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심장 소리 듣고, 고래가 되어보는 수업

류석우 기자 2024. 3. 1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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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독일 생태교육 현장에서 만난 자원봉사 청년들, 성인까지 이어지는 자연에 대한 관심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후줌 인근의 룬덴베르크잔트 앞 바덴해 갯벌의 모습. 퇴적물이 바닷물과 함께 빠져나가지 않도록 막는 독일식 라눙이 보인다. 류석우 기자가 라눙을 넘고 있다.

철퍽철퍽. 한 손에 기다란 삽을 든 아니카 랑고어(23)가 저만치 앞서나가다 말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긴 거미 종류가 엄청나게 많이 살고요, 풍뎅이 같은 종류도 많아요. 무엇보다 많은 건 새들이죠. 레인저(국립공원 관리인)들이 모든 영역을 다 소화할 수 없으니 우리 역할이 중요해요.”

레인저의 빈틈을 채우는 자원봉사자

랑고어는 바덴해 보존협회(Schutzstation Wattenmeer) 소속 자원봉사자다.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후줌의 국립공원바덴해센터에서 일한다. 2024년 2월16일, 랑고어와 함께 후줌 인근 룬덴베르크잔트 해안가 갯벌로 향했다. 관광객에게 체험 가능한 갯벌을 안내하고 설명하는 것도 랑고어의 업무 중 하나다.

푸른 잔디가 덮인 제방을 넘어서자 염습지와 물이 빠진 갯벌이 눈에 들어왔다. 제방으로 내려가기 전 랑고어가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주목해달라고 했다. “룬덴베르크잔트 갯벌 투어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갯벌에 나가볼까요?”

제방 앞에 펼쳐진 염습지만 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보이는 갯벌로 가기 위해 먼저 염습지에 진입했다. 염습지 중간에 인위적으로 물길을 내놓은 모습이 보였다. 한번 들어온 퇴적물이 바닷물과 함께 빠져나가지 않도록 막는 독일식 라눙(Bush Fence·낮은 제방)도 눈에 띄었다.

“1930년대 히틀러 시절까지만 해도 이곳에 간척사업을 진행했다고 해요. 간척을 시도했지만 중간에 완성되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염습지가 형성됐죠. 간척사업은 1950년대 들어 시들해졌어요. 그때부터 염습지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보존됐어요. 1985년엔 여기(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갯벌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정식으로 보호됐고요.”

라눙은 해안을 보호하고 염습지를 살리기 위한 독일의 전통 복원 방식이다. 갯벌 가장자리에 나무 막대기를 줄지어 박고 그 사이를 작은 나뭇가지와 지푸라기 등을 넣어 작은 댐처럼 만든다. 라눙을 설치해놓으면 썰물 때 바닷물이 빠져도 퇴적물은 남는다. 그 위로 염생식물이 자라면서 염습지가 형성된다. 라눙은 파도 세기를 줄여 해일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염습지를 가로질러 300m가량 걸어가니 물이 빠진 갯벌이 나왔다. 랑고어가 가방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냈다. 새 모양의 인형이었다. 건네받은 두 개의 인형은 무게가 달랐다. 하나는 이곳에 날아올 때, 하나는 이곳을 떠날 때의 새의 무게다. “붉은가슴도요가 서아프리카에서 이곳까지 닷새 동안 5천㎞를 쉬지 않고 날아와요. 그 비행에 쓰는 에너지가 자기 몸무게의 반 정도거든요. 그 50%를 여기서 보충하는 거예요. 엄청나게 중요한 곳이죠.” 붉은가슴도요는 보통 여름에 북극에서 새끼를 낳고 서아프리카 쪽으로 이주해 겨울을 난다. 바덴해(와덴해)는 그 중간 기착지로서 중요한 먹이 공급처다.

