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서평연대 마흔한 번째[출판숏평]

기자 2024. 3. 1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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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과 안락(뮤코 지음 / buvif)

평온과 안락



동선동 작은서점 부비프의 책방지기 뮤쿄가 책방과 일상의 이야기를 모아 쓴 에세이.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책방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1부에서, 월요일과 화요일에 책방 문을 닫고 본 것과 들은 것에 대한 단상은 2부에서 살펴볼 수 있다. 5년여가 넘는 시간 동안 한 곳에서 책방을 지키며 차곡차곡 쌓아온 이야기들이 제목처럼 저자를 ‘평온과 안락’으로 이끌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책은 읽는 것이지만 아이에겐 “읽으지는 않고 그림만 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인생 첫 서점’으로 부비프를 찾은 아이 손님을 통해 배운다. “그림을 보면서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마음껏 지어내다” 보면 어느 날은 “거기 적힌 글자를 정말 읽게도 될 테”다. 안드레스 로페스의 그림책 ‘책이란’ 속 문장처럼 책이란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는 옷”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는 강” “힘들고 괴로울 때 도망칠 수 있는 쉼터”, 그리고 “한 번도 떠올려 본 적 없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니 말이다.

따스한 봄날, 판판하게 돗자리를 펴고 칠링한 샴페인을 가볍게 기울이며 읽기 좋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슬몃슬몃 새어 나오는 미소는 덤. 이내 조용하고 평안하며,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질 것이다. (김미향 / 출판평론가, 에세이스트)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마이아 에켈뢰브 지음 / 이유진 옮김 / 교유서가)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내가 아는 가장 재미있는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할말이 없어도 잠시 쉬는 시간이 생기면 나는 얼른 종이와 펜을 잡는다.”

청소노동자로서 다섯 아이를 홀로 키운 마이아 에켈뢰브. 힘겨운 하루를 보내는 그에게 위안을 준 것은 독서와 글쓰기였다. 매일 일기를 쓰며 자신의 삶이 좀 더 편안해질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라는 정치소설을 공모전에 응모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끊임없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며 함께 분노한다.

하지만 1960년대에 쓴 일기가 보여주는 모습들은 지금 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임금, 열악한 노동환경, 부당해고처럼 부조리한 사회의 면면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글은 가장 정치적인 것이 돼 읽는 이들을 성찰하게 만든다.

“삶을 살아갈 힘이 있어야 한다면 자기를 위해 길을 밝혀줄 불빛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각자를 밝혀줄 불빛은 무엇일까? (배희주 / 출판마케터, 9N비평연대)

배희주



■사이다 쌤의 비밀 상담소(김선호 지음 / 신병근 그림 / 노르웨이숲)

사이다 쌤의 비밀 상담소



초등학생, 그것도 사춘기가 찾아오는 5·6학년이 될 무렵 당신의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는가?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처음 만나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적응하느라 한창 바쁜 이맘때면 아이들의 고민은 더더욱 많아진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질문들을 쏙쏙 골라 답해 준 ‘사이다 쌤의 비밀 상담소’는 제목과 달리 가볍고 시원하게 톡 쏘는 사이다와는 다르다. 어리다고 해서 아이들의 고민을 가볍게 보지 않고 마음 깊이 공감해 준 뒤 건네는 구체적인 조언은 진하고 따뜻한 한잔의 코코아와 같다. 16년간 초등 5·6학년 담임 선생님을 주로 맡아온 ‘사이다 쌤’의 노련함과 아이들을 향한 깊은 애정이 진지하게 사연에 답하는 한마디 한마디에서 우러난다.

