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야영 횡성 태기산] 겨우내 묵혀둔 눈썰매 꺼내들고 '태기산 활강'

민미정 2024. 3. 11.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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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를 끌고 산을 오르는 필자와 한예진씨.

얼마 전, 몇 번의 한파가 닥치더니, 연일 기온이 영상이었다. '이제 곧 봄꽃 산행을 하게 되는 건가?' 요즘은 바빠서 산행을 자주 하지도 못하는데, 겨울이 짧아진 것 같아 아쉬움과 조바심이 났다. 눈이 내리면 배낭을 싣고 떠나겠다며 장만해 둔 눈썰매는 이번 겨울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이대로 겨울을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함께 눈썰매를 구매한 한예진에게 다짜고짜 떠나자고 연락했다. 커다란 배낭에 썰매까지 짊어져야 했지만, 우리는 기꺼이 대중교통으로 가기로 했다. 대중교통이라고 어려울 건 없었다. 강원도 횡성 태기산에서 가까운 평창 스키장 셔틀버스를 예약했다. 스키장에서 태기산 입구까지 택시로 이동하면 간단했다.

출발 당일, 이른 아침부터 파란색 눈썰매를 손에 들고 셔틀버스 출발 시간에 맞춰 홍대역으로 갔다. 잠시 후 빨간색 눈썰매를 든 예진이가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걸 발견했다. 서로를 알아 본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우리는 틀림없는 '동행'이었다.

밤새 눈이 내려 설국이 된 태기산 야영지.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더욱 싱그러운 아침을 맞았다.

대기 중인 버스 앞에서 과할 정도로 커다란 눈썰매를 든 우리는 보드가방을 들고 서있는 보더들 사이에서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부담을 느낀 듯 예진이가 멋쩍은 듯 조용히 내뱉었다.

"언니, 그냥 비료포대를 살 걸 그랬나 봐요?"

"안 돼! 비료포대로 타려면 안에 지푸라기도 넣어야 폭신하고 잘 나간단 말이야~!"

시골에 살았던 꼬마 시절에 동네 오빠들을 따라 산으로 들로 눈썰매를 타러 갈 때면 항상 논에 쌓인 짚단에서 지푸라기를 한 뭉치 뽑아 비료포대에 담아 질질 끌고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등산 중 살짝 내리는 눈에 신바람이 난 나와 한예진씨.

스키장 셔틀버스로 이동

짐칸에 배낭과 눈썰매를 고이 집어넣고 버스에 올랐다. 썰매 탈 생각에 신바람이 나 있는 두 어른이(어른+어린이)를 실은 버스가 3시간 남짓 달려 스키장에 도착했다. 변덕을 부리는 날씨 탓에 거리에 쌓인 눈은 거의 녹아 있었다.

"언니! 우리 이러다 눈이 없어서 썰매 못 타는 거 아닐까요?"

"괜찮아! 다른 데는 다 녹아도 태기산은 겨울에 눈이 없었던 적이 없어!!"

호언장담했지만, 나 역시 불안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게 아닌가 싶었다. 택시를 타고 태기산으로 향하면서도 걱정과 불안함은 계속됐다. 택시는 우리를 시커멓게 드러난 아스팔트 위에 내려놓고 쌩하니 사라졌다. 걱정과 불안은 현실이 됐다. 태기산 정상부 군부대의 부지런한 군인들이 눈을 다 치운 걸까? 덕분에 우리는 아이젠 없이 산행할 수 있었다. 눈썰매를 들고 맨 땅 위를 터벅터벅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구간이지만, 음지에 녹지 않은 결빙구간이 나왔다. 들고 있던 눈썰매를 얼음 위에 내려놓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발을 굴렀다. 드드득, 드드득, 드드득. 울퉁불퉁한 얼음 위에서 플라스틱 눈썰매가 상당히 불편한 소리를 내며 마지못해 미끄러졌다.

눈썰매에 무거운 배낭을 싣고 트레킹하면 색다른 경험이 된다.

