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자 없어 난감, 기간제 교원 도망…새 학기 학교 ‘늘봄 전쟁’

2024. 3. 1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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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 시범학교 전국 확산 새학기
100% 운영 전남·부산도 혼란
지역별 기간제 구인경쟁
전국적으로 늘봄학교가 시작된 가운데 울산의 한 초등학교 [연합]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학부모 돌봄 공백을 막는 ‘늘봄학교’를 전국 2700여곳으로 확대 운영한 지 일주일 차를 넘겼지만 여전히 현장 곳곳에선 잡음이 나오고 있다. 적지 않은 학교들은 늘봄학교를 시행키로 공지하고도 아직까지 인력 확보와 공간 문제가 해소가 안돼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다. 반면 수요조사 없이 급하게 늘봄학교를 열면서 정작 신청자를 받지 못한 곳도 있었다.

11일 교육계에 따르면 올해 1학기 전국 2741개 학교에서 ‘늘봄학교’가 운영중이다. 서울에서는 38개교가 늘봄학교를 시행하고 있다. 2학기부터는 전국 모든 초등학교로 운영이 확대된다. 늘봄학교는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가돌봄정책으로 평일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최장 13시간 동안 학교에서 학생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학교가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당초 내년부터 시행예정이었던 늘봄학교를 한해 일찍 시행하면서, 교원 부족은 물론 수요·공급 불일치, 공간마련 문제 등 곳곳에서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전라남도 소재 A초등학교는 이번 학기 늘봄학교 운영 직전까지 기간제 교원을 채용하지 못했다. 고육지책으로 이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기간제 교원에게 늘봄학교까지 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일주일 만에 이 교원은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계약을 파기하고 떠났다. 업무 과중으로 인해 사실상 ‘도망’이나 다름없는 선택을 한 사례다.

전남의 다른 B 초등학교는 기간제 교원 구인난을 겪던 끝에 가까스로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교원을 채용했다. 해당 교원의 조건은 ‘관사’를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 학교는 결국 관사에 이미 살고 있던 소속 교사를 내보내고 새로 뽑은 교원을 입주시켰다. 이 학교 관계자는 “관사가 없으면 그나마 도심인 목포에 살며 한 시간 반 거리를 통근해야 하는데, 인사발령이 나서 이사까지 온 사람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전남은 관내 모든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달 공개한 전국 시도교육청별 늘봄학교 신청 현황에 따르면 전남은 부산과 함께 각 학교들의 늘봄학교 신청률은 100%였다. 교사들 반발 기류가 큰 서울(6%)과 큰 격차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역 내에선 늘봄학교 운영을 위한 ‘구인전쟁’이 치열해졌다. 이 때문에 대부분 학교가 늘봄학교 초기 시행에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게 현장의 이야기다.

서울 아현초등학교 '늘봄학교' 프로그램 중 축구에 참여한 학생들이 선생님과 다양한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 [연합]

지금 학교들은 이미 시행해오던 돌봄교실부터 늘봄학교 프로그램 교원, 행정 전담 인력까지 뽑아야 하는 상황이다. 전남의 한 초등학교사는 “지금 새학기 전남에서 늘봄학교를 시작한 곳은 많이 없다”며 “우리 학교는 학생이 600명 규모로 그나마 도심에 있는데, 여기서도 인력이 없어 정년 퇴임한 교원을 뽑았을 정도로 늘봄학교 교원 구인난이 심하다”고 했다.

늘봄학교를 위해 쓸 공간 마련 역시 여전히 난제다. 과밀학교의 경우 교실 여유가 없어 도서관이나 체육관 등 시설을 쓰고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초등학교 교사는 “도서관 옆 공간을 늘봄용 교실로 쓰면서, 당초 도서관 인테리어 공사를 늘봄 예산으로 쓰기도 했다”며 “아이들이 책을 읽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늘봄을 위해 도서관에 머문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을 지도, 관리·감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체육관을 늘봄학교 공간으로 쓰고 있는 다른 지역 학교는 27개 학급이 시간표를 조율하느라 아직까지 늘봄학교를 시행조차 하지 못했다. 이 학교 교사는 “시간표를 4번을 바꿨는데 아직도 답이 나오질 않아 늘봄학교는 시작조차 못했는데, 학부모들로부터는 늘봄학교를 시작한다고 해놓고 왜 하지 않느냐고 민원전화가 계속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했다.

반면 늘봄학교를 열어놓고도 신청자가 없어 난감한 학교도 있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는 1학년 늘봄학교 모집 정원(25명)이 모이지 않아 2학년과 통합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초등학교 교사는 “다음주 월요일부터 시작인데 교실이 없어서 월요일은 2학년 1반 교실, 화요일은 2학년 2반 교실에서 하는 식으로 요일마다 반을 옮기고 있다”고 했다. 다른 초등학교 교사는 “당초 교육청에서 모든 학교가 다 늘봄학교를 신청해야 한다고 공문이 내려왔다”며 “애초 신청자가 없던 학교도 늘봄학교를 열어 학생들을 모셔야 하는 수준인 학교들이 많다”고 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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