후줌 국립공원바덴해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아니카 랑고어가 룬덴베르크잔트 앞 바덴해 갯벌을 찾아오는 철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군복무 대체한 ‘시민봉사제도’가 남긴 문화

랑고어가 설명하던 참에, 비행기 한 대가 인근 상공을 지나갔다. “이곳에서의 비행은 완전히 금지됐어요. 새들이 먹이를 먹다가 갑자기 무언가 날아오면 먹는 것을 중단하고 다시 날아올라야 하잖아요. 먹는 시간이 줄어들죠. 다행히 저 비행기는 (비행금지구역) 경계에 걸쳐 지나가네요.”

랑고어가 자원봉사자로서 하는 일엔 이런 감시 업무도 있다. 신고되지 않은 비행물체나 목줄이 풀어진 반려견을 감시하고, 이들로부터 갯벌을 보호하는 일이다. 주기적으로 달팽이나 갯지렁이와 같은 갯벌 생물의 모니터링도 진행한다. 랑고어는 “1년에 한 번씩 한 지점을 정해 1㎡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확인한다”며 “이런 모니터링 작업은 30년 전부터 반복됐다”고 말했다.

랑고어 같은 자원봉사자는 독일 후줌 센터에만 7명,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로 범위를 넓히면 130여 명이 있다. 국립공원 관리자로 일하는 ‘레인저’도 있지만, 현재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서 활동하는 레인저는 15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랑고어 같은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바덴해 관련 센터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일하게 된 것은 1961년 독일에서 군복무를 대체하기 위해 ‘시민봉사제도’가 도입되면서다. 많은 청년이 군복무 대신 자연스럽게 이런 자원봉사를 통해 바덴해와 연을 맺었다. 이후 의무복무는 사라졌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동안 바덴해 센터 같은 곳에서 자원봉사하는 문화는 자연스레 남았다.

“자원봉사자단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어요. 본업으로 일하는 레인저가 있지만 모든 지역을 감당하기 힘들죠. 자원봉사자들의 협력이 정말 중요해요.” 국제적 환경단체 세계자연기금(WWF)에서 바덴해 지역 소장을 맡고 있는 한스 울리히(65) 박사가 말했다. 그는 “독일 전역에 60여 개의 (바덴해 관련) 센터가 있다”며 “이런 센터가 바덴해의 환경과 일반 시민을 이어주는 매개 구실을 하는데, 자원봉사자는 정보를 제공하고 동행하는 일종의 길잡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후줌 국립공원바덴해센터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하이아라 뵈커(19)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이곳으로 왔다. 그는 센터에서 학생이나 관광객에게 간단한 환경교육과 갯벌·염습지 투어를 하거나 바덴해 순찰 등의 업무를 한다. 바덴해 지역에 죽어 있는 새나 쓰레기 등을 발견하면 조처하고 보고하는 일도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바덴해와 굉장히 친했고 자연스럽게 이런 역할을 하기를 희망했다”며 “자원봉사를 마친 뒤에는 환경이나 생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랑고어는 조금 특이한 경우다. 그는 독일 남부 지역의 자동차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이곳으로 자원해 왔다. “엔지니어링 일을 했는데 어느 순간 이 길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자연보호와 관련한 일을 늘 하고 싶었어요. 환경 관련 일을 하면서 이쪽 업계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이곳에 오게 됐어요.” 그는 회사에 다닐 때와 비교해 수입이 크게 줄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저축할 만큼은 아니지만 살아갈 만큼은 된다”며 웃었다. 센터 자원봉사자는 월급을 따로 받지 않고 소정의 활동비만 받는다.

