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팀 미팅이 잡혔다… 회의실 창밖은 교전 구역이었다[소설, 한국을 말하다 2]

장상민 기자 2024. 3. 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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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배명훈
무관심 - 파티션 너머에서 우리는 안녕하지
일러스트 = 토끼도둑 작가

긴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회사 옆 건물이 교전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지하철이 회사 앞 사거리를 무정차 통과하고 나서야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전 직원에게 보낸 안내 메일에는, 교전 기간이 최대 열흘간이고 최대 소음 발생일은 월화수 사흘이라고 나와 있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미팅 시간에 딱 맞춰서 나왔는데, 한 역을 더 가서 내려야 했다. 얼른 다른 교통수단을 알아봤지만, 도로도 차단된 모양인지 시간이 단축될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다른 팀 동기에게 연락해 대신 손님을 맞아 달라고 부탁했다.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방문자 출입증 받는 일을 도운 다음 엘리베이터로 회의실까지 모시는 일이었다. 기 싸움을 하느라 월요일 아침부터 회사로 불러낸 손님이었다. 꼬투리를 잡혀서 좋을 건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지 않을 만큼 적당히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을 빠져나갔다. 같은 방향으로 사람들이 쏟아져서 달려가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마음만 다급해져서 인파를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던 그때, 손님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차가 교전구역을 우회하느라 20분쯤 늦게 도착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미팅은 무난히 마무리되었다. 딱히 누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상대방이 지각한 건 사실이어서 아침부터 회사로 불러낸 부담을 잊을 정도는 됐다.

손님을 배웅하고 회의실을 정리하러 돌아와 보니, 창밖에 옆 건물이 보였다. 20층 건물 전체에 짙은 파란색 가림막이 드리워 있어서 신축 건물 공사장처럼 위화감 없는 풍경이었다. 창가에 바짝 붙어서 보니 가림막 한가운데에 적혀 있는 표어가 눈에 들어왔다.

안전하고 신속한 작전 수행

시민을 배려하는 청정 교전

전쟁의 사유나 상대를 규탄하는 말은 나와 있지 않았다. 대신 얼룩무늬 철모를 쓴 전쟁성 마스코트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거수경례하는 모습이 귀엽게 인쇄되어 있었다.

“저 소리 너무 신경 쓰이지 않아요? 사흘 내내 떠 있을 건가?”

회의실 정리를 도와주러 온 후배가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옆 건물 상공에 붙박인 듯 떠 있는 헬기 이야기였다. 주둥이 아래에 기관포가 달리고 양쪽 날개 밑에는 미사일이 장착된 지상공격용 헬리콥터였다. 건물 주위에는 보이는 것만 일곱 대나 드론이 떠 있었다. 그중 두 개는 방송국 장비 같았다. 나머지는 공격용이었을 것이다.

건물 입구는 비어 있었다. 정부군 방어선은 위층에서 물건을 던져도 닿지 않을 만큼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대기 중인 병력과, 장갑차 같은 군용 차량이 사거리 가운데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고, 무슨 공성병기처럼 사다리차도 서너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은 다 가림막 안에서 벌어지고 있어서 일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후배에게 건성으로 답했다.

“아무튼 주말 전에는 끝나면 좋겠네.”

“시끄러운 건 수요일이면 끝난댔으니까요.”

복귀 첫날이라 일이 밀려 있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만 마무리하기로 하고 저녁도 걸렀는데, 어느새 아홉 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문득 위화감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야근 중인 사람 몇몇이 파티션 뒤에서 고개를 빼고는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내 배경음처럼 깔려 있던 소음. 그게 사라져 있었다. 한 대가 멀어지면 다른 한 대가 다가오는 식으로 종일 이어지던 헬리콥터 소리였다. 우리는 라디오 방송 PD처럼 비어 있는 오디오에서 불안한 징후를 감지했다.

그때였다. 옆 건물 쪽 창밖에 섬광이 번뜩이더니 꼭대기 층 근처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던 사람들이 일제히 책상 아래로 머리를 파묻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가깝게 들리는 소리였다. 멀리서 날아온 미사일이, 헬기가 차지하던 공간을 지나 옆 건물 옥상을 때리는 소리. 그런 소리가 세 번 더 들렸다.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겨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려갔다. 같은 층에 있던 사람들이, 마지막 구명보트에서 남은 생존자를 기다리듯 남아 있는 사람들을 기다려주었다. 나는 건물을 빠져나오자마자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 쪽으로 향했다. 등 뒤에서 폭발음이 두 번 더 들렸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모두가 전쟁 이야기였다. 밤새 정부군이 계단을 통한 진입을 시도했으나 입주자군의 반격으로 물러났다는 소문이었다. 다음이 미사일 공격 이야기였는데, 어마어마하게 먼 거리를 날아와 목표 지점을 정확히 타격한 도심형 원격제어 미사일이 화제였다.

가벼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건 사람들이 피신해 있던 병원 구역이 폭격으로 파괴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래도 병원은 너무하지 않아? 무장도 안 한 사람들이었다는데.”

