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쌤이 보낸 4년간의 행복한 기록, <우리, 학교에서 만납시다>

정지윤 기자 2024. 3. 1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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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살랑이고, 햇살은 따습고…… 참 좋구나.” “짱구쌤이 옆에 있으니 더 좋아요.”

제자들이 ‘짱구쌤’이라 부르는 이장규 선생님은 교사 생활 28년째 되던 2020년, 전남 구례 용방초의 공모 교장이 되었다. 이 책은 운동장에서 지리산 노고단이 보이고, 울타리를 따라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학교에서 짱구쌤이 보낸 4년간의 행복한 기록이다. 교문에서 전교생이 다 등교할 때까지 아침맞이를 하고, 교장실에서 예약한 아이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아이들과 실내화를 빨거나 전래놀이를 하고, 학교 곳곳에 아이들의 아지트를 만드느라 드릴을 들고 활보하는 짱구쌤. 세상에 없던 교장의 유쾌하고 자유로운 일상과 따뜻한 가슴을 지닌 아이들의 빛나는 순간들이 펼쳐진다.

짱구쌤의 세상에 없던 학교 이야기. <우리, 학교에서 만납시다 > 펴낸곳 르네상스

▶책 속에서

‘짱구쌤’이라는 별명에는 아이들과 거리를 가깝게 하는 마법의 힘이 있다. 교장실에 ‘누구라도 교장실’이라는 별칭을 붙인 것도 그런 마법의 힘을 믿어서다. 2교시가 끝나면 ‘누구라도 교장실’에서 예약한 아이들과 우아하게 차를 마신다. 남자친구, 케이팝, 수업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그냥 차를 대접하며 웃어 주면 된다. “짱구쌤, 오늘은 무슨 차예요? 김칫국물 맛이 나네요.” “보이차야.” “그럼 남자만 먹어요?”

_〈펴내며〉 중에서

강율이가 그네 의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쌍둥이 녀석들은 라탄 의자에서, 4학년 개구쟁이들은 확장된 정자에서, ‘폰’을 사랑하는 두 녀석은 다락 정자에서, 2학년들은 트리하우스에서, 고학년 여학생들은 해먹에서, 댄스를 사랑하는 아이들은 데크 쉼터에서, 승근이와 원준이는 새로 생긴 연못에서 자주 논다. 자기만의 아지트다.

_〈곳곳에 아지트가 있어야 아이들이 숨을 쉰다〉 중에서

장마가 길어지니 ‘짱구쌤 수업’도 만만치 않다. 아이들도 나도 운동장 놀이 수업이 좋은데 맨날 비가 오니 고민이 많다. 책 읽어 주는 것도, 절기와 행사에 맞춰서 하는 계기 수업도 나름 좋지만 이미 놀이 수업에 맛을 들인 녀석들의 반응은 온도 차가 심하다. 뭘 해도 “언제 운동장 나가나요?”로 토를 단다. 그래서 이번 주 1학년 수업은 아예 운동장에서 비를 맞는 수업을 작정하고 시작한다. 그림책을 한 권 읽어 주니 예상했던 대로 “오늘도 운동장 안 나가요?”를 합창한다. “자, 양말을 벗고 우산 쓰고 맨발로 운동장으로 모이세요!”

_〈맨발로 운동장을 걸어 본 적 있나요〉 중에서

우리 학교 자전거 주차장에는 80여 대의 자전거가 언제든 타고 나갈 수 있게 준비되어 있다. 아이들은 누구나 나만의 자전거를 자유롭게 탈 수 있다. 후문을 나서면 바로 서시천 둑길을 따라가는 자전거도로와 만나 지리산을 바라보며 20km 이상을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 세상에서 자전거를 가장 안전하고 재미있게 탈 수 있는 학교이다.