한 군데도 직접 참여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다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갖고 갯벌과 염습지를 지키는 랑고어와 뵈커 같은 자원봉사자는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할까. 꼭 자원봉사자가 아니더라도 생태계를 자연 상태 그대로 보호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며 이 지역을 찾는 생태 관광객은 또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을까. 이 의문을 풀 단초는 독일의 현장 교육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후줌 센터를 방문하기 하루 전인 2월15일, 독일 니더작센주 빌헬름스하펜에 있는 유네스코 바덴해 방문객센터를 찾았다. 니더작센주에선 최대 규모의 교육센터다. 이날 교육센터 안내는 환경교육 책임자 모니카 바스너 박사가 맡았다. 이곳에선 주로 연구 경력이 있는 연구원들이 근무한다. 바스너 박사도 지질학 연구를 하다 이곳에 왔다.

바스너 박사의 안내를 받아 1층부터 둘러봤다. 여느 박물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예상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산산이 깨졌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관광객이 직접 참여하지 않고 넘어가는 구역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점이다. 단순히 버튼을 눌러 소리를 듣거나 만져보는 것 외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전시물이 많았다. 이를테면 호두 껍데기를 갈아 모래사장처럼 쌓아놓은 곳엔 고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도록 만들어놨다. 학생들이 스스로 원하는 지형을 만들면 이를 비추는 빔이 그 지형의 높낮이에 따라 해수면과 지면 색깔을 다르게 나타내는 형식이다.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빌헬름스하펜에 자리한 유네스코 바덴해 방문객센터에서 모니카 바스너 박사가 호두 껍데기를 갈아 만든 체험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현한 것도 있었다. 새끼를 품은 조류에게 다가가면 조류의 심장 소리가 더 크게 울리도록 만든 구역이나, 심해에서 시추하는 것이 고래 입장에서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 체험해보는 곳 등이 있었다. 바스너 박사는 “실제 새들은 인간이 가까이 가면 공포를 느끼거든요. 아이들에게 무조건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직접 듣고 느끼게 하기 위해 새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했어요. 그래야 잘 이해할 수 있거든요.”

직접 눈으로 봐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실제의 것을 활용했다. 실제 염습지와 식물을 일부 옮겨와 조성했고, 3층에는 아예 실제 새우잡이에 활용하던 어선을 통째로 들여와 전시했다. 이런 것들은 눈으로만 보지 않고 직접 탑승하고 만져볼 수 있게 했다. 전시장보다는 놀이터, 체험장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했다. 글과 사진이 많고 눈으로만 봐야 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박물관에 견줘, 이 공간에서 얻는 몸의 경험과 교육의 밀도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평생 지질학 연구한 박사의 숙제

이 센터는 독일 내 공식 교육기관으로 지정됐다. 인근의 협력을 맺은 학교들이 이곳에서 수업한다고 했다. “독일에는 학교 외부에 학교와 똑같은 역할을 하는 공식 교육기관이 있어요. 자매 교육기관이라 부르는데 이 센터도 그중 한 곳입니다. 협약을 맺은 학교가 이곳에서 자연 수업을 해요. 전시된 것도 이용하지만 내부엔 별도의 실험실도 있습니다.”(바스너 박사)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연간 교육을 위해 이 센터를 찾는 학생 수만 2만5천여 명에 이른다.

평생 지질학을 연구하고 이곳에서 수많은 교육을 해온 바스너 박사도 계속 고민하는 것이 있다. “아이들이 관심 있어 하고 흥미롭도록 하는 게 굉장히 큰 숙제예요.” 어릴 때부터 자연과 친숙해지고 관심을 갖게 하는 일은 한 분야의 박사가 된 이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런 고민이 있었기에 방문객 센터 같은 환경의 교육장이 생겼다. 그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성인이 돼서 생태 관광객이 되고, 때로는 자원봉사에 참여한다. 자원봉사 같은 적극적인 행동이 아니더라도 자연에 관한 인식이 높아진다. 이런 선순환 구조는 유럽에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냈다. 적극적으로 환경보호에 관한 목소리를 내고 정부 정책에 개입하는 환경단체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바덴해 홍합은 누가 키워? 양식 합의의 전말(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5207.html)로이어진다.

빌헬름스하펜·후줌(독일)=글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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