는 관심분야를 알게 된 뒤 몰두해 결국 스템(과학, 기술, 공학 및 수학·STEM) 교육용 키트를 만드는 기업가로 변신했다. 그가 비비타를 통해 변화를 주고자하는 곳은 한국이다. 그는 “한국에서도 협업할 파트너를 찾아냈다”며 “이르면 올해 중에 팝업 방식으로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때는 지루한 회의로만 가득차 있던 그의 삶도 변화했다. 그는 “이제 매일매일 눈을 뜨는 게 행복하고 매순간 즐겁다”며 “단 한 가지만 조언해줄 수 있다면 ‘당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비비타를 통해 변화를 주고자 하는 또다른 곳은 일본 만큼이나 입시 경쟁이 치열한 한국이다. 그는 “한국에서도 협업할 파트너를 찾아냈다”며 “이르면 올해 중에 팝업 방식으로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는 방과후 과정을 확대해 전일제로 운영하는 비비타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손태장 미슬토 회장이 7일 서울 SBVA 사옥에서 한국에서의 사업 계획과 최근 출간한 저서 ‘모험의 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우리나라에서의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한 해결책을 두고 “부모님의 말을 듣지 말라”고 조언했다. 부모는 자식이 행복한 길을 따라줄 의향이 있는데 아이들이 미리 자기 검열을 하고 마음속 목소리를 지우고 순응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릴 적부터 ‘선생님의 말을 전부 믿지는 말라’고 강조한 아버지 손삼현 씨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는 “우리 사형제는 모두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라’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지 말아라’는 가르침을 체화했다”며 “둘째 형 마사(손정의)는 큰 손실이 나도 다른 사람 말을 신경쓰지 않는다. 가끔 다른 사람들이 형 괜찮냐고 묻지만 그는 정말 잘 지낸다”고 말했다.

AI 붐이 확산되기 이전부터 그는 대체되지 않을 가치에 대해 주목했다. 손 회장은 “AI가 모든 걸 대체해도 살아남는 건 사람들이 진짜 좋아하는 일”이라며 “축구를 하는 선수가 사람이기에 감동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또 다른 목표는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를 만드는 것이다. 2013년 미슬토를 설립해 글로벌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10여 년간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스타트업만 270여 개, 투자 규모는 1조 원에 이른다. 손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보면 미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아시아인이고 아시아계 자본도 많다”면서 “문제는 아시아에 저력이 있는데 아시아 국가들은 저마다 사일로(사각지대)가 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그의 계획은 각 나라의 사일로를 끊고 모두 어울릴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전 세계 투자자 100여 명을 확보해 이미 커뮤니티를 만들었다”며 “이를 바탕으로 2년 안에 젊은 창업가와 투자자들을 매칭해 글로벌 공략을 할 수 있는 ‘리그’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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