_〈웬만해선 막을 수 없다〉 중에서

우리 학교에는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 미국 국기가 태극기와 함께 사이좋게 걸려 있다. 학생들의 부모 나라 국기들이다. 앞의 그림은 작년에 그려서 4개국 국기가 보이는데, 올해 미국인 아버지를 둔 남매가 전학 와서 하나를 추가했다. 해당 가정의 동의를 얻어 국기를 게양한 이유는 분명하다. 학교에 들어서면 누구나 저마다의 빛깔로 빛나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_〈학교,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곳〉 중에서

점심 후 커피를 들고 소란스러운 녀석들을 피해 명상 숲으로 갔다. 흔들 그네는 1학년 희진이가 이미 한 자리를 차지했다. 적당한 속도로 그네를 구르는 녀석의 옆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속도를 맞춰 흔들거렸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희진아, 바람은 살랑이고 햇살은 따습고 꽃도 예쁜데 새들까지 지저귀니 참 좋구나.” 혼잣말처럼 수작을 걸었다. 조금 있더니, 희진이가 말했다. “짱구쌤이 옆에 있으니 더 좋아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_〈짱구쌤은 교장쌤을 몇 번 해 봤기에 그렇게 잘해요?〉 중에서

가을에 시작한 교장 자격연수 기간에 하필 자전거 마라톤 하는 날이 끼어 있었다. 2학년들과 한 학기 동안 연습했던 자전거를 함께 못 타게 되니 아이들도 나도 여간 서운한 게 아니었다. “짱구쌤은 그날 왜 못 와요? 그럼 우린 누구하고 타요?” 안 되겠다 싶어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해 오전 연수를 빠지기로 했다. 못 올 것 같다던 짱구쌤의 깜짝 출현을 가장 반긴 것은 역시 아이들이었다. 가을바람은 살랑거리고,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고, 서시천은 반짝거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드높았다. 마치 생의 어떤 절정 같은 날이었다.

_〈최고의 날〉 중에서

2005년 2월 졸업식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교실에 모인 아이들에게 담임인 나는 말했다. “두 가지를 약속합시다. 첫째는 20년 후 2024년 1월 1일 1시에 이곳 영암초 운동장에서 만나는 겁니다. 둘째는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살아 있으면 좋은 날 올 테지요.” 그리고 20년이 쏜살같이 흘렀다. (……) 저마다의 20년을 어찌 늙은 스승이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다만, 누구나 최선의 20년이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그것이 고맙고, 그것이 기적임을 느낀 하루였다. 오늘이 새로운 20년을 견디며 나아가게 할 힘이 되어 줄 것이다. (……) 난 행복한 선생이다.

_〈20년 전 약속〉 중에서

‘20년 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1월1일 전남 영암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이장규 용방초등학교 교장과 제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장규 제공

▶저자 소개

제자들은 다 ‘짱구쌤’이라 부른다. 1992년 임용되어 28년간 매달 학급신문 <어깨동무>를 펴내고, 그것을 모아 매년 학급문집 <어깨동무>로 엮으며 교실에서 지냈다. 2020년 지리산 자락 작은 학교 용방초에 공모 교장으로 부임하여 4년을 보냈고, 이제 다시 교실로 돌아간다. 따뜻한 가슴을 지닌 아이들과 함께 가르치고 배우며 날마다 조금씩 그럴싸한 어른이 되어 간다. 학교가 일터라서 다행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손편지를 쓰고 답장이 오면 신이 난다. <세상의 모든 음악〉애청자이자 타이거즈의 40년 ‘찐팬’이다.

우리, 학교에서 만납시다

▶출판사 서평

20년 전 약속 지킨 선생님과 제자들

2024년 1월, ‘20년 전 약속… 다들 기억할까?’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졸업한 지 20년 만에 모교에서 다시 만난 담임교사와 제자들의 동화 같은 순간을 담은 영상이다. “가슴 뭉클하고 아름다운 순간” “따뜻하고 감동적” “낭만 그 자체” 등 영상을 보고 감동한 사람들의 댓글이 쏟아졌고, 언론사들의 취재도 이어졌다. 한 달 만에 조회 수 50만이 넘은 화제의 영상 속 담임교사, 이장규 선생님의 책이 출간되었다. 유쾌하고 자유로운 ‘짱구쌤’과 가슴 따뜻한 아이들이 빚어낸 빛나는 순간들을 만나 보자.

어쩌다 교장이 되어

이장규 선생님을 아이들은 대부분 ‘짱구쌤’이라 부른다. 이름과 볼록한 뒤통수에서 떠올린 별명이다. 짱구쌤은 이 별명에 아이들과 거리를 가깝게 하는 마법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1992년 임용된 뒤 한 해도 빠트리지 않고 학급문집 《어깨동무》를 펴내며 교실에서 지내다가 2020년 전남 구례 용방초에 공모 교장으로 부임한 짱구쌤. 어쩌다 교장이 되었다며 초보 교장으로서의 부담감도 느꼈지만, 운동장에서 지리산 노고단이 보이고 울타리를 따라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학교에서 “전생에 무슨 복을 지어서 이런 호사를 누리나”라고 할 만큼 행복한 4년을 보냈다. 이 책은 그 4년간의 기록이다.