우리는 일어나 다시 눈썰매를 들고 걸었다. 전망대주차장까지 오르막에서는 간간이 얼음으로 변한 눈길 구간을 만났지만 썰매를 타고 거꾸로 내려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전망대를 지나 다시 내리막이 시작되는 구간에서는 강렬한 태양열에 눈이 벌써 다 녹아 있었다. 우리는 하염없이 아스팔트 위를 걸었다.

본격적으로 태기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 'S'자 모양으로 이어지는 길 위가 심상치 않았다. 전망대 쪽과는 다르게 아스팔트 길 양 옆으로 제법 눈이 쌓여 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길 위에 하얀 얇은 막이 나타나더니, 곧 완벽한 눈길이 등장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눈썰매만 들고 뛰다시피 오르막을 올라갔다. 한참 올라간 다음, 썰매 위에 올라탔다. 쌓인 눈은 적당히 굳어 있었다. 비탈의 경사도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우리를 실은 눈썰매는 모터라도 단 듯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코너를 돌 때마다 등산화로 방향을 틀어 주니 'F1 그랑프리' 못지않은 완벽한 레이싱이 펼쳐졌다. 배낭을 내려놓은 곳까지 순식간이었다. 우리는 서로 물어볼 것도 없이 다시 썰매를 들고 눈길 위를 달려 올라갔다. "와후~~~!!! 달려, 달려~!!!!" 다행히 등산객이 없어 논스톱으로 마음껏 내달렸다. 두 번을 더 오르내리고 나서야 질주를 멈췄다. 나머지 체력은 야영지까지 이동하기 위해 아껴야 했다.

야영을 마치고 눈부신 아침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내일 하산길에 더 많이 타자!"

합의를 보고 이성을 찾은 우리는 썰매 위에 배낭을 싣고 열심히 걸어 올라갔다.

몇 번이고 번뜩이는 질주 본능을 억누르며 정상에 도착했다. 야영지는 숲으로 정했다. 밤새 천체를 도는 별빛 아래에서 자는 것도 좋았지만, 아무도 없는 고즈넉한 숲 속에서 나란히 텐트를 쳐 놓고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았다. 텐트 안에 앉아 눈썰매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쏟아내던 우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 고요함이 텐트에 닿았다. 눈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조용한 숲 속에 눈이 내려앉고 있었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 하루의 마무리인가. 다음날, 쌓인 눈 위로 신바람 나게 썰매를 탈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전망이 없어 심심한 임도길이지만 썰매 끌기 내기를 하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썰매가 안 내려가네? 그냥 굴러!

눈이 하얗게 덮인 나무 위로 구름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숲 위로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부는 것 같았다. 어두운 틈새를 비집고 발그레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곧 해가 떠오를 것 같았다. 예진이와 나는 한참동안 멈춰 서서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떠오르고, 구름이 걷히는가 싶더니 싱그러운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계속되는 따뜻한 기온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설국이라니! 나는 언제나 길 위에서 운이 좋은 편이다.

눈썰매 2탄을 준비하며 재빨리 철수했다. 날이 더워져 눈이 녹기 전에 마음껏 레이싱을 펼쳐야 한다. 눈썰매를 들고 숲을 빠져나왔다. 정상부는 평지에 가깝기 때문에 빨리 비탈길까지 가야 했다. 배낭을 실은 눈썰매를 끌며 뛰다시피 걸었다. 그리고 비탈이 시작되는 지점에 멈춰 섰다. 준비라 할 것도 없었다. 눈썰매 위에 배낭을 올려놓고 우리는 그 위에 앉아 발을 구르기만 하면?

야영 다음날. 밤새 내린 눈에 썰매에 올라탔다.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태기산 도로는 겨울에 차량 통제된다. 도로에 눈이 쌓이면 등산객들에게 이곳은 천국이 된다.

"어라? 눈썰매가 왜 안 내려가지??"

