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유리병’... 아기 줄어도 엄마 마음 사로잡은 이유식 비결

최연진 기자 2024. 3. 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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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으로 영유아식 소비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면서 ‘영유아식(영아 및 유아 식품)’ 시장이 외면받는 분위기였지만, 군소 업체들이 ‘프리미엄’ ‘유기농’ ‘친환경’ ‘수제’ 등 키워드를 앞세워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 증가와 간편식 선호 분위기로 ‘간편 이유식(조리 과정 없이 데워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이유식)’ 시장은 성장하고 있다. 이에 군소 업체들뿐 아니라 기존 식품 기업들도 영유아식 사업에 다시 눈길을 돌리는 분위기다.

◇엄마 마음 사로잡은 군소업체의 ‘프리미엄’ 이유식

지난 10일 오후 더현대서울 식품관에 입점한 ‘에코맘의 산골이유식’ 매장에는 ‘완료기 이유식(12개월 이상 아기 이유식)’과 유아식 반찬 매대가 텅텅 비어 있었다. 한우, 버섯 등 아기들이 잘 먹는 재료가 들어간 인기 제품이 빠르게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매장 관계자는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대량으로 물건을 쌓아놓지 않기 때문에 오후에는 인기 제품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유식을 사러 온 주부들은 “남은 거라도 하나씩 달라”며 보냉팩에 이유식을 챙겼다.

2012년 경남 하동군에서 시작한 영유아식 브랜드 ‘에코맘의 산골이유식’은 영유아를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인기다. 2017년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에 입점, ‘강남 엄마들의 이유식’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지금은 롯데백화점 본점, 더현대서울 등 주요 백화점에 자리잡고 있다. 반찬·국·이유식이 150~200g에 5300~6300원으로 타 브랜드에 비해 비싼 편이지만 100% 국산 식재료를 이용하고 솔잎한우, 남해 달고기, 초석잠, 지리산 봄동 등 시판 이유식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재료들을 사용해 인기를 끌었다. 이 업체 오천호 대표는 “100% 국산 농산물만 사용해 건강한 먹거리를 만든 점을 고객들이 높이 평가한 것 같다”고 했다. 직원 50여명인 작은 회사지만 지난해 매출이 180억원(예상)에 달한다.

‘에코맘의 산골이유식’ 오천호 대표가 직원 구내식당에서 이유식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또 다른 이유식 브랜드 ‘푸드케어 클레’는 ‘유리병 이유식’으로 유명하다. 대부분 이유식이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겨있는데, 유리병에 담아 엄마들이 환경호르몬 걱정을 덜 하게 됐다는 평가다. 1세트(3병)에 1만6400원으로 역시 타 브랜드에 비해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오프라인 매장 재고가 거의 쌓이지 않는다. 또 2016년 신세계 강남점에 입점한 이유식 브랜드 ‘얌이밀’은 ‘유기농 수제 이유식’ 컨셉으로 프리미엄 이유식 라인에 안착했다.

최근 영유아식 시장은 저출생 여파로 ‘사양산업’처럼 인식돼 왔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영유아식 생산량은 2020년 2만8934으로 2016년보다 56% 감소했다. 아기가 줄어들었으니 아기 음식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군소 업체들은 이 틈새를 꾸준히 파고 들었다. 분유 소비량이 줄어들지만 일하는 엄마들이 늘고, 간편하게 먹일 수 있는 시판 이유식을 찾는 수요는 늘어났다는 점에 착안해 ‘프리미엄’ ‘유기농’ 타이틀로 접근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엄마들이 아기 음식에는 돈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값이 조금 비싸도 불티나게 팔린다”고 했다.

◇간편 영유아식 시장은 확대…식품기업도 ‘유턴’ 분위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실제 분유를 제외한 영유아식 시장 규모는 2016년 1320억원에서 2022년 2534억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특히 간편 영유아식 시장 규모 2015년 680억원에서 2020년 1671억원으로 2배 이상 커졌다. 이유식업계 관계자들은 “저출생이 장기적 리스크이긴 하지만 일하는 엄마들이 계속해 늘어나고 있고, 간편한 프리미엄 이유식을 선호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간편 영유아식 시장은 분명히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고 했다.

이처럼 간편 영유아식 시장엔 가능성이 보이자 식품 기업들도 새로 사업을 시작하거나 확장하고 있다. 초록마을은 작년 8월 ‘초록베베’를 론칭하고 유기농·친환경 영유아식 시장에 새로 진입했다. 본그룹 계열의 베이비본죽은 월령 세분화, 다품종 소량 생산 등 전략을 바탕으로 519종 메뉴를 새벽 배송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매일유업의 경우, 기존 영유아식 제품군이 있지만 새로운 프리미엄 유아식 브랜드를 염두에 두고 올해 초 ‘리케’라는 상표를 출원한 상태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현재 분유, 유아식, 간식 등 여러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영유아식 사업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에 따라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日은 영유아식 사업 해외 진출도 모색…韓 업체들 모델 될 수도

일본 영유아식 업계는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아사히그룹과 모리가나유업, 아지노모토 등 식품 기업들이 유아용 식품 판로를 넓히기 위해 베트남 수출을 준비 중이다. 아사히그룹은 하노이, 호치민 등에 들어가있는 일본계 슈퍼마켓과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4월부터 8월까지 레토르트 이유식을 시범 판매할 예정이고, 모리가나유업은 작년 5월 베트남 현지 판매 대리점과 합작해 판매 회사를 설립했다.

니혼게이자이는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2023년 일본의 출생수는 전년보다 5.1% 감소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그동안 쌓아왔던 노하우를 새로운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영유아식 업체 관계자는 “우리도 장기적으로는 일본처럼 해외 수출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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