세상에 없던 교장, 짱구쌤

짱구쌤의 하루는 분주하다. 아침마다 교문에서 등교하는 전교생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아침맞이를 하고, 교장실에서 예약한 아이들과 차를 마신다. 일주일에 네 시간은 ‘짱구쌤 수업’을 하는데, 전래놀이, 실내화 빨기, 서시천 산책하기, 그림책 읽어 주기, 비 오는 날 운동장 맨발로 걷기까지, 수업이라기보다는 아이들과 즐겁게 놀면서 배우는 시간이다. 틈틈이 ‘임가이버’ 주무관님을 도와 오래된 정자 리모델링을 하고, 운동장에 트리하우스를 짓고, 노고단을 보며 쉴 수 있는 데크 쉼터를 만들고, 학교에 필요한 것들을 고치거나 만드느라 드릴을 들고 학교 곳곳을 활보한다. 퇴근 후에는 학교 가장 구석에 있는 관사에서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고, 손편지를 쓰다가 손전등을 들고 교정을 둘러본다. 이런 교장 선생님이라니! 세상에 없던 교장이다.

짱구쌤이 만난 빛나는 순간들

아이들은 짱구쌤을 만나면 깜짝 놀랄 말, 재미있는 말을 자주 건넨다.

“짱구쌤, 오늘은 무슨 차예요? 김칫국물 맛이 나네요.”

“보이차야.”

“그럼 남자만 먹어요?”

“짱구쌤은 교장쌤을 몇 번 해 봤기에 그렇게 잘해요?”

“하하,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실내화도 잘 빨고 드릴도 잘하잖아요.”

“짱구쌤, 세상이 참 따뜻해진 것 같아요.”

“그래. 살다 보면 따뜻한 일 참 많단다.”

“그러니까 모두 반팔을 입고 다니잖아요.”

“바람은 살랑이고, 햇살은 따습고 꽃도 예쁜데 새들까지 지저귀니 참 좋구나.”

“짱구쌤이 옆에 있으니 더 좋아요.”

아이들을 돋보이게 하는, 좀 만만한 선생이 되고 싶다는 짱구쌤. 과연 짱구쌤이라는 별명에는 마법의 힘이 있는 것 같다.

세상에 없던 학교로 가는 길

짱구쌤이 바라는 학교는 세상에 나가기 전 주인공을 경험하는 곳,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즐거운 곳, 모든 것에 앞서 공평한 곳, 모두가 더 나은 사람으로 함께 성장하는 곳이다. 그런 바람을 이루기 위해 짱구쌤은 국기 게양대에 학생들의 부모 나라 국기들을 모두 걸고, 매일 아침맞이를 하며, 아이들과 실내화를 빨고, 학교 곳곳에 아이들의 아지트를 만든다. 그리고, 용방초는 교육부 ‘학교 단위 공간혁신 사업’ 공모에 지원하여 선정되었고, 이제 2년 후에는 새로운 학교 건물이 완성된다. 학교 건축에 대한 바람을 남김없이 쏟아 낸 공모 도전기와 모든 용방 가족이 3년간 머리를 맞대고 만든 학교 설계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세상에 없던 학교는 그렇게 모두의 바람을 담아 차근차근 만들어지고 있다.

365일 행복한 배움터

“어린이는 내일의 희망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지금, 여기 이미 존재합니다.” 짱구쌤 명함 뒷면에 적혀 있는, 폴란드 출신의 교육학자 야누슈 코르착의 말이다. 따뜻한 가슴을 지닌 아이들과 함께 가르치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어 행운이라고, 이만큼 그럴싸한 어른이 된 것도 학교가 일터였기에 가능했다고 말하는 짱구쌤. 그는 이제 공모 교장 임기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간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크게 없다. 늘 그랬듯 ‘짱구쌤’이라 불러주는 아이들과 함께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테니까. 그러다 어느 날에는 또 설레는 마음으로 ‘20년 전 약속’을 지키러 나서기도 하면서……. 짱구쌤은 아이들과 함께여서, 아이들은 짱구쌤과 함께여서 내내 행복할 것이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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