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행세, 서류 변조까지…ELS 실적만 앞세운 은행들

CBS노컷뉴스 박성완 기자,CBS노컷뉴스 최인수 기자 2024. 3. 12.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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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홍콩ELS 판매 은행·증권사 검사 결과
"다양한 불완전판매 사례 확인"
"판매정책·소비자보호 전반적 부실"
은행서만 15조 원 넘게 판매…대다수는 '개인'
'은행 판매 규제론'에…제도개선 논의 본격화
피해 보상 촉구하는 홍콩H지수 연계 ELS 투자자들. 연합뉴스


"또다시 이러한 대규모 투자자 손실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특히, 일부 ELS 판매사들은 고객 손실위험이 커진 시기에도 판매한도 관리를 하지 않거나 성과평가지표를 통해 판매를 독려함으로써 불완전판매를 조장한 측면이 컸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1일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현장검사 결과를 발표하며 한 발언이다. 실적 쌓기에 매몰돼 소비자 보호는 뒷전으로 미뤄뒀던 금융사들의 불완전판매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성과 매몰돼 고객 보호는 뒷전…황당한 불완전판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린 홍콩 H지수 연계 ELS 대규모 손실 관련 분쟁조정기준안 발표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금감원에 따르면, 한 은행 직원은 투자자의 투자성향 분석 결과가 ELS 상품 가입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나오자 "'이 상품에 가입하고 싶어요'라고 말하세요"라고 유도했다. 적합성 원칙 위반이다.

방문이 어려운 고객을 대신해 은행 직원이 대신 가입신청서까지 모두 작성해 서명하고, 판매과정을 녹취할 때는 다른 직원이 대신 고객 역할을 하면서 허위로 진행한 사실도 금감원은 확인했다.

한 은행에서는 87세 고객이 '들리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겠다'고 답변하자, "'이해했다'고 답하세요"라고 거듭 요구한 직원도 있었다. 중도해지수수료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해지하시면 안된다는 내용"이라고 왜곡된 설명도 했다.

재가입을 권유할 때는 유효기간이 지난 가족관계증명서 발급일자를 변조하는 수법까지 썼다. 고객 의사는 확인하지도 않았다.

이런 배경에는 은행들이 전사적으로 판매를 독려하거나, 실적 경쟁을 유도하고 ELS판매를 과도하게 성과이익으로 평가해 고위험 상품 판매를 유도했기 때문이라고 금감원은 봤다.

한 은행은 20년 가까이 판매된 ELS의 손실 위험 분석을 그대로 제시하지 않고, 2007~2008년 금융위기 시기를 제외한 과거 10년 치만 계산해 손실률이 0%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영업점에는 "과거 10년 동안 원금 손실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검증된 상품입니다"라고 고객들에게 권유하라는 멘트를 담은 안내자료를 보냈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이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밝힌 사례다.

원금 보장 상품 중심 은행서 '고위험 상품' 판매 적절한가

은행 창구서 사라진 ELS. 연합뉴스

홍콩 H지수 연계 ELS 상품은 주로 은행을 통해 개인 고객들에게 많이 팔렸다. 작년 말 기준 판매 잔액은 총 18조 8천억 원으로, 은행 판매 잔액만 15조4천억원이며 이 가운데 14조 4천억 원어치가 개인 고객에게 판매됐다.

은행별(지난해 8월 기준)로는 KB국민은행 8조 원, 신한은행 2조 4천억 원, NH농협은행 2조 2천억 원, 하나은행 2조 원, SC제일은행 1조 2천억 원이다.

이 가운데 5대 시중은행보다 총자산 규모가 작은 SC제일은행(95조 7천억 원)은 홍콩 ELS 판매잔액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에 대해 SC제일은행 관계자는 "자산관리가 주력이다보니 투자상품으로 판매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5대 시중은행 가운데 우리은행은 약 400억 원으로 가장 적은 수준이었다.

2021년 2월 12271.60까지 올랐던 홍콩H지수가 반 토막도 안 되는 지난달 말 수준(5678)을 유지할 경우 올해 하반기까지 전체 예상 손실액은 5조 8천억 원이다.


불완전판매와 맞물린 대규모 손실을 고객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되자 특히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 행태를 보다 강도 높게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시 커지고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통화에서 "은행 만큼은 ELS 같은 만기 있는 고위험 상품 판매 자체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2019년 은행 'DLF(파생결합펀드) 사태' 당시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안'을 11월 내놨다. 여기엔 원금 손실률이 20%를 초과할 수 있는 사모펀드와 ELS 신탁 상품 등 고난도 상품의 은행 판매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당국은 "은행은 원금 보장에 대한 국민 신뢰가 높은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고위험 상품 판매는 일정부분 제한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은행권이 투자자 보호 강화 등을 전제로 기존에 이미 판매한 대표적인 지수에 한해 허용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홍콩H지수 등 일부 지수 연동형 공모 ELS에 한해 판매가 허용되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었다.

금융감독원 이세훈 수석부원장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홍콩 H지수 연계 ELS 대규모 손실 관련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감원은 이날 "금융위와 함께 판매사 검사 결과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ELS 등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 제도를 종합적으로 진단해 제도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며 "재발 방지에 초점을 두고 해외 사례 연구,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금융 소비자 보호와 금융 산업 발전을 균형있게 고려한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영업점 판매 창구에서의 판매 행태와 소비자 행동 패턴을 입체적으로 고려해 보다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는 판매 제도를 모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금감원의 검사결과와 분쟁조정기준안에 대해 은행권에서는 "검토 단계"라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이 많다"며 "자율 배상안을 도출한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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