우리는 마주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폭신한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이 정도의 경사에서는 눈썰매가 꼼짝하지 않았다. 발로 밀고 끌고 동동 굴러도 소용이 없었다. 내가 앞장서서 눈을 다지고 예진이가 뒤따라 타봤지만 눈이 너무 많이 쌓인 탓에 한 번 다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눈썰매 위에 배낭을 올려놓고 5m 정도 뒤로 물러났다. 도움닫기를 한 다음, 배낭 위에 엎드려 배를 깔고 가속도를 올려봤다.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가속도가 폭신폭신한 눈의 저항력을 이겨내지 못했다. 썰매는 조금 움직이다가 멈췄다. 내 몸은 눈 위에 내동댕이쳐졌다. 어라!? 그런데 이것도 재미있네?! 예진이는 고꾸라진 나를 보며 박장대소하더니, 눈썰매를 두고 뒤로 물러섰다. 있는 힘껏 달려 배낭 위에 배를 깔고 달려든 예진이도 한 바퀴 구르며 고꾸라졌다.

우리는 눈 만난 '시고르자브종'(시골강아지) 마냥 몇 번이고 눈 위에서 나뒹굴었다. 썰매 타는 것보다 이게 더 재밌었다. 우리끼리 개그콘서트를 열었다. 눈 위에서 몸개그를 펼치면서 깔깔댔다. 무아지경에 빠졌던 우리는 다른 등산객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퍼뜩 이성을 되찾았다. 몸에 붙은 눈을 털어내며 직립보행으로 눈썰매를 끌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이렇게 몸으로 웃어본 적이 있었던가? 비록 다음날 온 몸이 근육통에 시달려야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아이처럼 때론 강아지처럼 눈 위에서 신바람 났던 영상을 공유하면서 한참동안 태기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눈썰매를 들고 나선 건 신의 한수였다. 이제 마음 편히 겨울을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다음 겨울에도 눈썰매를 들고 스키장 셔틀버스 티켓을 끊어 동심의 세계로 떠나기로 했다.

태기산 정상에서의 아침. 바쁘게 움직이는 구름이 노란색 햇빛에 물들고 있다.
밤이 되자 소리 없이 내리던 눈이 어느새 텐트 주변으로 수북이 쌓였다.

강풍이 난무하는 겨울철 백패킹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인 텐트에 대해 알아보자

1. 개인적으로 하나의 텐트를 사계절 사용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적절한 텐트를 사용한다. 무조건 텐트를 많이 구비하라는 게 아니다. 백패킹을 자주 한다면 적어도 3계절은 가볍고 쾌적하게, 동계는 따뜻하고 안전하게 지낼 용도로 두 동 정도는 구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2. 텐트 자체 성능도 있지만 텐트를 어떻게 설치하느냐도 중요하다. 텐트의 모양과 폴대의 구조에 따라 바람의 영향을 덜 받도록 설치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텐트 문을 열고 누워서 멋진 일출을 보겠다고 바람의 저항을 온몸으로 받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강풍에 대비한 가이라인 설치와 펙다운도 중요하다. 백패킹을 가면 간혹 가이라인이 없는 텐트를 보곤 한다. 가이라인은 사용하지 않더라도 텐트에 엉키지 않도록 잘 묶여 있어야 한다. 스킨과 폴대가 아무리 견고한 소재라도 가이라인이 없다면 강풍이나 폭설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거나 무너지기 쉽다. 지난 선자령 사건 때, 얼어붙은 펙을 뽑아내지 못해 텐트를 그대로 버리고 온 백패커들이 많았다고 한다. 대부분 일반 펙을 해머로 깊게 박아 사용하거나 스노펙을 사용한다. 나는 동계용으로 스크루펙을 사용한다. 얼어붙은 땅에 박더라도 쉽게 빼낼 수 있다. 스크루펙을 구할 수 없다면 현장에서 나뭇가지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지인에게 부탁해 제작한 스크루펙.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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