“치과였다잖아요. 이 상황에서 병원으로 쳐줄 만한 곳은 아니죠. 거기로 도망간 사람들은 뭘 기대한 걸까요? 아무튼 저는 뭐든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요. 헬기 소리 드론 소리 때문에 아침부터 멀미가 날 지경이에요.”

오후에는 식당 예약 취소 수수료 안내 문자가 왔다. 출장 중에 해둔 예약이었는데, 파이브코스 디저트 세트를 파는 카페 레스토랑이었다. 전쟁이 한창인 그 건물의 2층 창가에 있는 식당. 안내 문자를 보낸 예약 서비스 업체에서는 주말 영업이 가능한지에 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전쟁 발생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발송한 메시지인 모양이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전쟁 관련 뉴스를 검색했다. 조속히 상황을 종결하겠다는 전쟁성 대변인의 말과,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무슨 교수의 인터뷰가 함께 실려 있었다.

‘그래서 언제 끝난다는 거야? 수수료 면제 이야기가 없는 걸 보면 식당 쪽에서는 주말 영업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되도록 취소하고 싶지 않은 예약이었다. 어쩌면 첫 데이트가 될지도 모르는 날이었다. 종종 둘이 만나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러다 언젠가는 특별해져도 좋지 않을까 상상하는 관계. 그 특별한 날이 바로 이번 토요일일지도 몰랐다. 때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갈지도 모른다. 그 사람에게 “꼭 맞는 친구”라는 건 나 하나만이 아닌 모양이니까.

‘딱 여긴데. 늘 가는 데지만 우리한테는 각별하니까.’

아무래도 다른 소식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다섯 시에 갑자기 팀 미팅이 잡혔다. 회의 시작 시각에서 알 수 있듯 썩 기분 좋은 회의는 아니었다. 사고 친 사람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않으려 애쓰며 팀장이 한창 핏대를 세우는 동안, 창밖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회의실 창밖은 교전구역이었다. 시민을 배려하는 청정 교전이 펼쳐지는 바로 그 건물.

서너 발씩 타다닥 발사되는 반자동 사격음이었다. 팀장은 그 소리에 맞춰 말로 불을 뿜어댔다. 좁은 방에 몰려 팀장에게 처형당하는 상상을 한 게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옆 건물에서 나는 총소리는 점점 격렬해졌다. 가림막이 살짝 펄럭이는 듯했으나, 총격 때문인지 밖에서 부는 바람 때문인지 구별이 안 됐다. 마침내 총성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분을 참지 못한 팀장이 창문 쪽으로 수첩을 집어 던졌다.

“아, 저 소리 좀!”

수요일은 아침 일찍부터 헬기 소리가 요란했다. 출근길에 보니 공격용 헬기 세 대가 건물 주위를 오르내렸다. 드론은 멀찍이 물러나 있었고, 매서운 폭풍의 조짐이 교전구역 위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밤새 무력 충돌이 있었는지 건물을 둘러싼 가림막이 세로로 크게 찢겨 있었다. 우리 회사 쪽이었다. 올라가서 보면 찢어진 틈새로 교전구역 안쪽 상황이 보일지도 몰랐다.

지하철역은 또 무정차 통과였다. 출근길 행렬이 어김없이 보도를 가득 메웠다.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데, 인도 한쪽에 드문드문 세워진 안내판이 보였다.

전쟁성 마스코트가 눈을 찡긋하며 거수경례를 붙이는 그림 아래에, 진정성 없는 폰트로 사과문이 인쇄되어 있었다.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실제 세계의 안위는 파티션으로 나눠져있지 않아”

■ 작가의 말

“새 건물의 조감도가 쾌적해 보이는 건 사람을 몇 명 안 그려 넣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동인구가 정말로 그렇게 없으면 그 공간이 유지되지 않겠죠. 보여도 안 보이는 걸로 치는 거예요.” 배명훈 작가의 ‘파티션 너머에서 우리는 안녕하지’는 가림막 너머 ‘교전구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애써 무시한 채 자신들의 세상이 안온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배 작가는 “하지만 타인을 어디까지 지울 수 있을까요? 타인이 없으면 세상도 없다”고 말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누군가가 서 있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 바깥에서 자신의 불편함을 토로한다. 지하철의 무정차 통과가 불편하고 교전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불편하다. 데이트 예약이 취소될까 하는 불만도 한가득이다. 한국 사회 속 자행되는 폭력들과 언제까지나 남의 일일 듯 쉽게 혀를 차며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배 작가는 “실제 세계의 안위는 파티션으로 나눠져 있지 않다”며 “‘오늘 아침의 날씨’는 사는 곳에 따라 제각각일지 몰라도 이 행성의 기후는 하나밖에 없어요. 어떤 안위는 인류 전체에 딱 하나”라고 담담히 말했다. 소설에 그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는 해결로 나아가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배 작가는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 “인간사에 최종적인 해결이라는 게 있을까요?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꾸는 쪽이 더 쉬울 겁니다.”

■ 배 작가는

1978년생. 2005년 등단 후 ‘타워’ ‘빙글빙글 우주군’ 등을 썼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등 수상.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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