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하지만, 유치해서 의미 있다...'피라미드 게임'[정승민의 정감록]
매주 목요일 공개
'정승민의 정감록(鄭監錄)'은 개봉을 앞두거나 새로 공개된 영화, 드라마 등 작품의 간략한 줄거리와 함께 솔직한 리뷰를 담습니다.
(MHN스포츠 정승민 기자)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에서 벌어지는 피라미드 게임. 유치하지만, 유치해서 더 의미가 있는 작품 '피라미드 게임'이다.
달꼬냑 작가의 동명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피라미드 게임'은 한 달에 한 번 비밀투표로 왕따를 뽑는 백연여고 2학년 5반에서 학생들이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로 나뉘어 점차 폭력에 빠져드는 잔혹한 서바이벌 서열 전쟁을 그리는 드라마다.
최종 목표인 '수능'을 위해서 달려가는 고등학생 시기, 성수지(김지연)는 이 학교 저 학교 옮겨 다니다 백연여자고등학교 2학년 5반으로 새로 전학 오게 된다. 중령 계급을 달고 있는 군인 부친 성희석(최대철)의 잦은 근무지 변경 덕분에 성수지는 어느 학교를 가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친화력이 생겨버렸다.
이번에도 얼마 안 있다 전학 갈 것이라는 걸 알기에 백연여고 2학년 5반도 성수지에게는 잠시 머물다 갈 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성수지가 전학 온 시기 2학년 5반에는 달마다 이뤄지는 비밀투표가 진행됐다.
같은 반 학우들과 어울리고자 피라미드 게임 앱을 깔고 게임에 참여하게 된 성수지. 하지만 성수지에게 주어진 표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F등급이 된 성수지에게 호루라기를 불며 찾아오는 김다연(황현정) 패거리는 갖은 방법으로 그를 괴롭혔고, 성수지는 지옥의 시간을 견딘다.
그럼에도 성수지가 지옥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근무지 변경으로 얼마 안 가 전학을 가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웬걸,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 부대에 있을 수 있게 됐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야말로 성수지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파블로프의 개'가 된 듯 김다연의 호루라기 소리만 들리면 F등급으로서 몸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학교폭력이라는 상황에서 어른들이 줄곧 외쳤던 건 어른들의 도움을 받으라는 거였다. 결국 성수지는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담임선생님 임주형(최성원)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는 학교폭력 피해 증거를 통해 가해 학생 부모에게 이득을 챙기는 괴물이었고, 직접 증거를 남겨주겠다면서 성수지의 뺨을 때리기 시작한다.
누구 하나 믿을 수 없는 백연여고. 결국 성수지는 피라미드를 부수겠다고 다짐한 뒤 다시 한번 피라미드 게임에 참여한다. 과연 성수지는 가장 안전한 구조인 피라미드형 서열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웹툰을 원작으로 실화화한 학원물이라면 오글거린다거나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데, 사실 '피라미드 게임' 또한 그런 느낌을 피하기는 어렵다. 같은 반 내 서열 꼴찌와 세계관 최강자의 싸움이라니,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피라미드 게임'이 회차를 거듭하고 극에 빠져들수록 시청자는 백연여고 2학년 5반 내 방관자 중 한 명이 된다. K-학생이라면 어느 학급에나 암묵적으로 있었던 보이지 않는 서열을 체감했을 터. 과연 본인이라면 피라미드 게임에서 어떻게 적응할지, F등급에게 힘을 실어줄 학우가 될지 고민하는 지점이 생긴다.
이런 과정에서 학교폭력을 그저 아이들 문제라고 유치하게 바라봤던 어른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듯, 백연여고를 둘러싼 어른들의 서열 문화도 '피라미드 게임'을 연상하게 한다.
성수지가 피라미드 게임을 부수는 과정도 볼 만하다. 단순히 악에 받쳐 피라미드를 부숴버리는 게 아닌, 하중이 단단히 지탱하고 있는 피라미드 구조를 '해체'하는 것에 가깝다. 피라미드 하중에 밀집된 친구들을 하나둘 포섭하며 피라미드 최정상으로 향하는 성수지의 모습은 내적 응원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연기로 풀어내는 배우들의 활약도 눈에 띈다. '장원영 친언니'로 알려진 장다아부터 '솔로지옥2' 덱스와의 남다른 케미로 눈길을 끌었던 신슬기, '일타 스캔들'에서 맡았던 배역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다시 한번 교복을 입은 강나언과 류다인. 이렇게 볼 때 '피라미드 게임'은 신인 대잔치다.
하지만 다행히 연기로 어색한 부분은 없었다. 특히 '피라미드 게임'을 통해 데뷔하는 신슬기는 '솔로지옥2'에서 남성들을 무장해제 시킨 미소를 철저히 감춘 채 냉소적인 2학년 5반 반장 서도아 역으로 찰떡 이입한 모습을 보여줬다.
장다아의 열연도 주목할 만하다. 메인 빌런인 백하린 역으로 분하는 장다아는 상황마다 야누스처럼 얼굴을 갈아 끼워야 하는데, 특유의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장다아의 이미지는 백하린과 잘 어울리는 지점이다.
하지만 보완해야 할 점은 있다. 연기하는 장다아의 눈을 보면 다른 배우들의 눈과 다르게 캐릭터의 감정이 담긴 것 같지 않아 기계처럼 연기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점을 제외하고 본다면 장다아는 배우로서 원석이다.
무엇보다 이런 신인들 사이에서 빛나는 건 김지연이다. 우주소녀 보나를 잠시 내려놓고 '스물다섯 스물하나' '조선변호사' 등을 통해 입지를 굳힌 배우 김지연은 '피라미드 게임'에서 베테랑 면모를 발휘한다.
'피라미드 게임'은 서사가 서사인 만큼 배우들의 열연은 과몰입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극 중 한없이 차가웠던 배우들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메이킹 영상으로 잠시 빠져나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편,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은 매주 목요일 공개된다.
사진=TVING '피라미드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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