고민이 깊은 아이들에게 이 책을 건네기에 앞서, 어른들이 먼저 읽고 공부해야 할 책이다. 아이들이 맘속 깊이 숨겨둔 고민이 무엇인지 잘 들어주고, 눈높이에 맞는 좋은 조언을 던져 줄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황예린 / 문화비평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황예린



■나의 두 사람(김달님 지음 / 어떤책)

나의 두 사람



이 책은 “엄마 아빠”라는 말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말로 유년을 꽉 채워 보낸 한 사람의 이야기다. 태어난 지 사흘째 되던 날, 작가 김달님은 너무 어렸던 부모로부터 만 49세 김홍무 할아버지와 만 48세 송희섭 할머니의 집으로 보내진다. 그렇게 그들 곁에서 작가는 두 사람이 숨군 두 배의 진심으로부터 한 사람의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하지만 작가는 친구들이 울음을 터뜨릴 때 “엄마” 하고 운을 떼는 존재가 자신에겐 없다는 사실을 날이 갈수록 선명히 체득해 갔다. 소풍 날에는 친구들의 도시락에 든 소시지볶음 앞에서 좋아하던 가죽나물장아찌를 꺼낼 수 없었고, 청소년기에는 때마다 몸에 맞는 속옷을 사 줄 이가 없었으며, 무엇보다 나날이 빠르게 줄고 있는 듯한 늙은 부모와의 시간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작가는 결국 이를 담담히 마주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처음 교과서를 받던 날 할아버지가 달력으로 만들어 준 책꺼풀, 어느 겨울 아침 추우니까 쥐고 가라며 할머니가 쥐여 준 방바닥으로 데운 돌멩이 같은 사소한 진심들이 자신을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떠나지 않을 사람들이 내게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게 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저를 가두던 ‘조손가정’이라는 이름에게서, 엄마가 없던 자신에게서 ‘나도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믿음마저 키워 냈다고 말이다.

제 삶을 둘러 온 울타리가 누구의 시간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낱낱이 일고해 본 사람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우리가 잊고 지내던 삶의 밑면까지 들춘다. 그리하여 책을 덮을 즈음엔 이런 질문을 남긴다. “나에게는 이런 ‘나의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는요?” 책의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이라면 더 이상 유보할 수 없게 다가오는 질문일 테다. (김상화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김상화



■드래곤볼(토리야마 아키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

드래곤볼



여섯 살 때 비디오가게에서 처음 빌린 테이프는 ‘웨딩피치’였고, 두 번째로 빌린 테이프가 ‘드래곤볼’이었다. 그땐 ‘드래곤볼’이 뭔지도 모르고, 손오공이 프리저에게 에네르기파를 쏘는 장면에 홀려, 그대로 이 작품은 내 인생 첫 애니가 됐다. 물론 내 인생 첫 만화책도 ‘드래곤볼’이다.

‘드래곤볼’ 전에도 부모님은 내게 ‘빨간 머리 앤’이나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같은 아동용 애니를 보여주셨고, 우리 집에는 한국과 외국의 다양한 동화책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를 가장 매료시킨 건 ‘앤’도 ‘하이디’도 아닌 ‘손오공’이었다. 내게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이야기’는 ‘드래곤볼’과 함께 시작됐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인터넷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하나의 논쟁이 있다. 인생 만화 결승전. ‘드래곤볼 vs 슬램덩크’. 많은 사람들이 인생 만화를 꼽으면 결국 수렴되는 두 작품이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라고 한다. (물론 여기에 해당하는 사례는 20세기에 태어난 아이들까지일 수도 있다) 여섯 살 때 난 이미 주저없이 ‘드래곤볼’의 손을 들어주는 ‘드래곤볼형 인간’이 돼 버린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강한 악당이 나온다. 손오공은 수련하고, 성장해서 악당을 물리치고, 지구에서 가장 강한 자가 된다. 우주에서 가장 강한 악당이 나온다. 손오공은 수련하고, 성장해서 악당을 물리치고, 우주에서 가장 강한 자가 된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에 관한 내 감성의 상당 부분을 형성한 건 ‘드래곤볼’이었고, 이 단순한 파워게임이 주는 통쾌함과 엉뚱함을 난 아직도 좋아한다. 토리야마 아키라는 지구를 떠났지만, 지구인들은 영원히 그의 작품에 많은 것을 빚질 것이다.

안녕히 가세요, 토리야마 센세.

오공이 있어 즐거웠습니다. (맹준혁 / 출판편집자)

맹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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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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